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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13. 2015

깊은 산 속 옹달샘과 패륜의 심리

 치매 엄마를 바라보는 따님의 자세

깊은 산 속 옹달샘


치매노인을 돌보고 있는 사람은 일단 천사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마녀일지도...-.-

내가 치매 엄마 모시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친구가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착한 딸인 것 같다고 해서 속으로 찔끔했다.

내가 정말 착한 딸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에게 고함 지르면서  지겨워하는데도?

사실 치매라는 걸 글로 쓰려다 보니  한 번 거르고 두어 겹 포장해서 그렇지, 실제 현실은 훨씬 야만적이다.


화장실 변기 사용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요즘의 엄마는 밤이면 화장실에 몇 번씩이나 들락거려서 나를 긴장시키는데,     

기분이 내키면 변기를 빨래터 삼아 빨래를 하시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포장에 들어간다.

엄마는 옛날 처녀시절로 돌아가 삼청동 계곡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중이다.

맑은 물에 빨래를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비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맨위에 자리를 잡는다.

웬만한 처녀들은 계곡 입구 빨래터에서 조물 거리다가 가져가는 게 고작인데 이 처녀는 맑은 물 확보를 위해 계곡 위까지 올라가는 극성을 부린다.

덕분에 이 야무진 처녀가 뉘집 딸인고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혼담이 오갔다.

그 자리에서 처녀를 눈여겨봤던 큰고모가 맨 먼저 선수를 쳐서 막내 올케를 삼았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가 속을 썩일 때면 엄마는 큰고모 원망을 늘어놓곤 했다.


지금은 청와대 안 어디쯤 될 거라는 그 계곡 빨래터가 엄마의 운명을 바꿔놓은 셈이다.

엄마는 무슨 일을 하던 언제나 열심히 사셨는데 그게 치매에 걸린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히려 짐만 되고 있다.

주간보호센터에서도 남의 휠체어를 끌어줘서 요양보호사들을 난감하게 한다던지, 청소하는 사람에게 쫓아가서 거든다고 나서서 일만 저지르는 등 극성맞은 요주의 할머니로 찍혀버렸다.


엄마가 변기에다 열심히 빨래를 하고 있다.

휘휘 휘두르는 품새로 봐서 이불빨래쯤 하고 있는 것 같다.

희한하게도 물이 더러워졌다 싶으면 변기 물을 내려가면서 맑은 물을 확보한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빨래를 하는 엄마,

아무래도 변기 물을 보고는 깊은 산 속에서 맑은 옹달샘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패륜의 심리


가끔 뉴스에서 보면 자식이 부모를 때려 부모가 자식을 고소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심심찮게 접한다.

더 나아가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까지 있어 패륜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사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패륜을 저지를 만큼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란 과연 언제일까?

요즈음의 내가 바로 그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혼미해지는 느낌이다. ㅠㅠ


치매나라를 헤매고 있는 엄마는 이제 현실과는 영 멀어져서  이상한 행동으로 나를 괴롭힌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를 때면 나도 이성을 잃고 마는데, 그래 봤자 엄마!  하며 고함을 꽥 지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정말 나도 모르게 엄마를 때리는 일이 일어났다. ㅠㅠ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보신 엄마가 물을 내리기 전에 손을 변기에 집어넣고 휘휘 젓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손이 엄마 등짝을 향해 가서 철썩 철썩 소리가 나게 팬 것이다.

엄마는 당신이 하는 행동이 뭔지도 모르는, 정상이 아닌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얼마나 충격이 갔는지 연약한 몸을 휘청대는 엄마를 붙잡고 나서 눈물이 나왔다.

엄마  미안해- 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 때문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보상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지난 봄부터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예쁜 원피스를 보고는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지르자 쪽으로 간 것은 순전히 엄마 덕분이었다.


'그래, 엄마 보느라 힘든 나에게 이 정도의 옷 쯤이야.'


그 뒤로 엄마 때문에 힘들 때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옷을 사들였다. 

나를 위해 쓰는 돈에는 이상하게도 죄의식 비슷한 느낌이 드는 트라우마도 치유되는 기분이 들어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덕분에 드레스룸에는 내 옷들이 늘어갔는데 아마도 한참 멋 부릴 처녀  적보다도 더 많이 구입했을 것이다.


이번처럼 힘든 일을 겪었으면 그 강도의 세기로 보아서 밍크코트 한벌 쯤은 보상이 있어야겠는데, 엄마를 두들겨 팼다는 자괴감과 죄의식이 워낙 커서인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옷장에 새로 산 옷들은 주욱 걸렸는데 입고 나갈 일이 없네.

모든 약속을 엄마 위주로 하다 보니 친구들도 멀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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