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 시누와~뱀부~도반~히말라야~데우랄리
일자 : 2018년 12월 12일 - 트레킹 5일차
코스 : SINUWA(2,360m) → BAMBOO(2,310m) → DOVAN(2,600m) → HIMALAYA(2,920m) → DEURALI(3,200m)
거리 : 약 14km
시간 : 약 7시간 40분
오늘도 스케줄은 똑같다. 7시에 아침먹고 8시에 출발이다. 어제 저녁 옆자리에서 간달프처럼 하얀 수염이 난 아저씨가 먹던 토스트와 계란후라이가 맛있어 보여 '우리도 내일 아침에 계란후라이 먹자!'고 했다. 후라이팬에 톡,톡,톡 계란후라이 요리하는 소리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에 침이 고인다. 왜 진작 모닝 계란후라이를 먹지 않았나를 자책하며 너무나 맛있는 계란후라이를 흡입한다. 매일 아침 짐싸다가 조금씩 늦게 출발을 해서 저녁에 짐을 어느정도 싸고 잤더니 역시 짐싸는 시간이 많이 줄였다. 는 개뿔. 오늘도 20분 늦게 출발을 한다. 오늘은 햇살이 좋아서 반팔을 입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오늘은 마차푸차레를 계속 보면서 걷는다. 아직도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설산을 보면서 걸으니 절로 노래가 나온다. 설산과 푸른산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이 생전 처음보는 풍경이라서 신기하기만 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놀러와서 높은 빌딩과 한옥이 함께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느끼는 것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 같을까? 흥이 올라와 MJ에게 신나는 음악 플레이를 요청했고 MJ는 음악과 더불어 스텝을 밟으며 살사 댄스도 선보였다. 너무 웃기고 재미나서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오늘 코스는 시누와에서 시작해서 뱀부, 도반, 히말라야를 거쳐 데우랄리까지 간다. 각 마을간 한시간 반정도 걸릴 꺼라고 한다.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점심을 먹고 데우랄리까지 천천히 올라간다고 했다. 역시 씨얀은 도착시간을 정확하게 예상한다. 시누와에서 출발한지 한시간 반만에 뱀부에 도착했다. 대나무가 많아서 뱀부라는 마을이름이 지어졌다더니 산에 정말 대나무들이 빼곡하다. 마치 팬더가 나올 것 처럼. 이 대나무들을 엮어서 포터들이 지고다니는 짐가방을 만든다. 촘촘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넣어서 만드는 모습이 신기해 한동안 구경했다. 한땀한땀 엮어서 만드는 장인정신이 깃든 짐가방이다.
또 뱀부에서 한시간 반을 걸어 도반에 도착했다. 뱀부나 도반은 마을이 작아서 롯지도 3~4개 뿐이었다. 쉬고 있는 나에게 씨얀이 오더니 원래 히말라야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었는데 배가 고프면 도반에서 밥먹거나, 좀 더 올라가서 뉴도반에서 밥을 먹겠냐고 물어본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히말라야가서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너희들 배고프면 도반에서 먹어도 된다고 했더니 'Your choice.'란다. 히말라야 롯지까지는 2시간이 좀 안걸릴 꺼라고 하니, 우리는 딱히 밥을 먹을 만큼 배가 고프지 않아 히말라야에 도착해서 밥을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몸이 더 쳐지고 페이스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어서 점심 전에 진도를 빼고 싶었다. 시간이 11시 반이었으니 씨얀이 배가 고파서 물어본거 였는데 눈치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도반에서부터 안보이다가 히말라야 롯지에서 다시 나타났는데 아마 배고파서 도반에서 밥을 먹고 온것 같다. 네팔리들은 하루에 두끼, 우리나라로 치면 아점과 저녁을 먹는다. 그래서 11~12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 것이 좋다는 말을 책에서 보았는데 시계를 보면서도 이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우리만 스니커즈 반개로 허기를 채운다. 계속해서 오르막이라 기운이 빠져있었는데 스니커즈가 세상 꿀맛이다. 아니, 스니커즈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엄청 달아서 한국에서는 도통 먹을 일이 없었는데 히말라야에서 먹는 스니커즈는 가뭄의 단비처럼 내 몸에 에너지를 충전해주었다. 하나를 다 먹고 싶었지만 나중을 위해 반토막만 먹고 반토막은 고이 가방에 넣어둔다.
히말라야 롯지에 1시 30분 도착을 목표로 힘을 내어 다시 차근차근 계단을 오른다. 모디콜라 강을 따라 올라가는데 물흐르는 소리가 폭포가 흐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맞은 편 산 꼭대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데 그게 곧 눈이 되고 얼음이 되어 얼어붙는다. 얼어 붙은 폭포가 나무사이로 보일 때마다 '폭포다!'를 연신 외치며 걷는다. 외국인 한 명이 앞에서 길을 가다 멈춰서서 무언가를 보고있다. 가까이 가니 'Monkey, monkey.'라며 손가락을 가리킨다. 오, 정말 원숭이다. 복실복실한 털이 왠지 따뜻해보인다.
1시간 50분만에 히말라야 롯지에 도착했다. 경사가 많이 가파르지 않아서 그런지 멋진 마차푸차레와 계곡을 보면서 걸어서인지 오늘 발이 가볍고 컨디션이 좋다. 반팔을 입고 출발했는데 히말라야 롯지까지 올라오니 점점 추워진다. 바람막이를 얼른 챙겨입고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늘 똑같다. 피자, 파스타, 볶음밥, 그리고 신라면이다. 매일 매끼를 비슷하게 먹으니 이제 질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좀 다른 걸 먹어볼까.'라고 생각하며 메뉴판을 펼쳐도 딱히 주문할 다른 음식이 없다.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음식이 나오면 게눈 감추듯이 잘만 먹는다. 히말라야 롯지는 화장실 냄새가 좀 심하게 나는 편이다. 식당도 그리 쾌적하지만은 않다.
데우랄리까지 가는 길에 계곡물을 건너야 하는 곳이 많아 짧고 튼튼한 다리를 계속 건넜다. 출렁다리에 대한 공포가 있는 MJ와 나를 안심시키려 쪼가 다리를 볼 때마다 '튼튼한 다리에요.'라고 알려주었다. 그 말에 MJ가 '누구 다리?'라고 되물어 또 깔깔대며 간다.
히말라야는 대부분 돌산인가보다. 아니면 높고 추워서 돌만 남은건가? 왼편으로 지층이 사선으로 나있는 거대한 돌산에 층마다 눈이 쌓여있어 멋진 자태를 보며 아는 척을 해본다. '씨얀, 이거 힌출리야?' '음.. 아니 이거 그냥 힐이야. just hill.' 아, 히말라야에서 이정도는 그냥 '저스트 힐'이구나. 이미 한라산이 내 발밑에 있는 고도인데 여기서는 산이라고 불리지도 못한다. 토닥토닥. 우리나라오면 네가 짱이야. 고도 7,000미터는 넘어야 산으로 불릴 수 있나보다. 하긴 다 산으로 이름 붙여주면 죄다 다 산이어서 도로명주소를 적용해야 할지도.
갈수록 강이 굵어지고 물이 많이 흐르면서 덩달아 바람도 매섭다 분다. 저 멀리 데우랄리 롯지가 보이는데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올라가면서 ABC를 찍고 내려오는 트레커들과 계속 마주친다. 길이 좁아 올라가는 우리에게 대부분 양보를 해준다. 그들은 숙제를 마치고 집에 가는 홀가분한 표정이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서로 인사를 하며 지나쳐간다. 계단을 오르느라 정신없던 내 앞에 올랜드 블룸이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길을 양보해준다. 순간 그에게로 넘어지고 싶었다. 아, 난 왜 이렇게 중심을 잘 잡는거야. 휘청거리지도 않고 계단을 오르는 내 다리를 질책해본다. '나 먼저 내려갈께.' 안나푸르나가 대수냐, 올랜드 블룸인데! 같이 따라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올랜드 블룸은 떠나고 데우랄리 롯지를 가기 위한 관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미터 남짓 되어 보이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는 계곡 중간에 큰 대나무 5개가 묶여있지도 않고 그냥 놓여있다. 이게 다리란다. 포터가 먼저 다리를 건너는데 대나무가 막 굴러다닌다. 자칫 잘못하면 바로 모디콜라 강까지 굴러떨어질 것 같다. 포터가 손을 잡아주어 조심스레 다리를 건넌다. 휴, 살았다. 겁쟁이 쪼까지 무사히 다리를 건너 드디어 데우랄리에 도착한다.
데우랄리는 너무 추웠다. 그동안의 추위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추웠다. 가져온 옷을 바리바리 껴 입었다. 블랙야크 직원아저씨가 추천해준 방풍바지 덕을 톡톡히 봤다. 후리스에, 소프트쉘에, 패딩까지 입고도 추웠다. 식당에는 난로도 없다. 핫워터를 주문하고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그 분들은 도착하니까 팝콘이 딱 나온다. 오며가며 마주쳐 친분을 좀 쌓은 아주머니께서 팝콘을 나누어주셨다. 카라멜 팝콘도 아니고 그냥 일반팝콘인데 따뜻한 팝콘을 입에 넣으니 엄마 생각이 난다. 부끄러울 정도로 순식간에 팝콘을 해치운다. 매쉬 포테이토를 처음 시켜봤는데 양파와 함께 달달한 감자가 아주 맛있었다. 네팔 감자는 힘이 안난다고 하던데 맛은 아주 좋았다.
화장실을 갔다가 손을 씻으러 갔는데 수돗가에 물이 안나온다. 그곳에 있던 포터에게 손을 씻고 싶다고 했더니 핫워터를 섞어서 손 씻을 물을 부어주었다. 따뜻한 마음씨가 너무 고마웠다. 오늘 씨얀에게서 배운 '닷네밧(감사합니다)'을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너무 추운데 얼굴이 벌개진다. 열이 오르나보다. 식당은 너무 추워 해열제를 먹고 방에 들어가서 핫팩을 터트리고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