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k split
Oct 28.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어쨌거나..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학 시절 혼자서, 무턱대고, 배낭 하나만 메고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비행기도 처음이고 해외여행도 처음이었던 나에겐 특별한 목적 없이 혼자서 무언가를 해보고,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에 떠난 여행이라 첫날부터 추위에 떨었고, 낯선 이국땅이라는 사실에 두려움마저 느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보게 된 'SAMSUNG' 광고판은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응원하는 듯하였습니다.
그때가 93년 2월 중순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이건희 회장이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선언을 한 그해였습니다.
계획 없이 떠났던 나홀로 배낭여행이 어쭙잖은 나에게 어쭙잖은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군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애국심을, 그 'SAMSUNG' 광고판이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본 'SAMSUNG' 광고판은 어쭙잖은 어느 대한민국 청년에게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선물하였습니다.
삼성이라는 기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었고, 그 기업을 이끈 '이건희'라는 한 인간은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단연 으뜸 인물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애도의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쨌거나 그분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그의 행동이나 성과 하나하나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가 이룬 업적은, 대한민국의 현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죽은 사람의 잘못된 업적을 가지고 그의 죽음조차 존중하지 않는 것도 인간적이지 못한 거 같고, 잘못이 있었음에도 그의 업적만을 가지고 무조건 존경하고 치하하는 것도 죽은 사람에 대한 올바른 예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한마디로 평가하긴 쉽지 않습니다.
10대 때와 20대, 그리고 30대와 40대, 또 50대와 60대를 살아오면서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는 게 사람의 일생이기 때문에 , 더러 실수도 하고 악행도 저지릅니다.
반대로 악행을 일삼다가 어떤 계기나 깨달음으로 선한 여생을 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의 삶을 보면 이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희 회장 역시 회장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기 때문에 좋은 일도 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일도 했을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죽음에 이른 그를 단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어리석음 일지도 모릅니다,
평생을 부유하게 살다 가신 것 같아도, 그의 일생이 순탄하지 않았던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재벌이라는 영광과 멍에를 함께 짊어지고 살아온 그가, 마지막 6년을 거의 식물인간처럼 살았다는 사실에 씁쓸함과 함께 연민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국민들의 리더가 가 되기도 하였고, 어떨 때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고인은 정작 우리들에게 무엇을 바랐을까요?
정치는 3류 경제는 2류일지라도 국민은 1류가 되기를 바랐던 그 회장님의 운명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던 그의 일갈이 남겨준 여운의 크기만큼 그의 죽음이 의미로 다가오는 건 남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마찬가지일 듯 듯합니다.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한 사람만의 책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오늘, 어쨌거나 이건희 회장님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