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8. 시누와~바누와~촘롱~지누단다~마큐~포카라
일자 : 2018년 12월 15일 - 트레킹 8일차
코스 : SINUWA(2,360m) → BANUWA(2,100m) → CHHOMRONG(2,170m) → JHINU DANDA(1,780m) → MATKYU(1,380m)
거리 : 약 10km
시간 : 약 6시간
오늘로써 히말라야 트레킹이 끝난다. 이미 내 다리는 만신창이가 되어 오늘 잘 내려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는 상황이지만 이 트레킹이 끝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나와 MJ는 백팩 없이 맨몸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포터 가방에 백팩까지 야무지게 패킹했다. 가방이 없으니 어깨가 가볍다. 날씨도 좋아서 힌출리와 안나푸르나가 아주 잘 보였다. 안나푸르나에 작별인사를 건네며 마지막 날 트레킹을 시작한다.
오늘 우리의 최대 걱정은 촘롱이다. ABC로 향할 때 촘롱의 수많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봤던 마주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마스떼 인사할 힘도 없어 보였던 그들의 모습이 이제 곧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바누와까지는 무난하게 잘 내려왔다. 이제 출렁다리를 건너 촘롱 계단을 오를 차례다. 걱정과는 달리 촘롱 계단 간격이 낮고 촘촘하게 되어있어서 올라갈만하다.
땅만 보고 올라가다 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앉아서 쉬고 있던 네팔 현지 포터들이 '이쪽으로!'라며 한국말로 길을 안내해준다. 한국어 실력이 대단한데? 올라가다가 이번 트레킹에서 참맛을 알게 된 스니커즈도 사 먹었다. 확실히 산에서 사 먹으니 스니커즈 값이 두배가 넘는다. 그 대신 맛도 두배가 넘게 맛있다.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었던 촘롱의 롯지를 지나 지누단다로 향한다. 지누단다까지는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경사가 너무 심해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왼쪽 무릎과 양쪽 발목이 벌써 또 아프기 시작한다. 저 멀리 우리가 오늘 건너야 할 엄청나게 긴 출렁다리가 보인다. 몇 개월 전에 새로 생긴 제일 긴 다리라고 한다. 무려 287m다. 이 다리가 없었다면 강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하는데 무섭더라도 다리를 건너는 것이 낫겠다 싶다. 설령 다리가 500m 라도 나는 다리를 건너겠다.
길 중간중간에 귤을 파는 네팔리들을 계속 만난다. 계속 귤이 먹고 싶다던 쪼을 위해 귤을 하나씩 먹어보기로 했다. 귤 5개에 20루피나 한다. 한국보다 비싸다. 귤은 좀 덜 달았지만 매우 상큼했다.
깨끗하고 예쁜 지누단다 롯지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다. 산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이니 새로운 메뉴에 한 번 도전해 보았다. 야크 치즈가 맛있었기에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시켜보았다. 결과는 대실패다. 까르보나라가 이렇게 밍밍할 수도 있구나.
햇빛이 강해서 썬크림을 덧바르고 이제 길고 긴 출렁다리를 향해서 내려간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높고 정말 길다. 우리 앞에 가던 트레커들이 아까 전에 건너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건너고 있다. 다리에는 알록달록 경전들과 말린 꽃과 과일 같은 것이 많이 매달려 있었다. 아마도 안전하게 다리를 건너길 바라는 네팔리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거겠지. 심호흡을 하고 다리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렇게 긴 출렁다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시작 부분은 단단했으나 갈수록 많이 출렁거린다. 살짝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까마득하게 높다. 무서워서 멈출 수도 없다. 잰걸음으로 빠르게 건너는데 아직 반도 못 갔다. 혹시라도 스틱을 떨어뜨릴까 봐 스틱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출렁다리니까 다리가 U자형으로 생겨 중간을 지나서부터는 올라가야 해서 내 마음처럼 빠르게 걷지도 못하겠다. 숨 크게 쉰다고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숨도 살살 쉬어가며 무사히 살아서 다리를 건넜다. 이로써 오늘의 무서운 구간 통과. 휴.
씨얀이 이제 산 두 개만 넘으면 지프센터가 나온다고 알려준다. 말이 산 두 개 만이지 지금 이 상태에서 산 두 개를 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기분으로 열심히 걸었다. MJ는 이제 평지를 걸을 때도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어느 후기에서 본 것처럼 '미안하지만 포터에게 내 몸을 맡겼다.'가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쌰으쌰하며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서 걸었다. 드디어 마큐 지프센터에 도착이다. 오후 3시쯤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50분이나 빠른 2시 10분쯤에 도착했다. 우리는 다함께 박수를 치며 트레킹 종료를 축하했다.
오프로드 길을 지프를 타고 내려가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땀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먼지 때문에 창문도 열 수 없었지만 잠이 솔솔 올 정도로 편안했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기도 했다. 순식간에 비레탄티까지 왔다. 뾰족하게 생겨서 유일하게 우리가 구별할 수 있는 마차푸차레와 다른 산들이 쭉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산을 하나씩 가리키며 '안나푸르나 원, 안나푸르나 쓰리, 안나푸르나 싸우스...'라며 산 이름을 말하고 있으니 뒤에서 씨얀이 'No'란다. 'New mountains'란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마차푸차레 반대편의 산맥들이다. 포카라로 가는 길에 사랑곳이라는 뷰포인트에 들려 페와호수 전경을 구경하고 간다. 내려다보는 하늘이 그리 맑지는 않았다.
5시 반쯤 놀이터에 도착했다. 사장님께 얘기를 들으니 우리보다 일정이 하루 빨랐던 팀은 ABC에서 아무것도 못 보고 내려왔다고 한다. 역시 우리는 'Lucky'다. 씨얀, 노빈, 포터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건네고 맡겨놨던 캐리어에 얼른 짐을 정리한다. 산에서 내려올 때 씨얀에게 아이젠도 주고, 장갑도 주고, 넥워머도 주고 온갖 줄 것들을 다 정해놨었는데 짐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이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려오는 길에 예약한 윈드폴 게스트하우스의 '삼겹살 파티'를 먹으러 간다. 윈드폴에 방 예약을 하려고 했으나 방이 없어 윈드폴 사장님께서 옆의 페와 코너 게스트하우스를 대신 예약해주셨다. 사흘간 씻지 못한 몸뚱이를 개운하게 씻어내고 삼겹살을 먹으러 간다. 스틱 없이 걷는 게 뭔가 어색하다. 누가 들으면 한 달간 트레킹하고 온 줄 알겠다. 저녁 세트메뉴는 말 그대로 삼겹살 파티였다. 삼겹살, 김치찌개, 두부김치, 전. 온갖 한국 음식에 정신줄을 놓고 흡입했다. 고르카 맥주도 빠질 수 없지. 배가 터질 만큼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로써 그냥 해외여행과는 무척이나 색다르고 다이나믹한 7박 8일간의 네팔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 또 갈 거냐고 묻는다면 바로 당장은 아니더라도 2~3년 후에 다른 코스로 다시 한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