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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샬 May 06. 2020

'진짜' 인도의 모습을 간직한 시장

아시아 최대의 향신료 도매시장 '카리 바올리'


네? 향신료 시장이요?


인도에 체류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인도어과의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어떤 책의 집필에 참여하고 계셨는데, 그 책에 쓰일 인도 현지 사진이 필요하시다고 하셨다. 그리고 단순히 사진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위해서라도 꼭 가보면 좋을 곳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교수님께 전달받은 곳은 델리의 향신료 시장, '카리 바올리(Khari Baoli, खारी बावली)'라는 곳이었다. 처음 들어본 지명이었지만, 나는 다짜고짜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구글 지도를 통해 위치를 찍어 보내주셨다.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 스마트폰을 통해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 지도에는 '찬드니 촉(Chandni Chowk)'이라는 지명이 써 있었다. 찬드니 촉은 델리에 위치한 재래시장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그저 평범한 재래시장이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은 내가 이전까지 봤던 다른 시장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했다.


찬드니 촉 시장 내부에 있는 '카리 바올리'의 모습. 일꾼들이 수레에 앉아 쉬고 있다.


'찬드니 촉'은 인도의 진정한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진짜다. 우선,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람이 많고 붐빈다. 단순히 사람만 있으면 그나마 나을 수 있다. 물품을 싣고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수많은 인파 사이를 귀가 찢어질 듯한 경적 소리를 울리며 뚫고 지나가고, 사람을 태운 사이클 릭샤가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비키라고 소리친다. 시장의 상인들은 호객 행위를 하느라 목이 찢어지게 소리를 질러대고, '인간 파도'를 만든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거세게 밀치며 몸싸움을 한다. 이 곳에는 5분만 있어도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내가 가야 할 곳이 '그' 찬드니 촉이라니.


하지만 내가 덥석 수락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제 와서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향신료 시장 '카리 바올리'에 가기로 결심했다. 같이 유학을 왔던 친구들 중에 혹시나 갈 사람이 있을까 싶어 넌지시 물어봤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하나같이 입을 꾹 닫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말로 듣지는 못했지만, 이미 충분히 대답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 홀로 카리 바올리로 떠날 채비를 했다.



아시아 최대의 향신료 도매시장 '카리 바올리'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마살라'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마살라 짜이'부터 '마살라 햄버거', 그리고 '마살라 과자'까지. 이 마살라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나 다양한 음식에 들어가는 걸까 궁금했을 것이다. 실제로 '마살라'라고 적힌 음식들을 먹어보면, 우리가 그동안 맛봤던 카레의 향이 나서 익숙함을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마살라의 향 자체가 굉장히 강하고 이국적이어서 아예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도 음식에 사용되는 각종 향신료는 주로 식물의 열매나 씨앗을 뜨거운 불에 볶아 향을 극대화하고 직접 빻아서 사용한다. 이렇게 가공한 여러 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종합 향신료를 ‘마쌀라(masala)'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의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역할을 하는 마쌀라는 기본적으로 고추, 강황, 계피 등으로 구성되며 이 외에 정향, 육두구, 월계수 잎, 회향풀 등 보통 5가지에서 10가지의 서로 다른 향신료가 첨가된다. 전문적인 요리사들의 경우 20가지 이상의 향신료를 혼합해 자신만의 마쌀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듯 각 가정이나 식당마다 마쌀라에 사용되는 향신료의 종류, 채취시기, 가공방법, 혼합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마쌀라가 들어가는 음식이라 해도 수백 수천 가지의 맛이 존재하게 된다. (출처 : 신민하, <세계의 시장을 가다> 中)


카리 바올리에서 팔고 있는 '마살라 파우더'를 현대식으로 포장한 모습


카리 바올리는 이러한 '마살라'와 같은 향신료를 파는 도매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레를 먹을 때 보통 '파우더'를 써서 요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가루는 '커리 파우더'라고 하는 향신료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살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커리 향이 나는 것이다. 흔히 '인도 냄새'라고 하면 이 마살라 향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카리 바올리 시장의 기원은 17세기 중엽이라고 한다. 지금의 카리 바올리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는 당시 '소금기가 있는(카리)' 물이 나오는 '계단식 우물(바올리)'이 있었고, 일반인들이 목욕을 하거나 가축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곳으로 활용됐다. 이후 계단식 우물이 있는 그 자리에 향신료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지금과 같은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무거운 향신료 자루를 수레를 통해 나르는 인부들


카리 바올리에 들어섰을 때 나는 사실 굉장히 놀랐다. 마치 과거 17세기 인도에 있었을 법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델리도 이제 현대화된 도시이기 때문에 '과거 인도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카리 바올리가 속해 있는 찬드니 촉 시장의 경우에도 과거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카리 바올리는 정말 과거의 인도 모습을 그대로 되살려 놓은 것 같았다. 길목은 매우 좁아 사람들만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고, 인부들은 무거워보이는 향신료 자루를 직접 수레를 통해 나르고 있었다.


카리 바올리에 있는 상점에서 파는 향신료 가루


카리 바올리는 주로 향신료를 파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매운 냄새가 코끝을 강렬하게 찔러댔고,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재채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재채기를 하면서도 사진을 찍어오라고 하신 교수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더욱더 시장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시장의 깊은 곳 내부에는 향신료가 가득 차 있는 거대한 창고가 있었다. 외부에서는 향신료가 진열된 상점이 있었는데, 이 곳의 물품들을 창고에서 가져오는 것 같았다. 시장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재채기는 심해졌고, 심지어 눈까지 매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창고 근처에 있던 인도인들이 외부인이었던 나를 미심쩍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사진을 찍고 서둘러 외부로 나왔다.



'진짜' 인도의 모습을 간직해온 곳


카리 바올리의 어느 상점에 진열된 향신료


강황을 정리하던 한 상인의 모습


과거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사람들이라면, '인도' 하면 '향신료'가 곧바로 떠오를 것이다. 과거 유럽인들은 인도로부터 '후추' 등의 향신료를 수입해왔다. 특히 이 향신료 무역은 막대한 수익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도와의 교역로를 개척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향신료로 인해 전쟁까지 벌어졌던 역사를 생각해보면,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향신료 시장, 카리 바올리는 '역사 그 자체'다. 고대 유럽에서는 인도산 후추 한 줌의 가격이 노예 한두 명의 가치와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비싼 가격에 거래되던 후추가 지금까지도 같은 상점, 같은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웠다. 나는 마치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리 바올리에 다녀온 나는 '진짜' 인도를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리고 생각해왔던 '인도'의 모습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현대화된 인도는 사실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유 택시인 우버가 돌아다니고, 각종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거대한 쇼핑몰도 있으며, 높은 층의 빌딩들이 각자의 높이를 자랑하듯 우뚝하게 서 있다. 이처럼 현대화된 인도 내에  아직까지도 '과거', 혹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카리 바올리 시장은 나에게는 '진짜배기' 인도의 모습이었다.


참고 문헌 :  책 <세계의 시장을 가다>, 인도 뉴델리 카리 바올리 시장 편(신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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