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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연 Dec 17. 2018

[인터뷰] #2. 배우 정인지 (2)

PROJECT #1 - 여성 공연인 릴레이 인터뷰

"플라멩코 박자에요. 익혀질 때까지 닳도록 봤어요." - 정인지


Q. 한 줄로 자신을 소개한다면,
저는 세계가 평화롭기를 바라는 사람이에요.
평화라는 게 대표적으로 전쟁이 종식되는 걸 꼽을 수 있겠죠. 전쟁이 일어나면 최대의 피해자가 누군지 아세요?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죽지 않아요. 결국에 죽게 되는 건 여성과 약자 그리고 젊은 청년들. 그들의 피를 그 귀한 피를 독식하기 위한 그들에게 떠먹여주고 싶지 않아요. 단순히 전쟁이 끝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냥 모두가 좀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품앗이하면서 ‘우리 집에 옥수수 이만큼 했는데 너도 좀 먹어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탓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잖아요. 모두가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화를 품고 살아가는데 이 극단적인 화가 결국 표출되는 대상은 여성이고요. 이 분노의 감정만 없어져도 좀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서로를 누르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좋겠는데요.
돈이 됐든, 지식이 됐든, 내가 너보다 더 가지거나 덜 가졌다고 해서 동등하게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게 ‘유토피아’잖아요.] 맞아요. 어쩌면 제가 제 자신에게 거는 자기 최면일 수도 있겠죠. ‘나 한 명이라도 평화롭게 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웃음)


Q. 평화롭게 살고 싶단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한동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 너무 고아 같다. 부모가 버린 고아. 천애 고아가 따로 없다. 신이 이렇게까지 인간을 내팽개칠 수 있을까? 심장이 멈추면 생명이 끝나버리는 것조차 신이 만들었다면서, 왜 굳이 인간을 탄생시키고 언제 죽을지조차 모르는 기약 없는 삶을 살게 했을까.’ 이런 ‘인간고아설’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요. 왜 생은 눈물겨울 수밖에 없는 건지.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 생을 살아보고 싶어지는 게… 나도 언젠가 무언가를 찾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찾았기에 내가 살고 싶어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생이 왜 눈물겨울까, 왜? 왜일까? 안 그래도 되잖아? 그냥 평화로웠으면 좋겠어,’ 그러면 ‘평화롭자,’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Q. 정인지에게 ‘배우’로서의 삶이란
(인터뷰 질문지에) 만들어두신 직업란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어요. 결국 ‘배우’라고 쓴 이유는 가장 최근에 공연을 통해 돈을 벌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직업이어야만 제가 전문성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 배우라는 말을 하기가 항상 너무나 민망해요. 공연이 없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요. 백수이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때도 뭔가 배우라고 할 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공연을 마치고 관객분들을 만날 때도 ‘내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누군가에게 ‘감히’ 사인을 해드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가?’ 이런 고민을 많이 해요. 또 작품에 대해 여쭤보시면 얘기를 해드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제 손을 떠난 이상, 각자 생각하시는 게 정답이에요. 추리소설에 정답 찾기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제가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데, 너무 죄송한 거예요.
제 일상을 잘 유지하고, 그 삶을 내가 나로서 살 수 있어야만 작품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그녀들도 저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고민하죠. [일종의… 영매 같은 느낌?] 맞아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굿판을 벌여야 해요. 활자 속에 갇혀 있다가 딱 두 시간, 딱 그때만 저를 통해서 그녀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건데,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너무 미안하잖아요. 


Q. 국내 창작 뮤지컬에 대해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이 활성화되는 건 너무 좋죠. 저는 작가와 작곡가, 그리고 연출가를 발견해내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우리 창작 뮤지컬만큼 이렇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결국에도 못 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거든요. 결국에는 ‘볼만한 이야기, 뽑힐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기다려 보는 거죠. 얘기하다 보니 모두가 다 똑같은 마음이네요, ‘언젠간 되겠지.’

Q.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대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여백이 많은 이야기여서 비울수록 멋있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재연은 저 스스로에게 많이 아쉬웠어요. 계속 비워뒀어야 하는 작품인데, 제가 공연을 하면서 계속 고민하고 자꾸 무언가를 찾게 되고 또 그것을 시도하게 되잖아요. 찾았으면, 찾고 비워야 하는데 너무 찾으려고만 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Q.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해
자야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그 시대를 살아갔던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았어요. 사실 성별이 여자이기 때문에 혹은 여성으로서 그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근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여자일 뿐. 그런데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삶의 포커스가 달라지는 거죠. 신사임당도 마찬가지잖아요. 대단한 분이었지만 율곡 이이에게 어떠한 어머니였는지만 남게 되는. 그런 사람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도 많아요.
같은 시대에 해외로 경제와 정치를 공부하러 떠난 한국 여성이 있는데요, 최영숙 선생님께서는 ‘내가 우리나라 여성들의 인권과 이 정치를 바꿔보겠다,’하고 세계를 다니며 유학을 하고 오셨어요. 1920-30년대 그 시절에 유학을요. 정말 멋있죠.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영양실조로 돌아가셨어요. 그녀가 귀국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여자라서. 그런데 그때 당시 그런 게 너무나도 많았어요.
진향(자야)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자야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 시대의 너무나도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말년에 자신을 인생을 스스로 바꿀 줄 아는 여자였어요. ‘난 그런 남자를 사랑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자. 정말 멋있는 여자, 아니 멋있는 사람이에요. 정말 그릇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했던 것도, 만주로 같이 떠나지 않은 것도 그녀의 선택이었으니까.

Q. 요즘 해외에서는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 성별과 인종이 중요한 이슈인데
유색 인종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던 게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잖아요. 헤르미온느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인종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걸 처음에 인터넷 뉴스로 접했을 때엔 저와 별로 상관없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누군가는 (백인 캐스팅이) 작품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작품이 (흑인 캐스팅을 통해)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보면서 흥미로웠거든요. 그것도 여성 캐릭터인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이 좀 놀랍기도 했고요. 물론 그 여성 캐릭터가 스토리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는지, 핵심 인물인지 혹은 그저 도구로 활용되는 캐릭터인지도 상관이 있겠지만요. 영국에 갔을 때 드디어 보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저도 어느새 영화에서 봤던 (엠마 왓슨) 특유의 전형적인 이미지, 질감에 익숙해져 있었나 봐요. 그녀가 딱 등장하는 순간 저도 놀랐지만, 결국엔 너무 좋더라고요. 그녀가 흑인든 백인이든 중요하지 않았어요.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된 <햄릿>에서, 햄릿 역을 여배우가, 오필리어 역을 파키스탄계 남배우가 했어요. 그게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남배우가 오필리어를 한다고 해서 긴 머리 가발을 쓰지도 않았고, 원래 본인의 짧은 머리에 털이 굵게 난 팔뚝을 드러내며 드레스를 입었어요. 신임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신 여성분이 직접 연기한 햄릿도 바지를 입고 칼은 들고 있지만 본인의 단발머리 그대로 등장했고요. 그때 알았어요. ‘<햄릿>은 어차피 인간에 대한 고민이구나.’ 햄릿이 남자이기 때문에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하나의 차별이고, 반대로 남성에게 특정 역할을 요구한다면 그 또한 차별이 되는 거겠죠. 그래서 성 역할을 수행해낸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혼자 많았어요. [이전 인터뷰에서도 그런 말씀 하셨는데] 맞아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 성별에 따라 주어진 역할에 대한 게 아닌데 왜 우리는 성별에 국한된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가에 대한 생각을 그 버전의 <햄릿>을 보며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조차 그런 고정 관념에 갇혀 있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서 다시 주변 세상을 봤더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하루는 TV를 보는데, 혼자 사는 한 남자 가수가 끼니를 잘 못 챙겨 먹다 보니 부모님이 집에 찾아오셔서 밥을 챙겨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네가 이렇게 밥을 잘 못 챙겨 먹으니 여자를 만나라. 누구누구가 살림하는 모습 보니까 사람이 참 괜찮아 보이더라.’ 이게 행간이, 문맥이 안 맞는 말이잖아요.

Q. 페이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구조가 많이 기형적이에요. 성 역할에 따른 편차도 심하게 크고요. 적당한 선에서 더 이상 올리지는 말고 다른 영역에 고루 분배했으면 좋겠어요. 티켓도 너무 비싸잖아요. 그리고 모두가 제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공연 보시는 관객들에게 궁금한 점 
당신에게 공연은 뭔가요? 배우들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나에게 이것은 무엇이길래 우린 계속 보고, 또 하고 있을까요?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부모님이 등 떠밀어 시작한 사람이 없잖아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하는 사람들부터, 자기가 하고 싶어 춤이나 노래 연기 레슨에 아낌없이 투자해가며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관극하시는 분들도, 집에서 누군가가 ‘이런 취미생활이 있어야 한다’, 이러면서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란 말이죠. 모두가 공통적인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러 온 사람들이 모여 스파크가 터지는 찰나가 바로 공연의 순간이네요.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깨달았어요. 그래서 묘한 연대감이 드나 봐요. (갑작스러운 깨달음!)

Q. 무거운 주제는 잠시 접어두고, 좀 더 가벼운 주제들에 얘기해볼까요. 예전에 SNS 활동을 하시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셨는데
SNS 활동을 너무 좋아했어요.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사진을 고르고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이것저것 다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좋았죠. 그런데 제가 너무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어요. 제가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보게 되는 내용도 있고, 그걸 굳이 제가 봐놓고 스트레스를 받고 (웃음) 그리고 무언가를 업로드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에 많아지더라고요. ‘와 이거 안되겠다, 내가 너무 중독이구나’ 싶었어요. 게다가 안 그래도 심한 안구 건조증이 더욱 심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2G 폰으로까지 바꿨었죠. (웃음) 다시 안 하는 거 보면 안 해도 안 심심한가 봐요. (웃음)

Q. 정인지에게 눈물과 콧물이란
사실 안구건조증이 굉장히 심해요. 눈을 조금만 오래 뜨고 있으면 제 의도와 상관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해요. 인물의 감정과 상관없이요. 그래서 가끔 눈물이 흐르면 혼자 자존심 상해요. (웃음) 이렇게 울 게 아닌데. 근데 콧물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오죠? 저도 모르겠어요. (심각)

Q. 정말 풍성한 머리숱을 지니셨는데
제가 머리숱이 얼마나 많냐면요, 비가 와서 머리카락은 젖어도 두피는 젖지 않아요. 공연이 끝나고 미용실에서 숱만 좀 쳤는데, 비용이 5만 원 나왔어요. (웃음)

Q. 공연을 쉬는 동안 하셨던 회사 생활은 어떠셨는지
저 나름 사무직이었어요. 기획팀에 있어서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엑셀 단축키, 컨트롤 X, 셀 병합해가면서. 그런데 전 나름 재밌더라고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잖아요. 하지만 그것도 금세. (웃음) 당시 회사 생활하면서 애니메이션 더빙도 했었어서, 재밌었어요. 

Q.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10억 원이 뚝 떨어진다면?
이런 질문도 좋아하죠. 심각하게 고민해요. ‘아 10억이 떨어졌다고?’ 딱 10억. 그거 아세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중심가에 32평짜리 아파트를 사는데 2억 5천이면 된대요. (웃음)

Q. 과거 인터뷰에서, 당시 최대 관심사는 본인이라고 하셨었는데. 그 이후로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셨는지
네. 맞아요. 아직도 알아가고 있어요. 이제서야 제 자신에 대한 사용 설명서를 읽고 있는 느낌이에요. 아직 끝까지 읽지는 못했어요. 마치 매뉴얼 없이 핸드폰을 한참 쓰다가 어느 날 읽게 됐는데, ‘아! 이게 이런 거고 또 저런 기능도 있구나’ 하는 것처럼요. 아직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조합해서 확신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마 마흔 살이 넘어가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아직도 발견해가고 있어요.

Q. 스스로의 삶이 어느 정도 생각한 대로 흘러갔는지.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니요. 전혀요. 예상한 것도 없었어요. 
이제야 연기에 있어서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제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30대에 어울리는 30대의 연기. 앞으로 또 어떤 공연을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잘 모르지만, 사람으로서 잘 살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가 ‘인지배우 뭐 할까? 요즘 뭐 해?’ 이렇게 궁금해하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이럴 수 있게요.

Q. 마지막으로, 여행은 어디로 떠나시는지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 막바지에 목적지가 정해졌는데 그것도 인아웃만 정했어요. 어디를 갈지는 이제 정하려고요. (웃음) 공연도 보고 사람들도 보고 잘 걷다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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