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티 Feb 02. 2021

인도적 지원과 국제개발협력 내 관심분야 찾기

내가 생계지원(Livelihoods) 분야에 꽂힌 이유


인도적 지원/국제개발협력: 아무나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도적 지원이나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단순히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시아 등의 개발도상국에 가서 무작정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아프리카 탄자니아 난민캠프에서 근무를 할 때도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필자가 해외 봉사를 떠났다고 생각하거나 연차를 쓰고 한국에 갈 때마다 친척들은 이제 봉사 그만하고 한국에 와서 취직하는 게 어떻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인도적 지원 및 국제개발협력은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로 봉사활동처럼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과 열정만으로는 진출하기 어렵다. 섹터 별 전문성과 풍부한 현장 경험, 어학실력 등을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그렇다고 열정과 선한 마음이 안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전문성과 경험, 실력을 갖췄는데 정작 중요한 인류애 (Humanity)가 없어 일하면서 점점 시니컬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심지어 사회적 약자나 기관에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하는 활동가들도 많으니까.


인도적 지원 / 국제개발협력은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하며 재난현장이나 긴급구호 현장 혹은 난민캠프에서 *클라이언트 (client)의 필요(needs)에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주 목표이자 업무이다. 기본적으로 인도적 지원에는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United Nations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UN OCHA])에서 조정하는 11개의 메인 클러스터(cluster)와 그 외에도 서브섹터(sub-sector) 및 기타 섹터가 있다. 하지만 각 섹터별로 워낙 많은 UN 기관과 INGO, LNGO, 정부 관계자, 지역주민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다 보니 인도적 지원이 반복되거나 누락되는 등의 비효율적인 아웃컴도 상당히 발생한다. 

*보통 국제개발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에서는 원조를 받는 사람을 일컬을 때 '수혜자 (beneficiary)'라고 지칭하는데 필자는 수혜자라는 표현이 재난 생존자들의 역량과 존엄성을 간과한 '원조의 수령인'으로만 바라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클라이언트라는 단어로 대체함. 


 


인도적 지원 내 다양한 분야 소개


UN OCHA의 클러스터는 11개의 섹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이는 보건 (Health), 물류 (Logistics), 영양관리(Nutrition), 보호(Protection), 쉘터 (Shelter), 식수위생(WASH), 캠프 조정 및 캠프 관리 (Camp Coordination and Camp Management), 조기복구(Early Recovery), 교육 (Education), 긴급통신 (Emergency Telecommunication), 식량안보 (Food Security)인데, 이 외에도 현장에는 에너지&환경 (Energy & Environment), 커뮤니티와의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with Communities), 생계지원 (Livelihoods & Cash) 등의 기타 섹터가 있다.



보통은 위의 다이어그램처럼 각 섹터를 담당하는 UN 기관이 정해져 있고 재난 및 긴급구호 현장에서 각 UN 기관이 현장에 베이스를 둔 특정 NGO를 집행협력기관 (Implementing Partner [IP])으로 선정하여 다자협력기금을 주고 함께 일한다. 그렇다 보니 현장마다 섹터 별 담당 UN 기관은 동일한 반면 담당 NGO는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 세 개의 난민캠프 내 캠프 조정 및 캠프 관리 (CCCM) 섹터 담당 UN 기관은 모두 UNHCR인 반면, 냐루구수 난민캠프의 CCCM 담당 NGO는 NRC (Norwegian Refugee Council)이지만 은두타 캠프와 음텐델리 캠프의 CCCM 담당 NGO는 DRC (Danish Refugee Council)이다. 


그렇다면 나의 관심분야는?


인도적 지원과 국제개발협력 내의 여러 분야가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나의 관심분야,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 혹은 잘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는 관련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으며 관심분야를 파악할 수도 있고,  자신의 학부/석사/박사 전공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본인이 과거에 했던 업무나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사실 현장 경험을 통해 내 관심분야를 정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관심분야라는 것도 어떤 경험을 하냐에 따라 계속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현장 경험 전 막연히 관심 있던 분야가 막상 현장 경험 이후엔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던가 아니면 더 흥미롭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를 알게 된다던가 말이다. 



나의 첫 번째 관심 분야: 교육

사실 내가 난민캠프에서 일하기 전 가장 관심 있던 분야는 교육 분야였다. 나는 교육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고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이자 경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탄자니아처럼 난민의 '이동의 자유 (freedom of movement)'를 제한하는 이동제한 정책(Encampment policy)이 있는 국가의 난민캠프에서는 교육에도 생계에도 제약이 많다. 난민이 캠프 밖을 벗어날 수 없으니 교육의 기회와 생계를 꾸려나가는 기회는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난민 캠프 내에서 아무리 UNICEF 같은 국제기구나 Save the Children이나 Caritas, Plan International 같은 INGO들이 초등교육, 고등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이들은 인류학에서 말하는 'liminal space (경계 공간)'에 갇혀있다. 고국이 아닌, 그렇다고 정착하고 싶은 국가도 아닌 이웃 국가에서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던 난민 생활을 수년 또는 수 십 년을 이어나가는 '이도 저도 못하는 경계 공간' 말이다. 비단 탄자니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난민 사태가 점점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많은 난민들과 실향민들 등 강제 이주를 당한 이들은 언제 캠프를 떠날 수 있는지를 미지수로 남겨둔 채 모호함 속에서 살아간다. 


캠프를 떠나 탄자니아 내 대학교를 난민들이 진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캠프 내 당장 전기조차 없고 컴퓨터와 같은 기자재도 없으니 누군가에겐 익숙한 온라인 수업, 사이버 강의가 그들에겐 옵션조차 되지 않는다. 그나마 원격교육(distance learning)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필자가 근무했던 기관도 코세라(Coursera)와 파트너십을 맺어 인터넷 카페 등을 운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자니아 내 세 캠프 인원을 다 합한 약 33만 명의 모든 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는 안되고 모든 난민이 컴퓨터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교육의 기회를 가졌다고 해도 당장 취업계로 연계되어 기업이나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교육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민 청소년들이 열심히 공부해봤자 대학 진학 가능성과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중퇴를 많이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의 두 번째 관심 분야: 젠더

난민캠프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는 원래도 관심 있던 젠더 분야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젠더는 굳이 따지자면 보호 (Protection) 분야의 세부 분야로 속해있는데 보호 분야의 sub-sector로 아동 보호, 여성 보호, 장애인 보호, 젠더 이슈 등 여러 가지 세부 분야가 있다. 젠더 섹터에서 성평등 지향 캠페인이나 교육, 여성할례(Female Genital Mutilation [FGM]) 철폐, **성폭행 생존자 지원 및 사례관리 등을 한다. 워낙 난민캠프 안에서도 성범죄나 성차별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난민들과 NGO 대상으로 성교육이나 캠페인을 맡아서 진행하는데 어떻게 하면 성차별을 감소 혹은 근절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차별받는 여성들을 더욱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살만한 환경과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이 분야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폭행 피해자(victim)라는 용어보다 좀 더 강인하고 인격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 생존자(survivor)라는 용어를 사용


나의 현재 관심 분야: 생계지원 (Livelihoods) + 젠더

사실 내가 일했던 분야인 생계지원(Livelihoods) 분야에 정말 관심을 갖게 된 건 거의 일을 그만둘 때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한순간 직장도 잃고 동거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며 집도 잃어버린 한 도시 여자가 귀농하면서 겪게 되는 리얼 농촌 적응기 책이다.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가 주위의 가부장적인 일본 농촌 사회의 여러 압박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사는 편안한 삶'의 유혹 속에서도 돈이나 안정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농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자립이다. 아무리 교육을 잘 받고 나름 유명한 대학을 나왔어도 정작 인생의 어려운 갈림길에 놓였을 때 그녀를 구해준 건 남자도 교육도 아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술과 기회였다. 이는 개도국에서 살고 있는 여러 여성들과 난민 캠프 내 여성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여전히 우리는 개도국 내 여아 조혼 문제와 매춘 문제에 대해 수도 없이 듣고 보게 된다. 빈곤 가정들이 본인의 미성년자 딸을 돈 때문에 일찍 결혼시키고, 성인 여성들도 먹고살기 위해 매춘에 빠져들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하는 길을 걷게 된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들이 만약 조혼이 답이 아니라는 교육을 받았다면 문제가 달라질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다른 점이 있긴 하겠다. 하지만 교육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는 것이 먹고사는 문제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인류학 수업에서 국제개발 NGO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Knowledge (지식) +Attitude (태도)  = Practice (행동)' 식의 접근법이라고 한다. 물론 이 공식이 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식만 주입한다면 결코 지식이 쌓이고 태도가 바뀌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여아들에게 너희의 인권이 남아들의 인권과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하고 똑같이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는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나 결혼에 대한 사회문화적 압박이 있을 때 부모들과 아이들은 교육 전과 똑같은 선택을 내리기 쉽다. 



생계지원 분야, 뭐하는 분야이길래?


생계지원이 바로 위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데 공헌하는 분야이다: 여성과 난민이 소득 창출을 할 수 있도록 직업 기술과 기본 경제 교육을 제공하고 창업 기틀을 마련해주는 분야. 


국제개발협력에서 귀가 따갑도록 역설하는 여성 역량강화 혹은 여아 역량강화 (Women and Girls Empowerment)라는 것이 사실 거창한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그들에게 '실현 가능한 환경 (enabling environment)'을 구현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시장 조사(market assessment)를 통해 해당 지역 사회에 필요한 기술과 상품을 인식 및 개발하고 여성들을 훈련하고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줌으로써 말이다. 여성들은 이미 충분한 역량과 지혜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역량강화'가 아니라 그들의 꿈과 지혜,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다. 


결국 나는 탄자니아에서의 1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왜 생계지원 분야가 이토록 중요한지를, 특히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왜 더더욱 중요한지를. 결국 생계지원 분야는 '자립'을 목표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는 싱글 여성뿐만 아니라 원하는 원치 않든 어쨌든 결혼을 해서 가정 주부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립의 기회와 경제적 소득 창출 수단을 가진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가정 내에서 본인의 의견을 더욱 표출할 수 있고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은 여성이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을 예방하거나 이로부터 탈피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2018년 11월, 냐루구수 캠프 인근 원주민 마을에 사업 모니터링 차 직업교육 수료자들을 방문했었다. 그들은 모두 여성들이었는데 직업교육 수료 후 마을 시장에서 의류 수선 가게를 창업해서 운영 중에 있었다. 젠더기반폭력이 만연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일삼는 그 가부장적인 마을에서 직업교육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냐는 물음에 한 20대 초반 여성이 대답했다. 


직업기술을 갖기 전에는 이 나이가 되면 당연히 남자를 찾아서 결혼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니 굳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 자립을 통해 자유를 얻고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 바로 내가 몸 담고 싶은 일임과 동시에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