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내 친정 가족의 기원이 되는 곳
청와대 개방한다고 했을 때 한 번 가봐야지 생각은 했었다.
내가 찾아봐야 할 곳이 있어서다.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새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간다고 해서 이제 어쩌면 쉽게 가볼 수 없을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관람 예약을 했는데 하필 엄청 무더운 날 남편과 함께 갔다. 본관 앞에는 방문객들의 어마어마한 줄이 서있었다. 그런데 내가 찾아봐야 할 곳은 기다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본관이 아니라 바로 청와대 안 어딘가에 있을 빨래터다. 그곳은 우리 친정 가족의 기원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고모들로부터 전해 들은 전설에다가 엄마의 하소연으로 나는 늘 그곳이 궁금했다.
때는 해방 후의 어느 날.
당시 삼청동 살았던 엄마는 꿈 많은 처녀였다.
여름이면 동네 처녀들과 빨래를 핑계 삼아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곤 했다고 한다.
그날도 동네 처녀들과 같이 빨래를 갔는데 다른 처녀들은 어차피 빨래할 맘이 없었으므로 빨래를 조물 거리며 계곡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혼자 진심을 담아 빨래를 하고 있었단다.
그뿐 아니라 빨래를 더 깨끗하게 헹구기 위해 계곡을 따라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극성을 부렸다. 더 깨끗하고 맑은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물놀이보다는 본연의 자세인 빨래에 더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동네 아낙들도 여럿 있었는데 저 야무진 처녀가 뉘 집 딸인고 하며 관심을 모았다.
마침 큰 고모가 빨래하러 왔다가 이 야무진 처녀를 보고는 수소문해서 자신의 막내 남동생의 짝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면 가끔 듣곤 했는데 당사자인 엄마는 그때 그 빨래터에만 안 갔어도 이 집으로 시집오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했다.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했던 아버지는 요정 출입으로 많은 재산을 날리는 등 가정을 소홀히 해왔던 것이다. 큰고모가 빨래터에서 야무진 처녀를 점찍은 것도 아버지의 이런 성격을 안고 갈만한 야무진 올케가 필요했었나 보다.
훗날 엄마는 그 계곡이 청와대 안 어디로 들어가 버려 다시는 가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영영 볼 수 없는 곳인가 싶었는데, 드디어 엄마가 청와대 들어가 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오빠가 외무고시에 합격을 하면서 부모님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행사를 한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리셉션으로 정신이 없었는지 찾아볼 여지가 없었는지 아무튼 넓은 청와대 안에서 계곡의 빨래터까지 찾아가 보는 일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곳이 늘 궁금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전설이 깃든 곳 말이다.
그 전설은 나만 기억한 건지 그 후 청와대 의전실에서 몇 년을 근무했던 오빠도 그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맏딸인 나한테 여러 가지 하소연을 많이 했는데 그 얘기도 주로 내가 많이 들었나 보다.
아버지는 오빠가 고시에 합격하는 기쁨을 못 본 체 돌아가셨다. 훗날 엄마는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고, 우리 가문에 외무고시 합격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오빠도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동생들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무도 모르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만 얘기했는데 남편이 적극적으로 알아보았다.
청와대 직원에게 물어물어 알아본 바로는 청와대 영내에 그런 계곡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본관 쪽이고 다른 하나는 상춘재 아래 연못 쪽인 것 같다고 했다.
거리상으로도 삼청동 사는 사람들이 찾을만한 곳으로 상춘재 앞 계곡일 거라고 추측을 하고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과연 동네 아낙들이 빨래를 했음직한 넓은 공간이 나타났는데 연못으로 꾸며져 있고, 더 위로 올라가니 야무진 처녀였던 엄마의 빨래터 비슷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추측이다.
지금은 연못이 된 곳에 빨랫돌 같이 생긴 돌들을 보고 짐작만 했을 뿐이다.
몇 년 전 브런치북 <엄마는 치매나라 여행 중>에 썼던 관련 글 https://brunch.co.kr/@ruby50281t5b/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