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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09. 2022

노부부가 여행하는 방법

제주도 패키지여행

자식들 다 키워 제각기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우리 인생 살아야지 하는 요즈음이다.

기회가 되면 여행도 자주 가자고 남편과 합의를 했으나 코로나 이후로 쉽지가 않다. 둘이서만 떠나려면 차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수도권 밖으로 멀리 운전하기엔 남편도 버거워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느지막하게 입회를 하게 된 어느 여행 카페도 겨우 몇 번 가고선 코로나로 막혀버렸다. 그 여행 카페 덕분에 편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다시 재개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우연히 톡딜을 보다가 우도를 포함한 제주도 여행이 단돈 298,000원이라는 여행상품을 보게 되었다. 단 3일 동안 판매를 하는데 똑같은 여행상품이 주말에는 498,000원이란다.

시간이 자유로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딱 맞는 이 여행은 안 가면 어쩐지 손해일 것 같아 당장 예약을 하고 결제까지 단숨에 마쳤다.

한 달 후,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그냥 오랜만에 공항 냄새 맡아보고 비행기 타고 해외 나들이하는 기분이나 내자면서 저가 비행기에 올랐는데 모든 것이 기대 이상이었다.

최근에 리뉴얼해서 깔끔한 4성급 호텔도 만족스러웠고 매끼마다 주는 식사도 괜찮았다.  첫날 저녁엔 그럴듯한 회정식까지 나와 이 가격에 이렇게 대접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즐기고 버스에 올랐는데 제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한바탕 풀어낸 가이드는 우리에게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 전에 어차피 들러야 할 쇼핑센터부터 가자며 상냥하게 말했다. 여행상품에 쇼핑이 3번이나 들어있었다는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중국이나 동남아 패키지여행할 때의 경험도 되살아났다. 남편과는 서로 조심할 것을 눈빛으로 나누며 결의를 다졌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쇼핑에 적극적이어서 당혹스러웠다. 심지어 남편까지 나와의 결의를 잊고 만병통치약이라는 상황버섯에 홀려 들어가길래 내가 허벅지를 꼬집어서 말려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 사고 싶어 하길래 4병 한 세트 사면 2병을 더 준다는데도 딱 한 병으로 끝냈다.

이후로 2번의 쇼핑도 무사히 잘 넘겼지만 어쩐지 가이드에게 눈치가 보였다. 잘 포장해서 말하긴 했지만 되도록 많이 쇼핑을 해주시는 게 우리 제주도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자기에게도 힘이 되고 먹고살 수가 있다며 여러 번 읍소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핑을 많이 해주지 않는 대신 가이드 말이라도 잘 듣고 시간도 잘 지키려고 애썼다.

그런데 가이드에게 너무 잘 보이려다가 탈이 나고 말았다. 마지막 날 우도 들어가기 위해 선착장을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지금 우도를 가기 위해 여러 여행팀이 몰려오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재빨리 내려 맨 앞에 가서 줄을 서주셔야만 바로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며 '재게 재게 옵서!'를 외쳤다.

앞쪽에 앉아있는 우리 부부가 아무래도 뜀박질을 해서라도 맨 앞에 가서 줄을 서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가이드가 티켓을 는 동안 우리가 빨리 움직여야만 한다니 사명감마저 생겼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요즘 겨우 제 구실을 하고 있는 무릎에 무리가 갈 정도로 배를 향해 달려간 것이다. ㅠㅠ


이 여행상품 구매를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도가 포함되어 있어서였다. 몇 년 전 겨울에 가서 보았던 우도를 여름에 본다면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모터보트를 타고 들어가 보았던 동굴 속을 생각하며 기대에 차있었는데, 가이드는 우도에서 겨우 30분 남짓 시간을 주며 버스로 돌아오는 시간을 꼭 지켜주기를 당부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부부는 보트 타는 선착장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어림짐작해 보았다. 약 20분 정도 소요되는 보트를 타려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또 달려갔어야 하는데 땅콩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니 아무래도 무리였다. 어쩐지 버스에서 내리면 땅콩아이스크림부터 사들고 한 바퀴 둘러보시는 게 좋겠다더라니 아무래도 가이드의 전략에 속은 것 같았다.

아까 무리하게 뛰어서 탈이난 무릎은 아파오고 남들이 신나게 타는 모터보트만 쳐다보다가 다음 코스로 가려니 맥이 풀렸다.

개인적으로 여행 왔을 때는 하루에 한두 군데 가는 걸로 그쳤지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여행사 작전 덕분에 여러 곳을 훑고 다니긴 했다. 그래도 우도에서의 짧은 시간은 너무 아쉬웠다.      


무릎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래도 아까 민속마을에서 팔았던 관절에 즉효라는 건강식품을 사지 않은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서만 살 수 있다는 관절에 직방이라는 건강식품을 비싼 가격임에도 꽤 여러 사람이 구입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쇼핑 압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무릎은 점점 더 아파왔다. 특히 자리에 한참 앉아있다가 일어서면 더 고통스러웠는데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면서 약간의 오해가 생겼다. 나는 순전히 일어서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일어선 건데 무릎 통증으로 얼굴도 일그러져 있었나 보다.

승무원이 내 표정을 보며 급한가 보다 생각했는지 화장실 문을 얼른 열어놓고 기다려주었다. 무릎 통증으로 몸을 배배 꼬며 천천히 걸어가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화장실 급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주변 좌석에는 우리 여행팀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함께한 2박 3일의 고마움에 대한 답례를 진하게 해 준 셈이었다.

그들 중에는 저렴한 여행비보다 쇼핑하느라 쓴 경비가 더 많았다며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고 허탈해하던 사람도 있다.

내 작은 퍼포먼스가 위로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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