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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Oct 13. 2022

서프라~이즈! 시베니크 (2)

크로아티아 시베니크


어제 처음 만난 시베니크에서 생각지도 못한 예수님의 깜짝 서프라이즈에 '세상에, 어머나, 어떻게 이런 일이!' 온갖 감탄사 내뱉으며 주차장에 내려왔는데... 자동차 앞 유리에 떡 하니 붙어있는 종이 한 장! 이게 뭐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차위반 딱지였다!!! 하... 벌금은 160쿠나(kn), 우리나라 돈으로 3만 원 정도. 이게 무슨 일이람.




이곳 주차장은 주차요금을 시간별로 계산해서 미리 지불한 후, 영수증을 차량 안쪽에 잘 보이게 둬야 한다.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시베니크 오기 전 잠시 들렀던 트로기르 주차장에서는 후불 정산이길래 '내가 잘못 알아봤나? 후불이네!' 했었다. 그래서 시베니크에서도 그런 줄 알고 그냥 주차하고 내려왔더니 벌금으로 1일 요금이 부과된 것.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 근처에 여행자들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 같은 곳이 있길래 들어가서 물어봤다. 종이를 보더니 8일 안에 우체국이나 은행에 가서 직접 내야 한단다. ​

그래서 오늘 순례의 시작은 본의 아니게 '우체국' ㅎㅎ. 숙소와 가까운 우체국에는 따로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성당 근처에 야무지게 주차를 해놓고(물론 미리 주차비를 정산한 후에^^) 성당 쪽으로 올라갔다.



어제보다 날씨가 더 뜨거웠다. 우체국은 제일 언덕 위 큰 도로가에 있었다. 머리 위로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조금만 걸어도 지쳤다. 게다가 길이 미로같이 얽혀서 우체국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대가 높아서 그랬는지 데이터 신호도 끊겼다) ​





​벽에 붙은 표지판을 보고, 아까 미리 봐 둔 지도 방향을 생각하면서 계속 올라갔다. 그러다가 먼저 가고 있던 루칠라가 놀란 듯이 '어? 여기로 가면 루르드 성모님 동굴이 있대~', '어머, 진짜? 아니 어떻게 이런 곳에?'

뒤쳐지게 겨우 겨우 걷고 있던 엄마와 나는 갑자기 어디서 힘이 났는지 성큼성큼 부리나케 올라갔다. 세상에나! 골목을 딱 돌아서니 작은 정원처럼 보이는 곳에 *루르드 성모님 동굴이 있었다!


*루르드 성모님
프랑스 남서쪽의 시골 마을인 루르드(Lourdes)에서 1858년 2월 11일 목요일부터 1858년 7월 16일 금요일까지 총 19회에 걸쳐 성모님께서 당시 14살의 가난한 소녀였던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 1844~1879)에게 발현하셨다.





'이곳에 오려고 이 언덕을 올랐나 보다.'

성모님 앞에 잠깐 기도를 드리고 초를 봉헌했다.


언제나 서프라이즈는 감동이 두 배다.



다시 언덕을 올랐다. 큰 길이 나와야 하는데 안 보인다. 이렇게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일단 직진! 먼저 가고 있던 루칠라가 큰 도로가가 나올 것 같다며 손짓을 했다. 막판 힘내기로 가보니 드디어 큰 도로가가 나왔다. 그것도 기막히게 딱 우체국 앞. ㅎㅎ

어휴 이제 다 해결됐다며 신나게 문을 열으려고 했더니 잠겼다... 하... 쉬운 일이 없다. 유리창 너머로 어떤 직원이 보이길래 주차위반 딱지를 들이대며 문 좀 열어달라고 애써 쳐다봤는데, 안된단다.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단단히 희생이 필요한가 보다. ㅎㅎㅎ;;;;



Pošta 우체국


하는 수 없이 다시 성당으로 내려갔다. 미사 시작 전에 미리 묵주기도를 드리려고 입구에 들어갔는데! 또 안된단다. 오늘 무슨 일인고. 참... 프라이빗 웨딩(비공개 결혼식)이 있어서 아예 출입금지라고 한다. 사정해도 안 들여보내 준다.

'그럼 혹시 다른 성당에 미사 없나요?

'프란치스코 성당에 있어요. 계단을 내려가서 왼쪽으로 쭉 가면 가까운 곳에 있어요. 7시예요.'

'고맙습니다!'



우리는 곧장 프란치스코 성당을 찾아 나섰다. 도착해서 보니 한 십여분 걸린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꽤 가까운 거리지만, 이 날은 날씨가 굉장한 데다가 몇 시간을 언덕을 오르면서 길을 헤맸기 때문에 우리는 그야말로 녹초가 됐었다.

프란치스코 성당에 도착 시간이 오후 5시 45분. 늦었지만 일단 점심부터 해결해야 했다. 성당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6시부터 저녁식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거의 없단다. 그냥 주문되는 걸로 두 개 시켰다. 시베니크 스타일 홍합 토마토 스튜에 빵, 파스타. 음식이 나오자마자 후다닥 먹고는 바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크로아티아 시베니크 전통음식 홍합토마토스튜







Sveti Frane (성 프란치스코 성당)


성수대


성당 내부 천장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 한 나무 천장이 신기했다. 성수대에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긋고 자리에 앉아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


천 여개의 지향이,
지향을 봉헌하는 이들의 마음이
하늘에 닿길 소망합니다.
얼마나 간절한지,
얼마나 다급한지 주님은 아십니다.
저희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아버지, 아빠, 나의 주님!


기도가 끝나고 바로 미사가 시작됐다. 지향을 쓴 종이를 손에 쥐면서 이 미사의 은총을 쏟아부어 주시길 청했다. 성체를 영하자마자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제대 위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봤다.


'얘야, 알고 있단다.
듣고 있단다.
내가 이렇게 너희와 함께 있잖니.'




거룩한 미사의 은총 속에 감사기도로 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앞에 앉아 있던 이곳 자매님 한 분이 갑자기 고개를 확 돌리더니

'미사가 끝난 거 아니에요. 안 끝났어요. 끝나지 않았다고요. 싸크라멘토. 싸크라멘토~'


'아~! 싸크라멘토!'


'엄마, 엄마, 성시간이 있나 봐요~!'


'어머, 성시간? 성시간이 있다고요?


엄마는 성시간이 있단 말에 놀라 한국어로 '성시간이 있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셨는데, 앞에 계신 자매님이 듣더니 맞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성시간'을 어찌 알아듣고 ㅎㅎㅎ





신부님께서 다시 나오시더니 제대 위로 감실 문을 열었다. 성체가 모셔져 있었다. 세상에, 금요일에 *성시간이 있을 줄이야!

(한국에선 보통 매달 첫 목요일 저녁에 성시간이 있다.)


*성시간(聖時間, 라틴어: Hora Sancta)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성체 신심 행위 가운데 하나로, 성체 안에 현존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시간이다. (출처:위키백과)


우리는 어제에 이어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또 한 번의 서프라이즈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따라 유독 일이 많아 다들 지치고 힘들었는데 예수님께서 맞이 해 주신 품이 너무 따뜻하고 편안했다.


한 시간 정도 성시간을 마치고 성당을 나왔다.

맛있는 밥을 양껏 먹고 배를 두드리며 '자~알 먹었다!' 하듯이.



숙소로 가려고 주차장으로 걸어오는 길에 노을을 봤다. 아드리안 해를 조금씩 붉게 물들이는 짙은 노을빛이 아름다웠다. 길을 걷는 사람들 얼굴에도, 우리 마음에도 노을빛은 미소가 되어 물들어졌다.


땡볕에 종종걸음으로 걸었던 오늘의 순례길도 역시나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루의 마무리를 '기쁨'으로 이끄셨다.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은 덤으로 얻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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