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런치 작가다
얼마 전 양평의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동생네 집에서 3일을 보냈다.
방학을 맞은 각자의 손녀들과 자연 가까이에서 함께 놀아주기였는데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 뭔가 놀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해주어야 했다.
마당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 만들거나 눈싸움하다가 추우면 집안으로 들어와 물구나무서기 등 주로 몸을 쓰는 활동적인 놀이를 했는데, 책 읽기 같은 서정적인 놀이도 번갈아 가며 했다. 초등학생인 동생의 손녀가 여행 블로그를 만들겠다며 컴퓨터를 켜자 옆에서 겨우 유치원 다니고 있는 우리 손녀가 보더니 저도 만들겠단다. 이미 유튜브 계정도 있다고 언니에게 지지 않을 태세다.
생각해 보니 제엄마가 심심풀이로 만들어준 게 생각이 나서 찾아 보여줬더니 딴엔 글과 사진이 있는 블로그가 더 윗질로 보이는지 저도 유튜브 말고 언니처럼 블로그를 하겠단다. 글자도 이제 겨우 읽고 쓰는 주제에 말이다.
동생과 같이 손녀들의 블로그 만들기를 도와주다가 한 수 더 윗질(?)인 브런치북 얘기가 나왔다.
지난여름 교장으로 퇴직을 한 동생이 퇴직을 주제로 브런치를 개설하려고 브런치 작가신청을 했는데 떨어졌단다. 오기가 생겨 블로그에 글도 많이 업그레이드하며 계속 작가 신청을 했건만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단번에 통과한 언니는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다.
의외였다. 그러고 보니 작가 신청에서 떨어졌다는 몇몇 다른 사람들 얘기도 떠올랐다. 그들은 소위 등단까지 한, 자타가 공인하는 작가다. 브런치 작가 통과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별로 내세울 것 없는데도 단번에 통과를 한 나는 뭐지?
브런치가 처음 생겼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마침 쓸 거리가 많이 있었다.
치매 걸린 친정 엄마를 우리 집으로 모셔왔는데, 함께 살면서 당연히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겨났다. 주변 사람들에게 치매 엄마 모시기 힘들다고 푸념했지만 그런 이야기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형제들은 치매 걸린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내 얘기 듣기를 거북해했고, 친구들도 처음엔 효녀라느니 복 받을 거라느니 덕담을 하다가 내가 하고픈 치매 엄마 얘기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때 브런치라는, 주로 글쓰기를 올리는 플랫폼이 생겼다는 걸 알고 회원가입을 한 다음 엄마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을 쓰기로 하고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다. 치매 엄마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을 수 있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듯 엄마 얘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먹혀들어갔나 보다. 친구들이나 형제들의 시큰둥한 반응보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더 큰 위로를 받다 보니 나름 내가 치매엄마 잘 모시고 있나 보다 하는 보람마저도 생겨났다. 엄마 때문에 속상해서 그날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마구 쏟아부어놓았다가도 슬그머니 엄마 옆으로 다정하게 다가앉을 수 있었던 건 브런치의 힘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동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힘이 되었다.
게다가 제2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해 은상까지 수상하고 보니 자부심까지 생겼다.
어느 날 알림이 쉬지 않고 울리길래 브런치에 들어가 봤더니 내 글을 계속 읽겠다는 구독자 수가 마구 올라가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하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다음 메인을 보니 내 브런치 글이 떡 하니 떠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너무 신기해서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했는데, 다음 메인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약 두 시간 동안 내 글이 메인에 떠있었는데 3천 명에 가까운 구독자가 그때 생겨났다. 지금은 몇백명이 구독취소를 하고 나갔지만 말이다.오죽 요란하게 소문이 났으면 내동생까지 들어와 읽고는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이거 혹시 언니가 쓴 거 아냐? 아무래도 엄마 이야기 같아서' 하면서 말이다.
방송사에 까지 소문이 났는지 주요 방송사 네 군데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형제는 물론이고 주변에 아는 사람 모두에게 내 브런치에 대한 얘기는 물론 상 받은 사실조차도 알려주지 않고 나만의 대나무 숲을 열심히 가꾸고 있었는데 동네방네 알리자는 게 아닌가 말이다.
방송사마다 다른 콘셉으로 제안을 했지만 치매엄마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다 보니까 엄마가 출연해야 하는 거였다. 나는 당연히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마도 치매노인에 관한 프로그램이 필요했는지 비슷한 시기에 여러 방송에서 나오는 걸 보고는 역시 치매엄마를 출연시키지 않은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책을 출간하자는 제의에는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출판사 대표를 만나고 진행을 하다 보니 다시 시큰둥해졌다. 출간까지 하기에는 원고 분량도 좀 부족하고 보완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에 원동력이 되어야 할 엄마가 치매나라에서 하늘나라로 옮겨가 버리신 것이다.
요즘 나는 가끔가다 생각나면 브런치에 글을 올리곤 했는데 오늘 브런치팀에서 60일간 글을 올리지 않았다는 독촉? 글이 또 왔다. 한참 동안 글소식이 없으면 자동으로 보내지는 메일 같은데, 마치 빚 받으러 오는 빚쟁이한테 내 게으름이 들킨 것 같아 오늘은 작심하고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겠다고 몇 번이나 도전하고 있는 내 동생 같은 예비작가들에게 조금은 뻐기는 심정은 덤이다.
손녀들 블로그를 보니 제법 얘깃거리들이 들어가 있다. 동생네 손녀는 방학을 맞이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는데, 그곳의 어느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기증했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전원주택 할머니집에서 청소 등 알바를 해서 받은 돈으로 기증품을 샀다는 글이었다. 우리 손녀도 그때 이모할머니로부터 받은 알바비 일부를 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를 했다고 엉성하게 블로그에 올린 걸 보고 웃었지만 기특했다. 글을 보고 댓글도 달아주는 등 나름 소통을 하다 보니 조손 간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다.
요즘 노인들이 손자를 보기 위해서는 재산이 많이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손자의 관심도 끌 수 있다고 한다. 물량공세를 퍼부을 자신이 없는 노인들에게 이런 소통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어쩌면 돈보다 더 큰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