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split Nov 04.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知天命

' 이 나이에 뭐가 두렵니..'라는 울림을 꿈결에 얼핏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출근 준비로 바쁜 아내에게 기척을 보내고 거실 큰 창문을 통해 먼 산 봉우리를 바라보니, 새벽 여명의 강한 기운을 느끼고 혼자만의 기공(氣功) 체조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이 오십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뜻(命)을 알게 되는 나이라고 오래전 성인이 말했다.

요즘 들어 한자 해석의 미묘한 매력에 빠진 나로서는 그 성인이 해석한 知天命을 달리 받아들였다.

반백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희로애락이 든든한 밑천이 되어 웬만해선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나이, 침착함이 필연적으로 몸에 베이는 나이가 오십 대가 아닐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오십 대는 두려움을 극복한 침착함으로 세상을 읽어,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지혜롭게 대처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의 이치는 변하지 않는데 그 이치를 해석하는 인간의 불안함이나 갈등이 줄어들어 순응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깨닫게(知)  되는 나이,....

나는 知天命을 이렇게 해석했다.


이제는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을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새로 맞이한 낯선 상황이나 환경에 대해서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신중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혼자서 우뚝 서거나 앞서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는 무모함보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나 함께 하려는 사람들을 한 발 앞서서 기다리거나, 이해할 수 없는 상관이나 윗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이전에 이해부터 해보려는 아량이 생겼다.

그래서 위와 아래의 중간에서 소통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작은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나이, 그것이 바로 知天命, 오십 대의 인간이라 생각된다.


변화와 변혁의 시대 정중앙에서 양편을 바라보고 중재와 소통, 협력을 이끌 수 있는 오십 대가 있는 조직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오십 대들이 그동안의 안정과 편안함에 익숙해져 여유와 당당함 대신에 무책임과 방관의 위치에서 머뭇거린다면 여전히 두려움에 휩싸여 세상 사는 참맛을 알기 어렵지 않을까?


오십 대의 무기는 '경험'이다.

낡은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거나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경험'이야말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경함에서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등한시하고 책임의 굴레에서 달아나려는 비굴함이 오십 대가 되어서도 버리지 못한다면 '하늘의 뜻' 을 깨닫기는 힘들 것이다.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아온 오십대라면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울 뿐,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당당함을 얻기는 힘들다.

넘어지면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인데 나이 오십이 되어서도 넘어지는걸 두려워 앉아만 있다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울타리 안을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늘은 늘 움직이고 변하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하늘만 쳐다본다면 무슨 변화가 있을까?

한걸음이라도 내디뎌 길을 나서면 그만큼의 변화가 있는 게 자연의 법칙인데 두려움에 막혀 서 있다면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닐까?


내 행동에 책임만 질 수 있다면 뭐든지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없는 나이... 오십 대..

天命을 깨달았는데 뭐가 두렵단 말인가?


작가의 이전글 비행기 타는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