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꿈의 흔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샬 May 07. 2020

면접관을 웃겨보라고요?

도대체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는 면접관의 질문

자, 이제 면접관을 웃겨 보세요


긴장감이 흐르던 다대일 면접장이었다. 나 혼자서 3명의 면접관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때였다. 심지어 나는 첫 번째 순서였고, 가장 먼저 면접장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렇게 긴장하며 하나둘씩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을 하던 중, 갑자기 한 면접관에게서 '그' 질문이 들어왔다.


우선, 내가 본 면접은 절대로 '개그맨'을 뽑는 면접이 아니었다. 한 지방 방송사에서 공채 제작 PD를 뽑는 자리였고, 나는 당연히 PD가 되고 싶어 면접을 보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보고 면접관을 웃겨보라고? 내가 지금 개그맨 뽑는 자리에 와 있는 건가? 잠시 동안 내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준비 안 된 자기소개는 어떻게 준비하지? / <무한도전>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웃길까?'라는 생각이었다. 그 질문이 옳은지, 그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당장의 취업, 특히 PD가 되는 꿈이 우선이었던 나는 질문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그리고 인상적으로 답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답을 하기까지 약 5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당시의 5초는 나에게 5년과 같이 긴 시간이었다. 5초 동안 나는 내 두뇌를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인기'를 해볼까 생각했다. 물론 나에게 개인기 따위는 없었다. 그나마 장기자랑에서 노래를 했던 경험이 전부였는데, 노래를 하는 것은 내 기준으로 전혀 웃기지 않았다. 만약에 어떤 가수의 모창을 한다고 하더라도, 면접관들이 그 가수의 노래를 모르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흔히 하는 '성대모사'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따라 하던 개그맨이나 배우의 성대모사는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혀 비슷하지 않았고, 또 그걸 면접관 앞에서 하게 되면 너무 가볍다고 할 것 같았다. 이렇게 개인기를 하겠다는 계획은 약 1초 만에 포기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아재 개그'였다. 내 앞에 앉아 있던 3명의 면접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아저씨'들이었고, 그들을 실제로 웃기기 위해서는 아저씨에게 통하는 '아재 개그'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아재 개그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왕이 넘어지면? 킹콩. 딸기가 직장을 잃으면? 딸기 시럽. 그런데 '만약에 아재 개그를 했는데 면접관들이 정색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워낙 긴장한 탓에 아재 개그를 떠올려보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아재 개그를 하겠다는 두 번째 계획 역시 약 2초 만에 포기했다.


이제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머릿속에 있던 '그나마' 웃긴 것들을 짜내기 시작했다. 면접관들을 실제로 웃길 수 있으면서도, 면접장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가볍지 않은 것. 그리고 무언가 PD의 톡 튀는 아이디어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것. 물론 그런 것은 내 머리에 없었다. 나는 결국 일단 '인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던져보기로 생각했다. 그래도 처음에 면접관들이 내 전공이었던 '인도'에 관심을 보였으니, 인도 얘기를 하면 웃기진 않더라도 재미있어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인도의 사이클 릭샤다


"제가 인도를 여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인도어과 동기 5명이랑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릭샤를 탈 일이 생겼습니다. 릭샤에는 오토바이 릭샤와 사이클 릭샤가 있는데, 저희가 나가니까 모든 릭샤가 저희를 태우려고 오는 겁니다. 사실 오토바이 릭샤는 좀 비싸다고 생각했고, 그나마 사이클 릭샤를 나눠 타는 것이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이클 릭샤를 모는 아저씨가 저희 5명 보고 다 타라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5명을 싣고 자전거를 몰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아저씨가 계속 타라고 하셔서 결국 릭샤에 탔습니다. 그 아저씨는 건장한 남자 5명을 태우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5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20분이나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그때 이야기했던 에피소드를 다시 글로 써봐도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을뿐더러, 웃기지도 않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어도 분명 정색하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태생이 웃기지 않은 사람인데 어떻게 웃겨보라는 것인가? 그 이야기를 다 끝마치고 나서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현타(현자 타임)'가 찾아왔다.




그게 웃겨요?


이야기를 끝마친 나에게, 면접관 한 명이 말했다. 그게 웃기냐니. 물론 내가 직접 했지만 전혀 웃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면접관의 그 발언을 듣고 나니 마치 망치로 머리를 쾅 내려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꽤 큰 상처였던 것이다. 아니, 내가 개그맨 하려고 여기 온 것도 아니고 당신들을 무슨 수로 웃겨? 그렇게 진지하고 정색한 얼굴로 무섭게 쏘아붙이는데 웃길 수 있는 게 더 신기하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면접에서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대답을 잘 못해서도 아니고, 면접관에게 욕을 해서도 아니고, 그저 그들을 '웃기지 못해'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그들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미 '면접관을 웃겨라'라는 미션에 처참히 실패했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신이 날아간 멍한 상태로 이후의 면접을 지속했고, 결국 나는 그 면접에서 탈락했다.


백 번 양보해서, 왜 웃겨보라는 질문을 했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PD라는 직업이 순발력이 필요하고 트렌드에 민감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나는 내 순발력, 혹은 센스를 제대로 어필하지 못했고 실제로 재미없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던 것이 단순히 순발력을 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들을 웃길 수 있는 것을 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 면접관의 '그게 웃겨요?'라는 말은, 면접 당시의 상황을 곱씹을수록 기분이 정말 나빴다.


시간이 꽤 지난 이후, 그 방송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PD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이전 면접에서 된통 당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갖가지 질문을 준비해 갔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어떻게 넣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부터,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뭘 할 거예요?'라는 질문 등 가끔 면접에 나오는 것들을 주로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면접은 달랐다. 면접에서는 진짜로 'PD의 역량'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이 나왔다. 예를 들어, 김태호 PD와 나영석 PD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혹은 앞으로의 예능 트렌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이었다.


사실 그 면접 역시 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의 면접보다 나았던 점은 결과에 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떨어진 이유는 역량을 확인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실패를 발판 삼아 앞으로 역량을 더욱 키워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웃기지 못했지라는 자책을 하며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만약 당시의 면접관을 보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제 와서 직접 보고 말할 수는 없기에 이렇게 글로 말을 대신하고 싶다.


면접관님은 저 웃길 수 있으세요?


진짜로 나를 웃기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것이다. 참고로 나는 웃음이 헤프기 때문에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재중 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