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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샬 May 21. 2020

인도의 카스트는 아직 남아 있다

카스트는 제도가 아닌 정체성이다

인도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카스트'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은 카스트가 크게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그리고 수드라의 계급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계급이 인도 사람들을 구분 짓는다는 것이다. 또한, 카스트가 인도에서 법적으로 폐지됐으며, 인도에서 카스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카스트는 폐지됐을까?




카스트란 무엇인가?


사회평론 '교양으로 읽는 용선생 세계사' (차윤석·김선빈 외 글, 이우일 외 그림)

카스트(Caste)란, 일정한 신분 계층 집단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신기한 것은 카스트라는 말이 인도의 힌디어에서부터 유래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스트는 17세기 인도와 항해 무역을 하던 포르투갈인들과 에스파냐인들이 사용했던 포르투갈 어의 '카스타(Casta)'라는 용어로부터 유래했다. 포르투갈 어 'Casta'는 '혈통' 혹은 '순수함'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다. 포르투갈 인들은 인도인이 신분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에 주목했고, 그들의 체계에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사회 체계를 '바르나(Varna)'와 '자티(Jati)'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선, 바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색깔'을 의미하는데, 이는 계급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집단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가 바로 이 바르나라고 하는 체계인데, 원칙적으로는 이 4개의 계급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을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카스트 시스템을 설명하는 그림 / BBC


바르나의 제1계급인 브라만은 제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독점하고 신성한 지식을 소유하고 대단한 권위를 획득했다. 또 제2계급은 크샤트리아였는데, 귀족과 무사계급이었으며 왕자와 왕들이 그들 가운데서 나왔다. 제3계급인 바이샤는 농부, 목축업자 그리고 상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주로 정복민인 아리아인들로, 자유인들이었다. 이들 세 카스트가 고귀한 아리아인들로 간주되었고 “두 번 태어난(twice-born)” 사람들로도 불리었다. 제4계급은 수드라라고 불렸는데, 정복된 원주민들의 후손들을 포함하는 노예 계급이었다.


반면, 자티는 '출생'이라는 뜻으로, 동일한 업종에 종사하면서 결혼이나 음식 등을 함께 하는 종족 집단을 말한다. 이는 4개의 바르나나 불가촉천민의 어딘가에 속해 있는데, 한 마을에 20-30개가 존재하고, 인도 전체에는 2,000-3,0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나 제도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4개 집단 간에 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엄격해진 이후로는 직업이 철저히 세습되었다. 이후 하나의 '바르나' 안에 여러 개의 '자티'가 생겨났고, '자티' 간에도 상하 구별이 생겨났다.


인도에서 흔히 카스트라고 할 때는 바르나보다 더 세분화된 개념인 자티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흔히 카스트 집단에 직업적 속성을 부여하고 이 직업이 대대로 계승된다고 할 때 그때의 카스트 집단 단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소가죽을 손질하는 직업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직업을 대대손손 이어가는 경우가 바로 자티의 개념인 것이다. 한편, 현대화가 진행된 오늘날에는 이러한 직업과 자띠 간의 연계성은 매우 느슨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키의 또 다른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인 족내혼 관행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인도 카스트 제도는 법으로 폐지된 적 없다


1949년 제정된 인도 헌법 15조에서는 카스트와 관련해 이러한 규정이 있다. ‘국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sex), 출신지 가운데 그 어느 것에 의해 시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The State shall not discriminate against any citizen on grounds only of religion, race, caste, sex, place of birth or any of them.) 이 조항은 쉽게 말하면 카스트로 인한 '차별'을 폐지한다는 것이지, 카스트 자체를 폐지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카스트로 인해 발생하는 음식이나 결혼 등의 구분은 헌법에 규정된 '차별'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인도에서 카스트 자체는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인도 대법원 판결에 반발해 나타난 달리뜨(불가촉천민)의 시위 / BBC


실제로 인도에서 카스트는 아직까지도 사회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는 사회적 단위라고 할 수 있다. 대신, 인도에서는 카스트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규정함으로써, 그동안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진행된 카스트로 인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할당제'다. 인도의 할당제는 카스트 제도로 인한 오래된 차별로 인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불가촉천민들에게 보상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취지로 시작됐으며, 헌법에 이 제도가 확실히 명시되면서 명확한 법적 근거도 갖고 있다. 낮은 카스트 지위로 인해 차별받는 지정 카스트(SC: Scheduled Castes), 카스트 사회로부터 오랫동안 격리되어 살아온 지정 부족(ST: Scheduled Tribes), 그 외에 기타 후진 계급(OBC: Other Backward Classes)이 할당제의 대상이다. 인도 헌법에서는 '보상적 차별' 정책의 일환으로 이 세 범주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특혜와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카스트로 인한 불평등을 보상하는 제도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볼 때, 카스트가 법적으로 폐지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카스트는 정체성이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주변 풍경


카스트는 제도가 아니다. 즉, 카스트를 없애고 싶다고 해서 새로운 법안을 만들고 공포하더라도 폐지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스트를 없앤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성씨를 없애고 족보를 없애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인도 사회에서는 쉽게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으로 주어진 카스트라는 개념은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폐지되기 어려운 사회적 단위이자 체계다. 결국, 카스트는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난 것을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카스트는 제도라기보다는 정체성과 같다. 특히, 카스트는 국가에서 제정했거나 관리하는 법률 체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굳어진 개념이다. 카스트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여전히 인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카스트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은 분명히 없어져야 하는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계속돼 굳어져버린 카스트 체계는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출처 : 전국 역사교사모임. 2013. 『인도사: 다양함이 공존하는 매혹의 아대륙, 인도』. 서울: 휴머니스트.

최정욱(2013), 인도의 공공부문 할당제와 ‘지정카스트’의 정치 세력화

이광수, <인도 카스트 제도는 법으로 폐지된 적 없다>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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