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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샬 May 11. 2020

춤으로 화해하는 사람들

인도와 파키스탄의 치열하고도 평화로운 국경 응원전

인도와 파키스탄의 치열한 국경 응원전

본래 분단국가의 국경은 삼엄하다. 과거 독일에서는 서독과 동독 사이에 높은 장벽이 쌓이기도 했고, 한반도에서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철조망을 두고 삼엄한 군사적 대치가 벌어지고 있다. 비록 9.19 군사합의 등으로 인해 GP의 감시초소가 철수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는 있지만, 언제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총구를 겨누는 대치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70년 전에 분리된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에도 이와 다르지 않다. 3,200km에 달하는 국경 대부분에 철조망이 세워져 있으며, 서로에게 총기를 겨누며 삼엄한 대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경의 검문소 중 하나인 '와가 보더'라는 지역은 다른 검문소와 비교해 다소 특이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분쟁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속되는 분쟁은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7년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 과정에서 소수의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의 지배에서 벗어나 따로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 했다. 분쟁 끝에 마침내 인도에서 분리된 이슬람 국가가 세워졌는데, 이 나라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두 나라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원인은 '카슈미르'라고 하는 지역 때문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출처 : 한국일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인도에는 수많은 자치령이 있었는데,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지면서 이들 자치령도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 둘 중 하나로 귀속을 결정해야 했다. 당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있던 카슈미르 지역의 지도자는 힌두교 신자로서 인도 편입을 결정했다. 문제는 카슈미르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 신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카슈미르 지역의 주민들은 파키스탄으로의 귀속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고, 이에 인도는 군대를 파병해 이들을 제압했다. 그러자 파키스탄도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과 이슬람 보호를 내세워 병력을 보내면서, 1947년 10월에 두 나라가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유엔의 중재로 카슈미르 지역의 3분의 2 가량은 인도가 차지해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주가 됐고, 3분의 1은 파키스탄령인 '아자드 카슈미르' 지역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와가 보더에서 이뤄지는 '국기 하강식' / 출처 : 위키피디아


한편, 이렇게 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두 국가의 국경 지역인 '와가 보더'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바로 '국기 하강식'이다. '와가 보더(Wagah Border)'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펀자브 주에 있는 국경이다. 이 곳에서는 매일같이 서로의 국기 게양대와 관문을 맞대고 국기 하강식이 펼쳐진다. 두 국가가 총을 맞대고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국경에서 매일같이 이러한 행사가 있다는 것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행진하는 군인을 응원하는 인도 관중의 모습
관중석을 전두 지휘하는 바람잡이들
인도여 영원하라!(Hindustan Zindabad!)
어머니 인도에 영광을!(Bharat mata ki jay!)
어머님께 경의를 표합니다!(Vande matram!)

바람잡이들은 관중들에게 계속해서 이러한 구호를 요구한다. 관중석에 운집한 수많은 인도인들은 목청이 터지도록 이 구호를 따라 외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구호 소리가 작아지면, 이 바람잡이들은 갑자기 관중석 앞으로 와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멜론은 다른 멜론을 보고 색을 바꾼다고 합니다. 그들의 함성을 봤으니 여러분들도 더 큰 소리를 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더 큰 함성을 낼수록, 오늘 밥이 맛있을 겁니다. 더 크게 소리치세요!

그의 응원에 관중들도 화답해 다시 큰 소리를 외친다.


국기 하강식은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진행된다. 먼저 하강식이 진행되기 전, 각국의 응원석에 위치한 관중들이 국기를 흔들고 춤을 추며 열기를 고조시킨다. 관중석 앞에는 바람잡이들이 나서서 응원을 전두 지휘한다. 관중들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를 즈음, 마침내 화려한 옷차림을 한 군인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갑자기 난데없이 허공에 발차기를 시전 한다.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우리들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각 국 국민들에게는 '멋짐' 그 자체다. 이들은 발차기를 하는 등의 과장된 몸짓을 하며 국기 게양대까지 행진한 후에 국기를 내린다.


'우리가 더 강하다'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군인들
하늘 높이 발을 차는 인도의 군인들 / 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서로를 무섭게 째려보는 양측의 군인들 / 출처 : 유용원의 군사세계


양국의 국기 하강식은 일종의 자존심 대결이다. 서로의 응원 소리가 더욱 커야 하고, 서로의 행진이 더욱 멋있어야 한다. 관중의 응원 소리가 커질수록 행진을 하는 군인들의 다리는 더욱 높게 올라가고, 몸짓도 과장된다. 이후 각국의 군인이 행진을 하며 검문대에 도착하면, 제대로 된 결투가 벌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또다시 하늘 높이 발을 찬다. 마지막으로 군인들이 국기를 하강하면 군중들은 조용해지고 진정한 일몰 퇴각 의식이 행해진다.




행진과 응원전이 끝난 후 비로소 국기를 하강하는 양측


와가 보더에서의 국기하강식은 분쟁으로 인한 긴장감 속에서 일종의 '완화 장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직까지도 유혈 사태가 벌어질 정도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분쟁 속에서도 양국은 와가 보더에서의 행사를 통해 이를 최대한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무조건 총구를 맞대고 서로를 경계하기보다도, 평화롭게 이뤄지는 이 행사를 통해서 협력과 화해를 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러한 '완화 장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유해 공동 발굴 사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최근 다시 남북 관계가 악화됨으로 인해 이 사업도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국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완화 장치'와 같은 행사들이 나타나 두 국가의 긴장 상황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끝으로, 와가 보더의 국기 하강식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영상을 첨부한다.

와가보더 국기하강식 / 출처 : Hindusta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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