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위샬 May 20. 2020

외할머니의 육개장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맛에 대한 그리움

TV 그만 보고 빨리 와서 밥 먹어!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나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외할머니에게 상당한 고역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일 때문에 바빴던 탓에 어린 나와 동생의 밥을 챙겨주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외할머니는 나와 동생을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맡아주셨다. 여느 아이들과 같이 우리는 밥을 먹기 싫어했고,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며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두 살 터울이었던 나와 동생을 끝까지 자리에 앉혀서 밥을 먹였던 외할머니의 인내심이 새삼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보기 전에 일찍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시골에 사시다가, 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쯤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셨다. 부모님이 두 분 모두 하루 종일 일을 하시느라 우리를 제대로 돌보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외할머니가 직접 팔을 걷으신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자상하면서도 엄격하신 분이었다. 우리가 밥을 제대로 먹기 전까지는 먼저 숟가락을 뜨지 않으셨고, 우리가 어떤 반찬을 먹고 얼마나 밥을 먹는지 세심하게 관찰하셨다. 그러다 우리가 편식하려고 할 때에는 그 반찬을 먹을 때까지 끝까지 엄격하게 먹이시곤 하셨다. 아마 끝까지 골고루 먹이려고 하셨던 외할머니의 뚝심이 지금의 편식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외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단연 최고였다. 과거 오 남매를 혼자서 길려내셨던 외할머니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요리 경력을 갖고 계셨다. 특히, 부모님께서 일을 하시느라 요리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밥과 반찬은 모두 외할머니가 뚝딱 만들어내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육개장'이다. 육개장이라는 음식은 사실 그렇게 특이한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시던 음식이었고, 아마 가장 자신 있어하시던 음식으로 기억한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알맞은 간에, 직접 따신 고사리를 손질해 넣은 육개장은 어린 나에게도 정말 맛있었던 음식이었다. 다른 음식보다도 육개장이 나올 때면 나는 모든 밥을 육개장에 말아 싹싹 비워내곤 했다.



외할머니의 육개장에는 항상 싱싱한 콩나물과 고사리가 들어갔다. 하지만 편식을 하던 어린 나는, 육개장 안에 있는 콩나물과 고사리를 모두 먹지는 않았고 주로 고기와 국물만 건져먹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편식을 하던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다. 콩나물을 봐. 길쭉하지? 콩나물을 먹으면 콩나물처럼 키가 쑥쑥 클 수 있어. 키가 다른 또래들에 비해 작았던 나에게 할머니는 '키가 클 수 있다'는 유혹을 하셨다. 키가 작은 것이 싫었던 나는 콩나물이 싫었음에도 열심히 꾸역꾸역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래도 그 이후에는 키가 쑥쑥 컸던 것을 보니, 할머니의 전략이 어느 정도 통했던 것 같다.


한편, 내가 중학생이 되자, 외할머니는 점점 요리를 안 하시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부모님께서 직접 요리를 하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전보다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지 않으셨고, 나 또한 중학생이 돼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하느라 외할머니를 자주 뵙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외할머니를 뵈러 동생과 함께 직접 댁에 놀러 갔다. 우리는 사실 밥을 먹고 와서 배가 불렀지만, 외할머니는 끝내 밥을 해주신다며 우리를 자리에 앉혔다. 외할머니는 우리가 좋아하던 육개장을 만든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원래 같았으면 뚝딱 육개장을 만들어내실 외할머니였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40분이 지나도, 외할머니의 육개장은 도무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무언가 잘못됐나 싶어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찾아갔다. 외할머니는 분명 요리를 하고 계셨다. 하지만 육개장을 만드신 것으로 보이는 그 냄비에는, 그저 맹물과 간장만이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 처음에는 간단한 것들을 까먹으셨다. 예를 들어, 우리 집에 무언가를 가져오시기로 했는데 까먹고 가져오시지 않은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치매 증세는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외할머니가 시장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셨는데, 왜 밖에 나오셨는지를 기억하지 못하셔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 경우도 있었다. 결국, 외할머니는 병원에서 치매를 진단받고 치매를 완화하는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치료들도 할머니의 치매를 늦췄을 뿐,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셨다.


치매에 걸리신 외할머니는 이모할머니가 돌봐주셨다. 그래도 얼마 동안은 웬만한 것들은 다 기억하시는 편이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군대에 입대한 나에게, 외할머니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할머니의 기억은 과거 내가 할머니와 함께 지낼 적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었다. 심지어 할머니는 5분에 한 번 꼴로 나에게 그 질문을 계속해서 물으셨고, 처음에는 '군대에 입대했다'라고 말했던 나는 나중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1등 하고 있다'는 식으로 대답을 바꿨다.


치매가 많이 악화된 외할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외할머니는 이제 자신이 직접 낳고 기르신 어머니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시지 못하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끔씩 기억이 돌아오시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에 어머니와 이모들이 외할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찾아가신 적이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대면으로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유리창을 두고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이모들을 보신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들 왔네?


이내 기억을 다시 잃어버리셨지만, 외할머니가 그래도 딸들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신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외할머니의 치매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제 제대로 된 문장으로 대화도 하실 수 없고, 나와 동생을 비롯해 어머니에게도 존댓말을 하실 정도로 제대로 분간하시지 못하신다. 외할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과거의 육개장이 생각난다. 그 육개장의 맛이 그리워 여러 육개장을 먹어봤지만, 아직까지도 외할머니의 육개장에 비견할만한 맛이 나는 육개장은 먹어보지 못했다. 이제 외할머니가 대부분의 기억을 잃으신 상황에서 그 육개장을 다시 먹을 수도 없고, 육개장의 레시피를 여쭤볼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외할머니의 육개장이 더욱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하는 여행이 좋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