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살인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라 생각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정치인을 보는 일은 새롭지 않다. 지난 수년간, 수십 년간 줄기차게 일어난 일련의 여성 대상 범죄가 여성 혐오나 성적 대상화와 무관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음을 방증하는 사례는 이미 차고 넘치니까. 조금 뜬금없지만 퍼뜩 떠오르는 건 <김현정의 뉴스쇼>다. CBS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십여 년간 꾸준한 인기를 얻어온 시사 프로 <김현정의 뉴스쇼>의 특장은 섭외력과 진행력에 있다. 주류 양당 정치인들의 개소리라든가 현장 경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두루 접하기엔 딱인 데다 (손석희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김현정의 말솜씨와 진행 능력은 예술에 가깝다. 초창기부터 들어온 이 방송을 그러나 근래엔 거의 듣지 않는데, 갈수록 청취율에 매달리는 프로그램의 자극적 태도도 거북하거니와 내가 생각하는 국내 최고의 앵커가 안타깝게도 명예 남성에 가깝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두 해 전 어느 날, 이 프로그램의 부속 코너 ‘댓꿀쇼’에서 제작진인 유 모 PD와 게스트인 손 모 변호사는 자기 안의 여성 혐오를 마음껏 드러냈고 진행자는 아무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방송에서 이 두 중년 남자는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갈 때 앞선 여자가 핸드백으로 치마 뒤쪽을 가리는 걸 볼 때마다 자신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받는 듯 느껴져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또 어두운 거리에서 흘끔흘끔 돌아보는 여성의 뒤를 걸을 때 역시 자기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이 얘기들은 좀 충격적이었는데, 여성이 느끼는 공포에 공감하고 여성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방송에서 결코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아주 전형적인 여성 혐오적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사회의 너무도 선명한 현실임을, 나는 남성으로서 죄스럽고 참담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나도 한때는 내게 주입된 다양한 형태의 여성 혐오를 무비판적으로 품고 있던 적이 있었고.
이번 사건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일이고 그러니 국가와 언론 등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수사 기관이 피해자 보호에 소극적이고, 지자체 의원이 가해자의 심정에 공감을 보내고, 여가부 장관이 이 사건을 단지 스토킹 살인이라며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버리는 모든 구조적 문제의 근원에는 명백히 여성 혐오가 자리하고 있다. 무슬림과 이민자들 때문에 자신이 피해받는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인종주의자들이 극우 정치인과 언론 들로부터 혐오의 양분을 얻듯, 자신이 닿지 못한 여성을 적개의 대상으로 보고 분노와 폭력을 표출하는 남자들은 기득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사상적 토대를 쌓는다. 이런 상황의 종말이 언젠간 찾아오리라 믿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참극을 겪어내야 할는지는 모른다.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기초적인 사실부터, 그저 여자도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자명한 진실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다 같이 목소리를 내어가는 도리밖엔 정녕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