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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Aug 14. 2021

40년 전 연서戀書

오랜만에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기고 정리를 해서 미니멀한 삶을 추구한다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충분히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우선 잡동사니가 함께 들어가 있는 드레스룸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버려야 할 옷들이 너무 많았다. 지난 2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이라면 미련 없이 버리라는데 그 말에 따르려면 거의 다 버려야 할 판이다.

한참 정리하다 보니 구석에 있는 박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사한 후로 한 번도 뜯지 않았는지 이삿짐센터 테이프로 친친 감긴 채였다.

박스를 열어보니 아주 오래전 물건들이 나왔다. 40여년 전 우리 신혼방 화장대 위에 올려두었던 결혼사진 액자가 먼저 나왔고, 신혼 때 썼던 신혼일기와 가계부까지 나왔다. 이런 걸 아직도 갖고 있었네 하면서 여러 봉투에 분류된 것들을 열어 보니 낯익은 글씨의 편지 한 묶음이 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열렬하게 보냈던, 소위 연서戀書였다.  남편이 쓴 편지는 없다. 이공계 출신인 남편은 자기는 편지 자체를 쓸 줄 모른다고 처음부터 못 박았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내가 썼지만 무척 낯설었다. 아니, 거의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다.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간절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읽자니 손이 오글거려 견딜 수가 없다. 무슨 열정으로 이렇게 쓰기도 많이 썼는지 다 모아놓는다면 장편소설 한 권쯤은 나올 분량이다.

저녁 해 먹고 나서 다시 드레스룸에 들어가 퍼질러 앉아 내가 쓴 편지들을 계속 읽었는데 그때 내가 쓴 연서들은 몸이 오글거리다 못해 이불킥 하고 싶은 내용도 한 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  담배를 입에 물고 우수에 잠겨있는 듯한 당신의 옆모습이 생각나서 잠을 설치고 있어요...


하, 이 장면은 이미 오래전에 깨진 환상인데, 그때는 담배를 피우는 그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태양은 가득히의 아랑 드롱(여기서 알랭 들롱이라고 하면 실감 나지 않는다) 야성미와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를 믹스한 듯한 그의 담배 피우는 명장면은 결혼 후 현실로 이어지면서 제발 담배 좀 끊어라 못 끊겠다 하는 부부싸움의 원인만 제공했을 뿐이었다.

다시 연서로 돌아가서,


-나는 지금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하는 건가요?  답장은 받을 수 없는...


그랬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불공평한 게임인데 자기는 편지 쓰는 법을 아예 모른다면서도 편지는 자주 받았으면 하는 그의 바람 때문에 나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쓰는 형식으로 내 일상을 적어 보냈다.

장거리 연애였기에 지금처럼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같은 통신수단이 다양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 많이 사용했던 커뮤니케이션이었지만 일방적인 편지는 맥을 이어가기도 애매했다. 그래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생각해보니 밀당의 고수였던 남편에게 답장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편지를 썼던 내가 수십 년 지난 지금 생각하니 자존심도 없는 바보 같아서 또 이불킥 했다.

가끔 심통이 나서 편지 쓰기를 중단한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비싼 시외전화로 빚 독촉이라도 하듯 편지 독려를 해왔다. 내가 보낸 편지 읽는 재미로 퇴근 후의 휴식을 기다린다니 어느새 한 사람의 여가생활을 책임지고 있다는 일종의 의무감까지 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때에 나의 글솜씨가 많이 단련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손발 오그라드는 이 편지들을 남편이 발견한다면 아마도 의기양양해지겠지 싶은 마음에 얼른 다시 묶어버렸다. 마음 같아선 다 갖다 버리고 싶은데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여러 겹으로 꽁꽁 싸매서 30년쯤 후에나 열어보려고 타임캡슐을 만들어 숨겨두었다.

요즘 우리 부부는 별일 아닌 것으로도 티격태격 설전을 벌이면서 싸움도 자주 하고 있는데 새롭게 읽은 그 편지들을 생각하니 배실배실 실소가 터진다.


...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흘러내린 채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당신 모습이...


편지에서 언급했던 남편의 머리에는 이제 이마로 흘러내릴만한 머리카락이 몇 올 남아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허리 22인치 시절의 나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내일은 남편이 좋아하는 매운탕을 끓여 와인 한잔씩이라도 해야겠다. 대머리 노인과 허리 퉁퉁한 마누라로 남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노후를 사이좋게 보내고 있는 편이라고 건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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