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Jul 28. 2021

엄마 음식이 그리운 그대

미원의 추억

남편이 가끔 옛날 어렸을 적에 엄마가 해주셨던 맛난 음식들을 그리워할 때면 찌개 끓일 때 마법가루를 슬쩍 넣어준다. 그러면 음~ 바로 이맛! 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린다.


옛날에 먹던 그리운 음식이라고 하면  진한 양념 없이 담백하게 맛을 낸 순수한 음식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음식을 내주면 맛이 밍밍하다며 슬그머니 상을 물릴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비결은 알고 보면 따로 있다.

신혼시절, 옆집에 살던 이웃 친구가 바닷가에서 횟집을 하는 시댁에 다녀와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분주하게 음식을 하던 시어머니가 매운탕 간을 보면서 '우리 가족들이 먹을 매운탕이니까 미원은 조금만 넣자' 하면서 큰 숟가락으로 하나 듬뿍 넣는 걸 보고 기함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이 아닌' 손님상에 올리는 매운탕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MSG가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매운탕이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유명한 맛집이었다고 한다.

하긴 옛날에 집집마다 김장을 백 포기씩 할 때면 약 1킬로쯤 되는 미원 한 봉지를 다 넣었으니 우리 연배 사람들의 집밥은 미원과 함께 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천연조미료를 비롯해 많은 종류의 조미료가 있고 외식을 많이 하다 보니 MSG에 대해 많이 너그러워진 것 같은데, 한 때 MSG를 기피하다 못해 가족이 먹을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넣는 주부를 죄악시 여기던 풍조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이미 일제강점기 때의 MSG인 아지노모도에 길들여져서 미원 혹은 후발주자인 미풍을 애용하셨는데 MSG가 건강에 해롭다고 알려지면서 맛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셨던 아버지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찬장 구석 한 귀퉁이에 은밀하게 꽁꽁 싸매 놓은 마법의 가루 미원으로 국물 맛을 냈던 엄마 음식의 비밀을.  실제로 찌개나 국 등 국물요리에 마법가루 한 꼬집만 넣으면 맛이 180도로 달라지는데 이걸 어찌 포기하리.

아이들이 태어나 이유식을 거치고 집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는 화학조미료를 멀리 했었는데 학교 앞 떡볶이나 외식을 즐기면서 아이들 입맛까지도 자연스레 마법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남편이 가끔 옛날 어렸을 적에 엄마가 해주셨던 맛난 음식들을 그리워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찌개 끓일 때 이 마법가루를 슬쩍 넣어준다. 그러면 음~ 바로 이맛! 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린다. 모두가 당신들이 자초한 일이다.

MSG 맛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어느 음식이든 아무리 숨겨도 알아차릴 수 있다. 중국집 짜장면 짬뽕은 말할 것도 없고 매운탕은 물론이고 곰탕 같은 국물요리, 그리고 요즘 대세인 홈밀 키트에는 거의 다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지 언젠가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서 국물 맛을 보시더니 역시 국에는 미원이 조금 들어가야 감칠맛이 있어.  하시며 마법가루 사용을 허용하셨다.

요즘도 나는 다른 음식들을 제외한 국이나 찌개 같은 국물 요리할 때면 마법가루 조금 넣어주는 걸로 그리운 엄마 음식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반적인 음식점에서 쓰이는 MSG의 1/20 정도를 쓸 뿐이라며 위안을 해가면서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