(본 글은 이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의 후속 글이다.)
파란만장 미스김도 아니고....(나의 성이 KIM ! ^^)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두 번째 사회생활을 미지의 땅(?) 서울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서울을 미지의 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학창 시절 딱 한번 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을 방문해 본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친척들도 거의 경상도 인근에 살고 있어, 내 생애 서울 땅을 밟을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에야 말할 수 있지만,
면접 보러 새마을호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개찰구에서 지하철 표를 넣기 전, 잠깐 망설였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하려고 해 봤지만,
사실 난 처음이었다! 지하철 개찰구에 표를 넣어 보는 것은...
저 구멍에 이 방향으로 넣으면 될까? 잘못 넣어 이상한 소리가 나진 않을까? 등
지방 촌뜨기 아이가 상경해 겪은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에피소드였다.^^
입사 첫날,
임원진에게 인사를 하고, 부서로 돌아와 팀 선배들과 인사를 했다.
아주 쎄 보이는 큰 언니 같은 분,
조금 쎄 보이는 작은 언니 같은 분,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분,
그리고 조금 과하게 통통하신 나를 뽑아준 일등공신 과장님,
S대 출신의 까칠한 팀장님,
첫 팀 회의에서 내게 주어진 업무는 사업이 될만한 거리를 찾아 제안서를 써 보아라 였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사실 나는 파워포인트를 써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제안서가 뭔 지도 잘 몰랐다.
많은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왔는데,
또 다른 역경이 이렇게 나를 반겨 주다니...
집에 가서 컴퓨터와 사투를 벌였다.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사업 구상도 구상이지만,
파워포인트로 네모를 그리고, 색을 채우고, 표를 만들고, 글을 쓰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욕심이 나를 오랜 시간 깨어있게 했다.
그리고 나의 첫 제안서를 팀 선배들에게 선보이는 그 날이 왔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제안서였다.
내용도... 비주얼도...
그런데, 팀 선배 분들은
'생각보다 잘했다.'
'조금 더 이런 부분을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
'신입인데, 이 정도면 정말 노력했다.' 등
나를 춤추게 하는 말들을 많이 해 주셨다.
2001년 당시, 주 5일이 아닌, 격주 토요일 근무였다.
2주에 한 번은 토요일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일 했다.
기업교육 업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평일 야근도 많은 편이었는데,
주말까지...
정말 그때의 나를 돌이켜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그러던 어느 날,
우편물 수백 통을 들고 회사 외부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붕~ 날아 버렸다.
나는 그때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다. ㅠ.ㅠ
날카로운 계단에 종아리뼈를 강타당한 난
소리도 낼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단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너무 아파 일어서지도 못하는 날 두고, 사라진 그는...
잠시 뒤, 소독약과 연고, 거즈가 든 봉투를 내게 내 밀었다.
그렇게 간단한 처치를 하고 병원에 가니,
종아리뼈에 아주 살짝 금이 갔다고. ㅠ.ㅠ
2주 정도 굽 없는 신발 신고, 많이 걷지 말라고...
이런 부상을 당하고도,
니는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에,
노트북과 교재 등을 가지고 다니며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 했다.
(순진했던 걸까? 열정이 넘쳤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산재인데..........왜 내 돈으로 병원 가고 치료받고 했는 지...
그리고 그때 내게 연고와 거즈를 사다주신 분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으니 인연은 인연이다.
한 업무를 19년 동안 지속하고 있다는 건 많은 걸 말해 준다.
이 업무를 좋아하고 즐긴다.
그리고, 업무를 통해 보람을 느낀다.
맞다!
나는 지금도 내 업무를 좋아하고 즐기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감히, '기업교육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다'라고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이 분야에서 부끄럽지 않게 일해왔다'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조금 더 깊은 안과 밖(가정과 직장)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