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부너부 Dec 16. 2018

프리드리히 대왕을 꿈꿨던 총통의 말로 《몰락》

영화는 여행이다

  1945년 4월 하순, 2차 세계대전은 대단원의 막이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극동의 파시스트는 태평양과 세뇌된 국민을 방패삼아 3개월을 더 버틸 예정이었지만 유럽의 파시스트에게는 더 이상 쥐어짜낼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독불 국경을 방어하는 지크프리트선은 붕괴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 10개월 만에 독일 영내로 진입한 영미 연합군은 엘베 강에서 동쪽으로부터 진군해온 소련군과 만나 미리 승전을 자축했습니다. 바야흐로 종전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독소전쟁 개전 이후 4년 동안 자국 영토 안에서 전쟁을 치르며 엄청난 희생을 치른 소련군에게는 드디어 대목이 찾아왔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를 거쳐 베를린으로 향하는 소련군의 진군로는 그야말로 지옥도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런 비인도적인 행위들에는 독일군이 앞서 저질렀던 만행 들을 고스란히 되돌려 준다는 훌륭한(?) 변명거리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통일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 왕가의 배출지역인 동프로이센은 쑥대밭이 되었고, 무수한 여성들은 강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스스로가 기획한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는 데 대한 자괴감? 숱하게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승전으로 향하는 분기점을 놓쳐버린 데 대한 아쉬움? 제 3 제국의 붕괴가 기정사실화된 이 마당에 자신의 지휘가 전혀 먹이지 않는다는 분노?


베를린 지하 벙커 집무실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는 히틀러. 프로이센 왕국의 중흥을 이끈 이 위대한 계몽 군주는 히틀러의 이상적인 역할 모델 중 하나였다.

  21세기에서 과거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그때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당시 시점에서 그린 영화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지평을 넓혀줍니다. 우리의 상상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평소에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은 부분에 대해 깨닫기도 하면서 우리가 단순히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인물과 사건들은 회색빛 화석에서 벗어나 생동감을 되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몰락》은 그 훌륭한 교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을 떨며 자신이 처한 빠져나갈 길 없는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히스테리를 부려대는 히틀러, 매 순간 떨어지는 소련군의 포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기 위해 히틀러의 곁에서 도망치거나 연합군에 항복하고자 하는 고위 장성들... 이런 장면 하나 하나를 통해 '제 3 제국 최후의 날'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처절함의 절정은 나치 선전부장인 괴벨스 가족의 최후를 다루는 부분입니다. 국가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맹목적인 신념의 소유자인 괴벨스 부인의 선택은, 아니, 만행은 한 순간 보는 사람의 맥이 탁 풀리게 할 정도로 강렬합니다. 이념의 이름 아래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엄연히 독립적인 인격체의 생명을 자기 것인 양 제멋대로 빼앗는 장면에서 역설적으로 시청자들은 이념의 허구성과 잔혹함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자기 아이들을 상대로 이념의 광기를 극단까지 밀고 나간 괴벨스 부인의 최후는 '히틀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역설적으로 유럽인 들은 지난 세기에 이런 극단적인 광기의 횡행과 함께 이 모든 것의 스펙타클한 붕괴까지 경험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합리적이고 모범적인 민주 시민' 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2. 3. 18.에 쓰고 2018. 12. 16.에 옮김


  

작가의 이전글 《아테네의 변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