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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11. 2016

할머니 자격

딸의  딸,  

그러니까 외손녀를 봐주는 요즈음,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중이다.

딸의 육아휴직이 끝나면서 나머지 육아는 오롯이 외할머니인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출근하는 딸에게 아기 걱정은 하지 말고 회사일에만 전념하라고 큰소리 땅땅 친지 3개월째인데 벌써 지쳤다는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써 씩씩한 척하고 있으려니 억울한 마음도 든다.

아기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봤을 때 충분히 이해가 가서, 딸에게 넌 아기에게 신경 끄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라고 부추긴 것도 나다. 내가 아이들 키울 때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기를 하루만이라도 봐줘서 육아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노라고 갈망할 정도로 지쳐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옛날에는 인정해주지 않았던, 그러나 요즘 산모들은 거의 경험한다는) 일종의 산후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직장 다니는 아기 엄마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그들은 그들대로 아침마다 아기와 헤어지는 의식을 치르며 피눈물이 난다는 둥 애로가 있다지만 어찌 됐든 내가 보기엔 합법적으로 육아로부터 해방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처럼 모정이 부족했던 엄마였는데 육아휴직이 끝나가는 딸은 달랐다.  하루 종일 아가와 지내고 싶다며 퇴사까지 할까 생각하는 것을 내가 극구 말리느라 온갖 약속을 다했다.

어린이집은 절대로 보내지 않을 것이고, 저녁에도 퇴근하고 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기 하고만 시간 보낼 수 있도록 해주마고 구슬렸다. 한번 경단녀(경력단절 여성 )가 되고 나면 다시 취업한다는 건 하늘에 별따기라고, 또한 전업주부가 되면 아기는 절대로 봐주지 않을 거라고 협박까지 해서 출근시켰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내 나이를 잊고 있었나 보다. 아이 셋을 키워낸 베테랑 육아 달인의 경험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던 내 몸이 맘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아기와 지내다 보니 허리 아프고 팔도 저리고 목도 잘 돌아가지 않는 등 진짜 할머니가 되어있는 있는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손자를 키우는 친구들에게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연락을 했다.  나보다 몇 년씩 먼저 할미 경험을 한 친구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카톡 프로필에 하나같이 손자 손녀 사진을 올려놓기 때문에 쉽게 구별된다.  그리고 나에게 충고한 말도 한결같았다. 내 몸부터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친구는 아주 구체적으로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우선 집 주위에서 어린이집을 잘 찾아야 한단다.

요즘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뉴스들은 그야말로 신문에 날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일뿐,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잘만 이용하면 육아 전담자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아기 본인에게도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접할 수 있는 고마운 시설이라는 것이다.

이 친구의 말이  나에게 하나의 출구를 가르쳐준 것 같아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이제 겨우 7개월 된 아기를 남의 손에 맡겨놓고 얼마나 편히 지내겠나 싶은 마음에 갈등이 생기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의 내 나이에 엄마는 직장 생활하는 동생네 아이들을 도맡아 키웠었다.
힘들지 않냐고 내가 물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몸이야 힘들지. 하지만 딸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더 힘든 일이라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이렇게 이쁜 아기 보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니?  

힘들지요. 힘들어도 너무 힘들어요~
아침마다 다니던 요가도 못하지요.
날씨가 너무 좋다고 브런치카페에서 만나 수다 떨자는 친구들도 못 만나지요.
애들 결혼시키고 이제 겨우 살만해서 해외여행 좀 다니고 싶은데 그것도 못하지요.
시간 없다니까 왜 이리 하고 싶은 것도 많은지...

-국방부의 시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할미 맘의 시계도 돌아간다

한 친구의 말이 위로가 되는 요즈음이다.
나는 아무래도 할머니 자격에 많이 모자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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