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밤 (3)

'파리 한 달 살기'의 3번째 글

by 양갱
20241126_202856.jpg Boulainvillers 역 전경


여기서부터는 일 년이 지난 지금, 내가 기억하는 파리에서의 첫 날이다.


지하철 역에 내려 캐리어를 질질 끌고 숙소까지 간다. 지난 번 파리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뒤 처음으로 본 마법 같은 풍경에 완전히 넋이 나갔던 것이다. 마치 세트장에 온 것 같다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 아래 5층 정도의 베이지색 건물들이 거리를 질서정연하게 메우고 있다. 뒤돌아 쳐다본 역은 멋진 파빌리온처럼 보인다. 이국적인 풍경이 계속된다. 컴컴한 하늘 아래 줄지어 서 있는 과일 바구니들, 슬며시 나는 연초 향기,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러너들, 들려오는 외국의 언어들은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숙소는 작은 아파트 단지 형식의 건물이었다. 11월 말인 지금 파리의 겨울은 특히나 춥고 손이 시리다. 잠긴 대문에 도착하고 십 분 가량을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 곧 집주인인 발레리씨가 남편분과 함께 나타나 나를 환영해 주셨다. 철창으로 된 대문을 여는 방법, 아파트 문을 여는 방법, 또 다른 문, 내 방으로 가는 문. 총 네 개의 문을 여는 방법을 배웠고 드디어 방으로 들어갔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보았던 모습과 동일했다. 한쪽 벽에 걸린 무식할 정도로 큰 시계가 눈에 띄었다.



발레리씨는 프랑스 억양이 듬뿍 들어간 영어로 가구와 방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다. 옷장, 침대, 서랍장 그리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도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동네 주변을 보여 주시겠다며 만남을 제안해 주셨다.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다. 처음 보는 동네에 뚝 떨어진 나로서는 현지인이 직접 시켜 주는 관광이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친절하게 제안을 해 주셨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대문 앞에서 보자고 약속을 했다. 에어비앤비를 처음 써 보는 나로서는 체크인을 어떻게 할 지가 너무 걱정이었는데, 잘 진행되어서 다행이었다.



남편분은 내가 피곤할 테니 빨리 쉬게 해 주자고 아내분을 재촉하는 듯 말했다. 사실 나는 상당히 피곤하다. 인천공항에서 파리 샤를 드 골 공항까지 오는 비행편은 14시간이 넘었다. 이 시간 동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내린 후에는 인생에서 두 번째로 보는 공항에서 짐을 찾고 인생에서 두 번째로 보는 도시에서 길을 헤메며 지하철을 타야 했다. 누워서 자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설명을 한 귀로 흘리고 있을 때쯤, 두 분은 내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두 부부는 내게 인사를 한 뒤 방문을 닫고 나갔다. 흰색 페인트가 덧씌워진 문 뒤로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졌다. 집주인 부부의 미소가 공기 중에 남아 있는 듯했다. 시작이 좋다. 나는 방을 몇 분 더 구경하다 이불 속에 들어가서 누웠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는 여행의 시작은 대개 낭만화된 것 같다.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고 인생의 지평이 넓어지는 출발점이라지만 실상은 다르다. 처음 맡는 냄새와 처음 듣는 소리와 무서움과 외로움과 기대가 버무려진 어떤 것이다. 특히 혼자 어딘가에 왔다면 더 그럴 것이고. 인스타그램에 예쁘장한 사진들을 찍어 올리며 자랑하는 사람들도, 숙련된 여행자이거나 사업 때문에 방문한 직장인도 같은 것을 느낄 것이다. 나는 첫날 밤에 앞으로 펼쳐질 모험을 기대하며 행복감에 젖어 잠을 잘 줄 알았다.



당신은 적막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 적막은 대륙 전체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침묵이다. 마침내 내가 내 인생의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의 질겁이다. 자잘한 빗소리, 조심스럽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 옆방에서 통화하는 이름 모를 언어 등이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일 때의 노심초사다. 이러다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에서 객사하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까지 하고 있을 때쯤 마침내 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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