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모니카 Jul 15. 2022

오, 기사님 쫓아!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여행사 직원 미리아나) "갖고 갈 짐이 얼마나 커요?"

모니카) "음...(사무실에 있는 허리춤 정도 길이의 철제 캐비닛을 가리키며) 아마도 이것의 2/3 쯤 될 거예요."


여행사 직원 미리아나) "아, 그러면... 음... 괜찮을 것 같네. 차가 충분히 넓을 거예요." 


진짜 큰 차를 보내줘야 할 텐데....


(며칠 뒤, 메주고리예를 떠나는 날)

2019년 6월 18일 화요일 오후 1시, 메주고리예에 있는 여행사에 예약해 둔 차가 도통 오지 않았다. 시간 약속이 칼 같은 곳인데 어쩐 일이지... 한 20분쯤 기다렸을까. 창문 너머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직이다. 조금 있다가 부엌에 있는 큰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런데 숙소 건너편, 웬 하얀색 미니버스에 여행사 로고가 딱! 있지 않은가. 기사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오 마이 갓! 우리 차였다!


며칠 전부터 짐을 싸면서 부피가 큰 짐 때문에 예약한 차가 적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당장 여행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출발 전 날 미리 비용을 지불하러 잠깐 들렀을 때, 여행사 직원인 마리아나가 짐이 얼마나 크냐고 묻길래 대충 '크~~ 으다'고 대답해줬었다. 그랬더니 3인용 자가용이 18인승 미니버스로 바뀐 것! 웃음이 절로 났다.


이동할 짐들 그리고 보스니아 메주고리예 숙소 입구


셋이서 부지런히 짐을 옮겨 넓~은 트렁크에 실었다. 드디어 출발. 두 달 동안 고마웠던 메주고리예 구석구석을 지날 때마다 창문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또 올게. 고마웠어!', '어머, 여긴 못 왔었는데 차 타고서라도 지나가네. 담엔 꼭 올게! 다시 만나자' 고마움 반, 아쉬움 반을 담아 마치 오래된 친구와 헤어지는 듯 인사했다.


보스니아 메주고리예를 출발한 지 2시간쯤 지나 크로아티아 스플릿에 도착할 무렵, 시내까지 3km 남은 지점에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빵이랑 음료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심카드(Sim card=인터넷 혹은 해당 지역전화나 문자가 가능한 유심칩) 하나를 샀다. 스플릿에 도착하자마자 숙소 주인과 연락이 닿아야 했다.


스플릿 메인 거리 리바(Riva)


스플릿 시내로 들어섰다. 다시 만난 스플릿은 언제 봐도 활기가 넘쳤다. 기사 아저씨가 영어가 전혀 안되셔서 숙소 찾는데 애를 좀 먹었지만 다행히 스플릿 숙소 주인이 마중을 나와줘서 체크인까지 수월하게 마쳤다.


그. 런. 데...!


짐을 풀려는 찰나 이상하다... 짐 하나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이리저리 찾아보고 있는데.. 아. 맞다! 보온 가방!


오늘부터는 계속 이동을 해야 해서 메주고리예에서 미리 반찬을 만들어 담아 뒀었다. 띠로리.... 이게 무슨 일이람. 아마도 차에 두고 온 모양이다. 나름 신경 쓴다고 반찬 쏟아질까 봐 의자에 모셔두고 안전벨트까지 해뒀었는데. 헛웃음이 났다. 에휴.


셋이서 그냥 포기하자 했다가도,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밤새 멸치 발라서 아껴둔 고추장에 묻히고, 간 마늘 없으니까 미리 사다 까서 쪄 가지고 얼려놓고.


이것뿐인가. 무려 두 달 동안 아꼈던 진미채는 어찌할 것인가.


루칠라(동생)안 되겠는지 숙소 주인한테 도움을 청했다. 기사 아저씨 연락처가 왔다. 문자를 보냈다.(크로아티아어로 번역기 돌려서) 조금 있다가 메주고리예 여행사 직원 마리아나에게서 메일 한 통이 왔다. 기사가 연락을 해서는 어느 어느 지점에서 만나 가방을 주고 가겠다고. 오 마이 갓!


마리아나가 알려준 지점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너무 고마워서 아끼고 아낀 신라면 5개를 선물로 주겠다고 답을 보내고서는 부리나케 택시 정거장으로 나왔다. 그런데... 어쩐지 손이 허전했다... 라면! 안 갖고 나왔다. 아이고... 다시 뛰어가서 라면 갖고 또 뛰어서 가까스로 택시를 탔다. 택시 아저씨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약속한 지점에 도착하려는 순간! 하얀색 미니버스가 보였다!


로터리 지점이라 택시에서 잽싸게 내렸다. 서로 얼굴 가득 깔깔대고 웃으며 짐을 주고받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택시 아저씨가 하는 말.


"그게 당신들의 전재산이군요! ㅎㅎㅎㅎㅎ"


우리는 택시가 들썩이게 한바탕 웃었다. 소중한 비상식량이라는 걸 절대 알 길 없는 기사 아저씨 눈엔 요 작은 가방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나 보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반찬가방 ㅎㅎ


서둘러 숙소에 잃었던 짐을 냉장고에 잘 넣고는 곧바로 성당에 갔다. 미사를 드리고 잠깐 앉아 기도드렸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기도 프로젝트> 54일 묵주기도(청원기도) 첫 날을 있는 그대로 봉헌했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언제나 귀한 하루로 이끌어주시는 예수님께 그리고 우리의 소망을 함께 빌어주실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가톨릭 교회에서는 묵주기도를 9일 동안 혹은 54일 동안 드리곤 합니다. 저희는 이 기도를 순례와 함께 해보기로 했고, 한 나라에 머물며 1일 1 성당에 들러 9일 동안 묵주기도를 바치는 일명 기도 프로젝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54일 기도를 여섯 나라를 이동하며 바쳤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따로 이야기로 올릴 예정입니다)


스플리트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가는 길


정신없이 보낸 하루, 짜증 나고 예민할 수 있었던 순간순간에도 최대한 기쁨을 잃지 않고 서로 도와 일을 잘 해결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밥을 먹는데 반찬을 한 입 한 입 오물거릴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왕복 택시비에 신라면 5개, 여행사 기사 아저씨 팁까지. 생각지도 못하게 비싼 값을 치른 반찬들이 어쩐지 더 맛있는 것 같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녀 아나시타시아를 만나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