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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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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샬 Mar 10. 2024

34살에게도 용기가 다시 찾아올까요

무모했지만 용기는 있었던 20대, 조심스럽고 용기도 없는 30대

@여수의 노을


#1. 곰믹스요?


28살이었던 2018년 한 언론사에 인턴 PD로 지원해 최종 면접을 보던 날이었다. 영상편집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당시 동영상 플레이어로 유명했던 곰플레이어 계열영상편집 프로그램인 '곰믹스'를 통해 편집을 독학했고, 이를 바탕으로 인도에 가서 20여 편의 영상을 직접 제작했다.


곰믹스는 분명 초보자에게 있어 간단하고도 유용한 영상 프로그램이다. 곰믹스가 없었다면 분명 영상을 만들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PD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많은 지망생들이 몰리는 인턴 PD의 최종면접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고작 곰믹스인 사람은 분명 나뿐이었다.


"영상편집 프로그램은 어떤 것을 쓰세요?"


"네, 저는 곰믹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곰믹스요? 곰믹스가 뭐죠?"


"아, 네...곰플레이어 회사에서 나온 영상 프로그램인데요..."


"아...혹시 프리미어 프로나 파이널컷은 쓸 줄 아시나요?"


"네, 적당히는 쓸 줄 압니다."


분명한 거짓말이었다. 영상편집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프리미어 프로나 파이널컷을 사용할 줄 알았다면 굳이 곰믹스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찾아온 최종면접 자리인데 고작 답변 하나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 인턴에 최종 합격한 나는 입사일 전까지 부랴부랴 책을 사서 프리미어 프로를 열심히 공부했다. 물론 프리미어 프로를 능숙하게 다루던 동기들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지만 말이다.


30대가 코앞이었지만 분명한 20대였던 나는, 무모했지만 용감했다.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20대의 나는 '나'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곰믹스였겠지만 나는 곰믹스로 직접 인도에 가서 영상을 찍었다. 심지어 곽튜브보다도, 빠니보틀보다도 빨랐다.


"너희들은 인도에서 영상 찍어서 유튜브에 올린 적 있어? 나는 해봤어." 그게 바로 내 '근거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2. 매체가 어디라고요?


30살에 기자가 된 나는 유명한 언론사에 다니고 있지 않아서인지 취재원들과 만날 때 매번 듣는 질문이 있다. "매체가 어디라고요?" 물론 그 질문이 정말 궁금해서 나온 질문일 수 있다. 정말 몰라서, 처음 들어본 매체여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체가 어디라고요?"라는 말 뒤에 있는 또 다른 말이 들렸다. "그런 매체에서 기사가 나오기는 하나요?"


분명한 '자격지심'이다. 20대의 나였다면 그 말을 절대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30대의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매체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은 절대로 아니었다. 분명히 우리 매체에는 훌륭하고 열심히 하는 기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부끄러운 이유는 다른 기자들과 비교했을 때 열심히 하지도 않고, 취재 능력 또한 떨어지는 '나'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PD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PD의 문은 너무 좁았다. 그렇게 차선책으로 선택한 직업이 기자였다. 나는 30대가 임박해서야 비로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반면, 주변의 기자들은 대학생 때부터, 빠르면 고등학생 때부터 학보사 등을 다니며 기자를 꿈꿔왔던 이들이 많다.


기자라는 꿈을 꿔왔고 기자가 돼서도 열심히 하는 그들과 비교해 '먹고살기 위해서', '백수로 살 수는 없어서' 등의 이유로 기자가 된 나는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했고, 자신감 또한 떨어졌다. '기자를 그만두고 PD를 다시 준비하면 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그리고 어느덧 기자만 '5년차'인 나에게 그런 용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속초 바다


#3. 34살에게도 용기가 다시 찾아올까요?


"형은 형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30대가 되고 나서 여러 번의 이별을 겪었던 나에게,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형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분명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점점 그 말의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너무 '안전한', 그리고 '보수적인' 선택을 해왔다. 그들의 '마음'이 확인돼야만, 정확히는 쌍방형 소통(?)이 확인돼야만 비로소 직진했던 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크더라도 '감히' 직진하지 않았다. 용기가 없어서였다.


최근에 그런 말을 들었다. 20대에는 10가지 중 1가지만 마음에 들더라도 사랑에 뛰어들었다면, 30대는 10가지 중 1가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만큼 안전한 선택을 해왔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34살로 어느새 30대 중반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용기'다. 그리고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또한 '용기'다. 용기 있고, 때론 무모하기도 했던 20대의 나에게는 그래도 용기의 '근거'가 있었다. 어떻게 용기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일단 방향은 잡혔다. 방법은?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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