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공항에 앉아있었을 때였다. 제주도에서 김해를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때 나는 제주도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었고, 대학 졸업 후 학사 장교로 일하던 중이었다. 덕분에 일반 병사로 근무하는 것보단 시간적 여유나 생활의 자유가 있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또 그때의 상황이 그저 일시적이고 임시적일 뿐이란 생각 역시 머릿속에 늘 강하게 들어앉아 있었고, 그래서 사실은 늘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딱 3년간의 생활,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이 정해져 있고, 그동안 나는 내가 앞으로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상황에 내 책임을 다해야 하면서도, 그 일에 나의 하루 대부분을 쏟아야 했고, 늘 그 일을 하다 남은 자투리를 모아서 근근이 내가 앞으로 준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 볼 수 있었다. 그나마도 너무 지치는 날은 엄두도 못 냈고, 그러다 보니 흐름은 이어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부대에서 맡은 책임과 역할이 있다 보니, 그 일을 대충 하거나 그저 시간만 때우기로 흘려보낼 수도 없었다.
며칠간 휴가를 얻어, 그 주어진 일들에서 잠깐 벗어나면서, 공항에 앉아 곧 타야 할 비행기를 기다리는 그 잠시 동안, 나는 곧바로 내 군 복무의 남은 기간과 그 기간이 끝난 다음의 계획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이미 어느 정도는 준비해야 했는데 아직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남은 기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준비할 수는 있을지, 못하면 어쩌나, 그런 압박 속에 짓눌려 허우적거렸다.
그때 간절하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던 생각 하나는, ‘제발 한 가지 일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하나를 충실히 하고선 그 하루의 남은 시간을 맘 편히 쉴 수 있는 삶. 어떤 하나를 진이 빠지게 하고 나서도 그 하루가 끝나기 전, 다시 다른 하나를 준비해야 해서 또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날 혹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 조금이라도 할 수 없게 되면 죄책감이라던가 쫓기는 심정이라던가 도저히 마음 편하게는 넘어갈 수 없는 삶이 너무나 지긋지긋해서 말이다.
그때 이후로 수년이 지나 지금이라고 그러한 내 삶의 문제는 해결되었을까…. 여전하고 어쩌면 더욱 깊어졌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걷기로 한 길이지만, 최소한의 수입도 보장되지 않으면서 준비 기간만 기나긴 학업을 짊어지고서,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 하나와 나의 공부하는 일 하나를 계속해서 병행해 오고 있다. 그 어느 것에서도 명쾌하진 않지만, 그 어느 것도 놓을 수는 없어서.
그래도 조금 달라진 것 조금이나마 성장한 면이 있다면, 그건 불안감이랄까 답답함이랄까 그런 심리적 문제들에서는 조금 풀려난 건지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이게 된 건지,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졌다는 것.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내 삶의 상황이 여전하기에 분명 그에 따른 심리적 문제들도 유사할 수밖에 없고 늘 도사리고는 있지만, 조금은 어쩔 수 없구나, 받아들였달까, 그럴 수밖에 없구나, 인정하게 되었달까. 왜냐하면 적어도 한 가지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꾸준히 하고 있으며, 그 어떤 상황, 그게 내가 이상적으로 희망하는 그 상황 속에 있다 해도, 생계와 공부는 두 가지 일이 될 수밖에 없구나, 이해하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