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에서 이틀을 보낸 후 수요일 아침, 남아 있던 짐을 마저 챙겼다. 체크아웃까지는 시간이 남아 숙소에 있던 피아노 앞에 앉았다. 노래나 한 번 불러볼까? 루칠라(동생)가 피아노 위에 놓여 있던 기타를 들어 튜닝을 했다.
'이른 봄날에 꿈처럼 다가온 그대 영원할 줄 알았네~~'
백일몽으로 살짝 목을 풀고는 '우리성가도 불러보자' 사진첩에 저장해뒀던 악보를 화면에 띄우고
'약할 때 강함 주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다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목청껏 불렀다.
'예수~어린양~존귀한 이름~'
이렇게 마음껏 노래 불러본 지가 언제였는지. 속이 뻥 뚫리게 예수님을 불렀다. 오늘 출발이 아주 힘차다! 파이팅! 한 번 외치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우리가 이름한 일명 <기도 프로젝트>는 한 나라에 9일씩 머물면서 묵주기도의 9일 기도를 바치는 것인데, 이렇게 여섯 나라를 이동해서 총 54일을 청원기도로써 바치는 일정이다.
첫 나라는 크로아티아. 스플릿을 시작으로 수도인 자그레브까지 이동하면서 9일 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버스나 여행사 차량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우리에게는 렌터카로 이동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 차를 빌렸다.
트렁크와 밥솥, 여행용 쿠커 등 부피가 큰 짐들이 많아서 짐을 넉넉히 넣을 수 있는 차를 선택했더니 SUV 차량이란다. 이 중에서도 제일 저렴한 차량을 신청했더니 제일 작은 차가 나왔다. 하... 짐이 다 안 들어갔다. 억지로 욱여넣고 뒷좌석에도 놓고 어찌어찌해서 겨우 실었다.
오늘 우리가 가는 도시는 스플릿에서 차로 1시간 3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시베니크' 다. 쉬베닉이라고도 한다. 엄마는 운전. 나는 대기 운전자 겸 내비게이션 보기, 루칠라는 지도 같이 봐주고, 짐도 싣고, 기타 등등.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 삼박자 잘 맞춰가며 출발했다.
우리 모두 긴장됐지만 출발이 좋았다. 30km 에서 갑자기 90km 다시 60km. 확 바뀌는 속도제한에 살짝 당황했다가도 서두르지 않고 그저 나오는 길 따라 천천히 갔다. 해안가를 지나 산을 넘어 포도밭, 언덕, 작은 공소들을 지났다.
숙소 체크인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스플릿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 스플릿 공항 옆에 있어 자주 지나쳤던 곳 '트로기르'에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작은 물길이 땅을 갈라 섬이 된 곳, 조그만 다리를 하나 건너면 트로기르 입구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중심 광장에 있는 '성 로렌스 대성당'
트로기르 성 로렌스 대성당
입구에 들어서니 입장료를 받는다. 1명당 25쿠나(=4,000원 정도). 표 세 장을 끊고 바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입구 양 쪽에는 아담과 하와의 조각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밑에는 사자상이 있었는데, 예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라고 한다.
제대 앞에 자리를 잡고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천여 개의 지향과 우리의 기도 지향이 천장에 높게 달린 십자가에 닿아 주길 바랐다.
사랑하는 예수님! 우리의 아버지! 아픈 사람,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많아요.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세요. 넘치도록 내려주세요. 그리고 저희가 하늘에서 받은 은총임을 알고 깨닫게 해 주세요!
가난한 이들, 과부와 고아의 수호성인이신 안토니오 성인상 앞에서, 감실 안에 계신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대며 오랜 시간 곳곳에 스며있을 은총이 우리에게도 전해지길 바랐다.
트로기르 성 로렌스 대성당 내부 모습, 탑으로 올라가는 길, 외관
트로기르의 정감 있는 좁은 골목골목을 산책하듯 천천히 둘러봤다. 골목 중간에 있는 한 카페에 들러 시원한 바람에 지친 몸을 달래며 잠시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