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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샬 May 22. 2020

달라이 라마의 마을, 맥그로드 간즈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인'들의 자그마한 안식처

그냥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 아니야?


그렇다. 맥그로드 간즈에 가기 전,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그저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이었다. '맥그로드 간즈', 즉 '맥그로드라고 하던 이가 살던 마을'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맥그로드 간즈의 위치 / 위키백과


맥그로드 간즈는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에 위치한 지역이다. '맥그로드 간즈'라는 지명은 영국령 식민지 시절 펀자브 지역의 총독이었던 '맥그로드(Mcleod)' 경의 이름과 마을, 혹은 일대 등을 의미하는 '간즈(Ganj)'가 합쳐져 생긴 말이다. 즉, 맥그로드 간즈는 과거 맥그로드 경이 살던, 혹은 머물던 일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이 곳은 '작은 라싸(Little Lhasa)'라고 불리기도 한다. '라싸'는 과거 티베트의 수도를 의미하는데, 이 곳에 티베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별명이 붙여졌다. 티베트인들이 이곳에 많이 거주하게 된 이유는 '달라이 라마' 때문이다.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티베트인들은 인도로 망명을 했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는 산기슭에 위치한 이 곳 ‘맥그로드 간즈’에 정착을 시도했다. 이후 많은 티베트인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해발 1800m에 위치한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해발 1800m에 위치한 탓에, 이 곳 맥그로드 간즈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올라와야 한다. 그것도 버스로 말이다. 그 도로가 우리나라만큼 포장이 잘 돼있거나 상태가 좋다면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다. 버스 바로 옆만 보더라도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도로 폭도 매우 좁아 버스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다. 도로는 비포장도로인 곳이 많아 버스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린다. 그 상태로 델리에서 12시간을 가야만 도착할 수 있다.


맥그로드 간즈로 가는 버스. 절대로 온전히 잠을 청할 수 없다.


12시간이 넘는 여행 끝에, 우리는 겨우 맥그로드 간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델리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했으니, 도착 시간은 아침 정도였다. 그렇게 멀미를 하고 잠을 설쳤음에도, 우리는 배가 고팠다. 일단 우리가 예약했던 숙소에 가기 전에 밥부터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리 알아놨던 식당으로 바로 출발했다. 식당 이름은 '피스 카페(Peace cafe)'였는데, 이 곳은 '뗀뚝(Thenthuk)'이라는 티베트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맥그로드 간즈에서 가장 많이 찾는 음식점이기도 했다.


피스 카페의 뗀뚝. 생긴 것처럼 우리나라의 짬뽕 수제비와 비슷한 맛이 난다.


뗀뚝은 티베트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수제비와 비슷한 음식이다. 밀가루 반죽의 수제비 같은 것들이 들어가는 국물 요리다. 이 음식은 티베트 요리인지라 티베트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레(Leh)와 델리에서 티베트인들이 모여사는 티베탄 콜로니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이 음식은 인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얼큰한 국물 요리다. 사실 저렇게 빨간 국물을 가진 뗀뚝은 이 식당에서만 봤는데, 이 식당은 한국인, 티베트인 부부가 운영을 해서인지 한국화(化)가 어느 정도 돼 있다. 우리는 오래된 버스 여행 때문에 느글거리던 속을 얼큰한 뗀뚝으로 달랬다.


맥그로드 간즈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이렇게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다.


맥그로드 간즈에는 '코라'라고 하는 길이 있다. '코라'라는 말은 '돌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과거 티베트의 왕궁인 포탈라 궁을 돌며 기원을 드리던 것에서 유래한다. 맥그로드 간즈의 '코라' 길은 현재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고 있는 '쫄라캉'의 외곽을 둘러싼 길이다. 코라 길을 돌다 보면, 승려들과 많은 티베트 인들을 만날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 길을 안내하는 개들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맥그로드 간즈 여행기를 보면 이 코라 길을 안내하는 개들을 봤다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개들은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도맡아 한다.


코라 길을 안내하는 개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른다.
코라 길에 있는 '마니차'
마니차는 불교에서 쓰는 법구 중 하나로, 티베트 불교에서 많이 사용된다. 금속제, 혹은 나무로 된 원통의 안에 불경 두루마리를 넣어 놓고, 진언이나 기도를 하면서 이를 한 번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혹은 육자진언을 한 번 외운 것과 같은 공덕이 생긴다고 한다. 주로 시계 방향으로 돌리나, 교파에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도 한다. 주로 밀교 계통의 불교 종파에서 많이 사용한다. 때문에 우리나라보다는 티베트나 몽골 등 티베트 불교나 밀교가 성한 지역에서 흔히 쓰인다.(출처 : 나무 위키)


마니차는 맥그로드 간즈를 비롯한 티베트인들이 사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마니차를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생긴다고 들 한다. 실제로 코라 길을 걷는 승려들과 티베트 인들이 이 마니차를 돌리면서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코라 길을 걷는 것이 단순히 산책이 아니라 일종의 순례길을 걷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마니차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감히 손을 대지는 못했지만, 마니차에 관한 설명을 듣고 우리가 돌려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도 천천히 길을 거닐며 이 마니차를 돌렸다. 우리 중에 불교를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 행위가 왠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길거리를 거닐다가 우리가 들른 곳은 티베트 박물관과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궁이었다. '리틀 라싸'라고 불릴 정도로 티베트인이 많이 살고 있는 이 곳은, 달라이 라마가 실제로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쉽게 볼 수는 없으며, 가끔 운이 정말 좋은 경우에는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이 곳은 티베트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티베트 박물관과 같이 그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곳도 존재하며, 티베트 불교를 위한 법당도 있다.


티베트 박물관
티베트인이 중국인에게 탄압받고 있다는 내용. 간판 주위에 원숭이들이 보인다.
박물관에 있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


많은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를 개인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계승직'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최고 수장을 의미하는데, 그 지위의 승계에 있어 다소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선대 달라이 라마가 사망하면 '윤회설'에 의거해 달라이 라마의 영혼이 다른 아이의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그 뒤를 이을 계승자가 될 아이를 '판첸 라마'가 이끄는 승려들이 찾으러 나선다. 이후 이들의 적법한 심사를 거쳐 아이가 환생자로 판명되면 즉시 후대 달라이 라마로 선출된다. 달라이 라마는 보살의 화신으로 티베트와 다른 모든 중생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계속해서 환생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이 티베트를 강제로 점령한 1959년 이래 인도 공화국에 망명해 50여 년째 다람살라에서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는 폭력 노선을 지양하고 비폭력 운동을 주장한 공로로 198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달라이 라마는 14대를 마지막으로 환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이는 티베트 망명정부를 탄압하는 중국과 연관이 깊다.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환생자를 찾아내고 이를 공인할 판첸 라마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부는 기존의 판첸 라마를 감금하고 자신들이 승인한 판첸 라마를 별도로 옹립했다. 만약 현재의 14대 라마가 죽게 된다면, 친중파인 달라이 라마를 옹립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달라이 라마는 그의 후계자가 과거 티베트가 위치하던 중국이 아닌 현재 망명정부가 위치한 인도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달라이 라마 사후의 후계자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맥그로드 간즈에 있는 '트리운드'라고 하는 산맥의 꼭대기에서
트리운드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산맥


비록 달라이 라마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맥그로드 간즈를 방문하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현재 인도로 망명을 하며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고 있다는 점이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임시정부가 존재했었고, 일본의 많은 탄압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의 티베트는 과거 우리나라의 상황과 다소 다르다. 중국의 통치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으며, 국제 사회가 티베트 독립운동을 직접 돕는 등의 공세적인 정책보다는 중국의 현 세력권을 인정하고 대신 팽창을 막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 14세는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자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티베트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공존이 필요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망명정부의 노력 이상으로 더 큰 행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높은 긍지와 노력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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