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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Mar 05. 2023

《วาดพระนคร》

Bangkok Old Town Through Sketches




지난달 엄마와 방콕엘 다녀왔다. 엄마는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태국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고, 나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안다. 관광 여행답게 하루 평균 2만 보씩을 걸었는데, 어느새 칠순을 훌쩍 넘긴 엄마는 26년이나 어린 나보다도 잘 걷고 잘 버텼다. 시내 중심가에서 며칠, 카오산 거리가 속한 프라나콘 지역에서 며칠을 묵었다. 이 책은 숙소 근방의 림코브파 서점에서 발견했다. 언젠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산 웬디 맥너튼의 《Meanwhile in San Francisco》와도 닮은 책이었다. 방콕에서 나고 자란 저자 피띠랏은 이 도시의 대표적인 올드 타운 라따나꼬신 지역을 거닐며 스케치한 그림들을 태국어와 영어로 쓰인 토막글과 함께 실었다. 그는 한자리에 앉아 풍경을 천천히 그려보는 일이 도시를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법이라 말하고, 그렇게 엮인 이 책에는 자신의 도시를 깊이 탐구하고 경애하는 모습이 꼬박 담겨 있다. 태국어 제목은 ‘프라나콘(부처의 도시)을 그리다’로 번역된다.


라따나꼬신은 서쪽의 짜오프라야 강과 동쪽의 여러 운하에 둘러싸인 일종의 섬 구역으로, 엄마와 내가 거닌 수많은 장소가 이곳 안에 있었다. 프라수멘 거리와 딘소 거리, 프라찬 선착장과 왓 싸껫 등 반가운 곳곳이 책 속에서 연거푸 펼쳐졌다. 다음번에는 이 책이 안내하는 대로 꼭 한번 걸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는, 눈물이 많이 났다. 나는 또 방콕에 갈 것이고, 아마도 그때는 엄마와 함께하지 않을 텐데, 엄마와 걸었던 길들을 다시 걸으며 느끼게 될 감정이 너무 빨리 시간을 거슬러 나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 노란빛 길과 후터분한 공기를, 발바닥에 닿던 그 거리의 감촉을 나는 또다시 느낄 테지만 엄마는 거기에 없을 것이다. 넉넉지 못했던 삶의 행습이 몸에 밴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도 곧잘 비용을 아끼려 했고 나는 거기에 종종 동조하고 말았다. 엄마와의 다음 국외 여행지는 내년 봄의 일본이 될 예정인데, 하지만 그때는 좀 더 풍족한 시간을 가져보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이제는 늘 되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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