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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RA Jan 03. 2019

Bye bye 안나푸르나

DAY7. ABC~MBC~데우랄리~히말라야~도반~뱀부~시누와

일자 : 2018년 12월 14일 - 트레킹 7일차
코스 :  ABC(4,130m) → MBC(3,700m) → DEURALI(3,200m) → HIMALAYA(2,920m) → DOBAN(2,600m) → BAMBOO(2,310m) → SINUWA(2,360m)
거리 : 약 24km
시간 : 약 10시간

안나푸르나에서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 5시반부터 일어났다. 다행히 날이 맑아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힌출리~안나푸르나 남봉~안나푸르나 3봉~강가푸르나~안나푸르나 1봉~마차푸차레가 ABC를 둘러싸고 있다. 어쩜 베이스캠프 위치도 이리 잘 잡았는지 산들을 보다보면 한바퀴 두바퀴 계속 빙글빙글 돌게 된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내가 나인지도 못알아 볼 만큼 얼굴이 팅팅 부어 예쁘게 사진을 못남겨서 아쉬웠다. 이게 다 고도때문이라고 해두자. 여기와서 보니 푼힐에서 본 안나푸르나는 안본거나 마찬가지다. ABC에서 봐야지 진짜 안나푸르나를 봤다고 할 수 있다. 우리끼리 푼힐만 본 사람은 안나푸르나 봤다고 인정 안해주기로 했다. 일출을 기다리며 ABC 자부심이 생겼다. 안나푸르나 남봉을 보면서 과연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사람들은 어디로 올라가는지 궁금해졌다. 와.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베이스 캠프에서 바라봐도 너무나 험해보이는데. 씨얀에게 저기 올라가는 사람들은 어디로 올라가는거냐고 물었더니 'Very dangerous.'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한국가면 영어공부할께. 발이 시려운 것도 참으면서 넋놓고 산맥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노빈이 아침먹을 시간이라면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 7시에 아침먹기로 되어있었는데 어느새 7시가 지나있었다.

해를 받아 노랗게 빛나는 안나푸르나 South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준비하고 나왔는데 어떤 중국 갑부 아주머니께서 헬기를 타고 오셨다고 한다. 헬기도 구경하고 아주머니도 구경했다. 빨간색 루이비통 스카프를 두르고 노오란 자켓에 빨간 가방을 들고 매우 촌스럽지만 모두 명품같은 룩을 하고 신나게 여기저기 인증샷을 찍고 계셨다. 우와. 우리도 헬기타고 내려가고 싶다.

나도 타고싶다, 헬기


오늘은 가장 긴 거리를 걸어야 한다. 내리막은 little bit fast로 가야한다고 씨얀이 말해준다. ABC의 랜드마크인 나마스떼 표지판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인증샷을 찍었다. 그리고 씨얀, 노빈, 포터와 다같이 인증샷을 남겼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닷네밧 베리 머치.


마차푸차레 옆으로 해가 높이 떴다. 히말라야에 와서 경험할 수 있는 건 다 경험해보는 것 같다. 눈 맞으면서 산행도 해보고, 반팔입고 산행도 해보고, ABC와 푼힐에서 맑은 하늘의 일출도 보고, 별도 원없이 보고. 우리 정말 운이 좋다며 감탄하며 걸어가는데 헬기가 내려간다. 아까 그 중국 아주머니께서 이제 내려가나보다. 헬기가 마차푸차레 쪽으로 쭉 가더니 마치 산에 박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산 가까이 간다. 물론 실제로는 아직도 먼 거리에 있었겠지만. 그러더니 골짜기 사이로 사라져갔다. 하늘 위에서 산들을 더 가까이서 보는 풍경도 너무 멋질 것 같았다. 우리 한번 걸어봤으니 다음에는 헬기를 타고 오자고 약속을 한다. 어제 눈이 많이 내려서 눈이 제법 쌓였다. 눈 내린 산 모습이 더 멋있어졌고 내려가는 길도 푹신푹신한 눈을 밟으면서 가니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마차푸차레를 정상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노빈이 한마디 한다. 'Machapuchare smoking, huh?' 그 말이 너무 절묘해서 우리는 말그대로 빵 터졌다. 어제는 너무 멀고 힘든 길이었는데 오늘은 MBC까지 금새 내려왔다.

Bad smoker 마차푸차레 오른쪽으로 해가 반짝 떠올랐다
눈이 덮혀 더 그림같아진 MBC
마차푸차레를 배경으로 설산트레킹 인증샷을 찍어본다


MBC를 지나서도 눈이 계속 쌓여있다. 아랫마을에도 눈이 내렸었나보다. 산에 삼각형 모양으로 엄청나게 크게 눈이 쌓여있는 구간이 있었는데 폭포가 얼어붙어서 눈이 쌓여있는 거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저기 꼭대기에서 눈썰매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전혀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이 얼어붙어 있는 구간을 지나가야 하는데 꼭대기에서 눈 부스러기 같은 것이 떨어진다. 너무 놀라 씨얀을 바라보니 이 구간이 위험구간이니 빠르게 지나가라고 한다. 잔뜩 겁을 먹고 정말 빠르게 경보로 지나왔다. 허리까지 얼음이 얼어있고 그 위로 눈이 쌓여있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보이는 얼음의 모습이 생야생의 것이다. 눈썰매 취소,취소.

어디선가 나타난 누렁이 한마리와 검둥이 한마리가 마치 길을 안내해주는 것처럼 먼저가서 우리를 기다렸다가 우리가 오면 또 먼저 가서 우리를 기다린다. 산에서 사는 개들이라 내려가는 속도도 엄청 빠르다. 그렇게 개들의 안내를 받으며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어제 반만 먹고 남겨 두었던 스니커즈 반쪽으로 당을 채운다. 길 안내를 해주던 개들이 다가와 스니커즈를 탐내지만 줄 수 없다. 미안해, 일단 나부터 살아야겠어. 데우랄리를 지나 대나무 5개로 된 다리를 다시 건너고 힌쿠동굴에서 잠시 쉬어간다.

우리의 길잡이 누렁이


이제 점점 눈이 없어지고 진흙 길이다. 돌이 울퉁불퉁해서 내려갈 때마다 아이젠이 탁탁 소리를 내며 돌에 부딪힌다. 충격이 계속 가해져서 그런지 원래 안좋았던 왼쪽 무릎이 스믈스믈 아프기 시작한다. 아이젠을 빼고 싶었으나 계속 경사가 있는 내리막 길이라 뺄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아이젠을 빼는 데 힘이 다 빠질 것 같아 히말라야 롯지에 가서 빼기로 한다. 한시간 반정도를 더 가서 1시 쯤 히말라야 롯지에 도착했다. 아이젠을 벗으니 발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다. 여기서부터 4시간을 더 가야 시누와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페이스가 느려질 것을 대비해 점심시간을 짧게 가지고 1시반쯤 출발을 한다. 올라가는 건 힘이 들지만 무릎이 덜 아프고, 내려가는 건 무릎이 너무 아프다. 그렇다고 오르막이 더 좋은 건 아니다. 내리막 길이 많아 계속해서 무릎에 무리가 된다.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니 발목이 꺽이기 시작한다. 발목있는 등산화인 탓에 양쪽 발목이 욱신욱신하다. 내려갈 때마다 저절로 아이고 소리가 나온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MJ도 왼쪽 무릎이 사망해 같이 곡소리를 내며 하산을 한다.


뱀부로 가는 길에 수풀 쪽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나길래 원숭이가 있을 것만 같아 두리번 거리며 가다가 원숭이 대가족을 발견했다. 새끼원숭이도 있었다. 엄청 활발하게 나뭇가지 사이를 점프하며 다녔다. 원숭이 가족의 재롱을 보고 또 혹시 원숭이나 다른 동물을 볼까 두리번 거리며 가다보니 뱀부에 도착했다. 벌써 4시가 다 되었다. ABC 올라갈 때 뱀부 마을이 시작될 무렵까지 한참동안 계단을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내려가면서 돌아올 때 이 계단 엄청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그 계단이 지금 내 눈 앞에 있다. 약 30분 정도 계단을 올랐다. 이미 축날데로 몸이 축나서 계단 오르는 것이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스틱아, 날 살려다오. 날이 점점 저물어 가고 저 멀리 어렴풋이 노을이 지는 풍경이 보인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 산길에서 벗어나고 싶어. 힘이 다 빠져 힘들어하는 MJ의 가방을 노빈이 들어준다. 뒤를 돌아보니 구름에 가려져있던 마차푸차레가 보였다. 설산 한입먹고 기운을 내서 다시 힘차게 걸어본다. 어느새 달도 떴다. 노빈이 10분만 더 가면 시누와에 도착이라고 한다. 노빈은 씨얀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10분을 갔지만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결국 노빈이 말한 10분을 세 번 더 가서야 시누와에 도착했다. 6시가 거의 다 되어 도착을 해 대충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었다. 2층 방이어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부서지는 기분이다. 식당에 들어가니 ABC에서 봤던 중국인 커플이 밥을 먹고 있다. 괜찮냐고 물어보니 'NO'라는 대답이 바로 날아온다. 너희도 얼마나 고생했을지 나도 알고 있어. 나도 죽겠거든.

눈꽃산행에 이어 야간산행도 하게된다


김치볶음밥에 참기름을 뿌리고 김자반을 올리고 그 위에 계란후라이를 올리니 이런 진수성찬이 또 없다. 너무 피곤해 날진물통에 핫워터를 받아 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이틀간 인터넷이 안되어 그동안 쌓인 카톡도 보고 생존신고도 한다. 이틀 안씻었더니 사흘 안씻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다. 정말 고소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죽겠다. ABC로 올라갈때 들렸던 시누와는 고도 3천이 넘어 어지럽고 머리가 띵했는데 ABC를 찍고 오니 이제는 시누와가 고도가 낮아져 편안하다. 인체의 신비란. 그렇게 감탄했던 설산도 남산같아 보인다. 내일도 5시간을 걸어야 한다는데 끝까지 무사히 걸어내려갈 수 있길 바라며 잠자리에 든다.

김자반 개발한 사람 상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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