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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Jun 10. 2021

자연과 친구 맺기

송충이털 알레르기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나의 운동 양상이 달라졌다.

팬데믹 이전에는 일주일에 세 번 수영하기와 요가 두 번으로 나름 건강을 지켜왔었다고 자부했는데

주민자치센터에서 하던 모든 종목이 무기한 휴강되면서 요가도 못하게 되었고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못한지도 오래인지라 부드럽고 쫀쫀했던 수영복은 뻣뻣해지다 못해 곧 삭아버릴 것만 같다.

나이 들면 근육 부자가 진짜 부자라는데 운동을 멈추니 황금덩어리 같은 근육이 빠져나가는 것 같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하여간 점점 무기력한 노인이 되어가는 것이 싫어 집 근처라도 열심히 걷기로 했다.   

동네 공원을 걷다가 체육단련 기구들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건성으로 하게 되고 재미도 없어 곧 그만두었다. 그리고 자꾸 아파트 뒤 쪽문으로 이어진 산 쪽으로 눈길이 갔다.

데크가 깔려있고 잘 다듬어진 공원 길과는 다르게 야산으로 오르는 길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질 않아서인지 들쭉날쭉 나무뿌리가 걸리고 험하긴 했다. 한참 걸어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적해서 겁이 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년 넘게 매일 이곳을 다니다 보니 동네 공원 같은 곳은 싱겁기 그지없다. 오르내리막길이 심한 길을 다녀서인지 다리도 튼튼해진 것 같다. 1년 전만 해도 무릎이 좋질 않아 내리막길 걷는 것이 어려웠는데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는 내 방식대로 걸어도 눈치 볼 사람이 없어 좋았다. 내 방식대로 걷기란 내리막길에서는 거꾸로 걷는 것이다. 그러면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아 얼마든지 걸을 수가 있다. 만약 사람들 많은 곳에서 이렇게 뒤로 걷는다면 보기에도 불안정해 보여 한 마디씩 하고 싶을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내리막길에서도 앞을 보며 잘 걷게 되었으니 산이 내 무릎을 치료해준 셈이다.

숲이 우거진 산을 혼자 걷다 보니 사색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간간히 작품 구상도 해보지만 집에 오면 다 잊어버린다. 메모를 간단하게 해 놨어도 집에 오면 숲 속에서의 상상이 다 날아가버리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무래도 노트북 들고 숲 속에 들어가서 가부좌라도 틀어야 할까 보다. 신나게 구성까지 짜 놓았던 것이 산속을 벗어나면 싹 잊어버리니 말이다.

봄에 우거지기 시작해 가을이면 옷을 벗고 안녕 인사를 하는 나무들을 보며 숲 속에 어떤 정령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곤 했다. 그 안에서 오만가지 작품을 다 써놓고는 숲 속을 벗어나면 그만인 나의 게으름을 따끔하게 쏘아준 일이 생겼다.

여느 때처럼 숲 속을 걷고 있는데 뒷목이 따끔했다. 벌에 쏘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벌에 쏘인다면 이런 통증일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목을 털어냈지만 벌레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극심한 가려움증.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다 벗어 세탁했는데도 가려움은 그치질 않았다. 따끔했던 뒷목뿐 아니라 온 몸이 점점 빨갛게 되며 가려움이 계속되었지만 산을 다니다 보면 있는 모기에 물린 정도처럼 곧 낫겠지 싶어 물린디만 바르고 말았는데 밤새 고생을 했다. 가려움증이라는 게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아침에 눈뜨자마자 동네 피부과엘 갔더니 의사가 대번에 '산에 다녀오셨어요?' 한다.

요즘 송충이가 껍질을 벗을 때라 송충이 털이 바람에 날려 살에 닿은 거라며 그 가려움증이 일주일은 갈 거라고 했다. 의사는 요즘 이런 환자가 심심치 않게 오기 때문에 금방 알아봤다며 무척 가렵겠다고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며 빨리 나으라고 알레르기 주사까지 주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며 가려움증이 이토록 괴로운 고통이란 걸 실감한 며칠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숲을 찾았다. 송충이 털을 피해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을 하고 걷다 보니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장맛비에 송충이 털이 씻겨 내려가면 괜찮아진다니까 적어도 그때까진 이 차림으로 다녀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숲 속을 걷노라니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이 오랜만에 찾은 나를 반겨주는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인지 수줍게 굽은 소나무 가지까지 나한테 송충이 털 날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나는 괜찮다고 화답해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숲으로 인해 얻은 위안과 혜택들이 많은데 너무 당연하게 거저 받아먹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차례 고통을 겪었으니 이제부터 우린 진짜 친구가 된 거라고 손을 쭉 뻗어 흔들었다. 코로나 끝나도 우린 계속 친구 할 거야. 올해도 잘해보자고~.


 


 

아무래도 코로나가 곧 끝나지 싶다. 내가 이제야 발동이 걸린 걸 보면.

SF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시크릿가든 입구
숲 속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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