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May 22. 2022

나의 보톡스 첫 경험

보톡스 한방에 9,900원

지긋지긋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마스크와 함께 생활한 지 어언 2년이다.

얼마 전부터 야외에서 마스크 벗는 것이 허용되는 등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면서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마스크는 이제 우리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셈이다. 

마스크만 쓰면 세수 안 하고도 외출 가능하니 편리한 점도 있었는데, 이제 슬슬 마스크 벗을 준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인원 제한이 없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모임 요청이 들어왔다. 

남편 친구들이 제일 급했는지 당장 만나자고 추진해서 부부 동반으로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보니 2년 동안의 공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중에 내가 제일 심했는지 다들 나보고 그동안 고생이 많았나 보다 라며 2년 만에 얼굴이 많이 상했단다. 나름 내가 가장 젊은 부인이라고 방심했는데 쯧쯧 혀까지 차며 하는 말에 당혹스러웠다.

"아유~ 그렇게 통통하니 이뻤던 사람 얼굴이 그동안 주름이 자글자글해졌네."

과거형이라도 '이뻤던'이 그나마 위로가 좀 될까 싶은데 '통통한'을 굳이 넣어가며 말하는 여자는 평소에도 필터 없이 말을 내뱉는 편이라 확실하게 와닿았다.

집에 와서 거울 속 얼굴 주름을 바라보자니 심란해졌다.

내 나이가 몇인데 주름은 당연한 것 아닌가? 싶으면서도 어느덧 폰으로는 '쳐진 피부' '주름 보톡스'를 써칭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후로 폰만 켜면 '얼굴 주름 한 번에 좍~' '강남 리프팅 잘하는 곳' '슈링크' '리프테라' 등 등 보톡스 연관어가 주르르 떴다. 

그리고 낚였다. ㅠ

내가 보톡스에 귀가 솔깃해진 걸 알게 된 동네 의원에서 확장 기념 이벤트 행사가 있다고 마구 공격해오는 바람에 참가 버튼을 누른 것이다. 슈링크 100샷에 19,900원이란다. 눈가 주름 보톡스는 단돈 9,900원이라는 멘트에 그래 2만 원 정도의 비용이라면 쇠고기 한 번쯤 장보기에서 패스하면 될 일이지.

그리고 두둥~ 예약한 날.

실땅님과 상담을 했다.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견적을 내기 시작했는데 이마와 눈가 보톡스, 그리고 마리오네트가 생겼다나 뭐라나 하며 입가 주름까지 펴준다며 몇십만 원을 부르는 게 아닌가?

내가 이벤트 행사인 9,900원을 계속 강조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럼 이마와 눈가 주름만 없애자며 인심 쓰는 척 몇만 원을 불렀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던 비용의 두 배를 지불하고서야 시술실에 드러누울 수 있었다.

기대 만땅이었지만 주사기로 얼굴을 찔러댈 거라는 생각에 잔뜩 얼어있었나 보다. 의사가 들어오더니 

"보톡스 처음이세요?"

하는데 마치 천연기념물 대하듯 한다.  

"몸에 힘부터 빼세요. 아유, 잔뜩 긴장하셨어요" 

그렇게 첫 경험을 치르고, 이마와 눈가의 주름만 없어진다면 나름 봐줄 만할 거라고 기대하며 병원 문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점점 이마와 눈 가의 근육이 굳어가는지 내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는 내얼굴에 당혹스러워졌다. 그동안 내가 얼굴의 근육을 이렇게나 많이 쓰면서 살고 있었단 말인가. 

보톡스의 효능은 확실히 뛰어났다. 며칠이 지나면서 이마와 눈가의 주름이 싹 사라진 것이다. 

얼굴의 주름만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 사라진 주름들이 좌악 펴지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는지 미간에 깊고 커다란 주름이 하나 턱 생겼다. 그 부분은 보톡스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다. 게다가 눈가 주름이 좌악 펴지면서 내려앉은 살들이 가뜩이나 작은 내 눈을 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보톡스 주사를 맞으면서 완성된 내 얼굴은 다리미로 다린 듯이 좌악 펴진 이마와 눈가 대신에 쳐진 미간과 그리고 처진 눈을 감수해야만 하게 되었다.

병원에 이 같은 상황을 말하며 보톡스 효과를 없애버릴 수가 있는지 문의했더니 보톡스 시술은 1-2주 정도면 처진 느낌과 눈 무거움이 자연스레 사라진다며 걱정 말란다. 그러면서 리프팅 시술을 받으면 개선이 되기도 하니 리프팅 시술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상담할 때 보톡스와 함께 리프팅도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게 한 세트 처방인 줄 모르고 쇠고기 두어 근 패스 만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이 이런 결과물로 나올 줄이야. 그건 쇠고기 두어 근 대신으로는 어림도 없는 20만 원 정도의 비용이다.

보톡스 한방 9,900원에 낚여 여기까지 왔는데 더 낚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보톡스 부작용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건지 보톡스 리프팅 부작용 카페까지 여러 개 나왔다. 나같이 간단한 경우는 보통 몇 주 만에 사라지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리프팅 시술 후 얼굴 표정을 잃어버렸다는 글에는 공감이 갔다. 보톡스 맞은 얼굴은 확실히 어색한 표정이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어느 연예인이 얼굴은 빤질빤질한데 어쩐지 어색했던 얼굴 표정도 그래서였을까 짐작해본다.

보톡스 부작용을 검색한 이후 내 폰에는 새로운 단어들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부작용 없는 보톡스, 탄력 리프팅, 리프테라리프팅, 올리지오리프팅. . .

친구들에게 내 보톡스 첫 경험을 얘기했더니 한 두 명 빼고는 다 보톡스 경험이 있다는게 아닌가. 아니 나도 모르게 언제 그런 적이 있냐고 따졌더니 대부분 자식들 결혼시킬 때, 그러니까 친인척 모두 불러들이는 거사를 앞두고 했다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보톡스 처음이냐고 놀렸던 의사 말이 그제사 실감이 났다. 

어쨌든, 나도 이제 보톡스 맞은 할머니 대열에 들어섰다.

나중에 요양원에 가서도 나 보톡스 맞은 적 있는 여자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