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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Feb 02. 2020

나는 노인이다

65세가 되면서 생긴 일들 1.

지하철 공짜로 탄다는 지공도사가 되면서 지하철을 타는 마음의 자세도 달라졌다.

불과 지난해 까지만 해도 좌석에 앉아있다가 진짜 노인이 내 앞에 서면 발딱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했었는데, 이제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나도 노인이니까.




어릴 때부터 나는 좀 동안童顔이었나 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두 살 아래인 남동생과 나를 나란히 놓고  

누가 위냐? 오빠냐? 누나냐? 하면서 묻곤 했다.

고등학생 때는 중학교 남학생들이 사귀자며 따라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당시에는 연상연하 커플 개념이 요즘 같질 않아서 내가 고등학생 누나라고 하면 놀라서 도망갔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얼굴이 어려 보여서인지 친구들과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 보려고 극장에라도 들어가려 하면 나만 민증 검사를 당했다.

그렇게 동안이 불만이었던 것이 나이 들어가면서는 유리한 조건으로 바뀌었다. 나이보다 십 년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이보다 5년은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나 늙어 보여? 하면서 당장 안티에이징 크림을 발라가며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쓰는 요즈음이다.   


겉은 젊어 보이면서 속으로는 곯았는지 무릎에 탈이 났다. 제 나이 생각 않고 에어로빅 운동을 신나게 하다가 푹 고꾸라진 것이다. 병원에 갔더니 퇴행성 관절염으로 무릎 연골이 다 닳았다며 무릎에 무리가 가는 에어로빅은 절대로 하면 안 되고 대신 수영이나 실내 자전거 탈 것을 권했다.

무릎 치료를 하면서 걷는 것도 힘들어져서 하이힐은 물론이고 굽 높은 신발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내 키가 작아서 그동안 모든 신발마다 키높이 깔창을 장착했었는데 다 빼고 신었더니 사람들이 금방 알아보았다. 신발만 바뀌었을 뿐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기적거리며 걷다 보니 영락없는 노인이다.

노인의 걸음걸이는 젊은이와 확연하게 차이 난다. 내가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비결은 걸음걸이에서도 있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발걸음을 경쾌하게 걷다 보면 팔자걸음으로 어기적거리는 노인들보다는 확실히 젊어 보였다. 이제는 무릎 때문에 노인 걸음으로 걷다 보니 하루아침에 자존감이 팍 내려간 것 같았다.

때 맞춰서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다는 경로 우대 카드 신청 안내서가 날아왔다.  만으로 65세 노인이 되었다며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도장을 쾅 찍어준 것이다. 누가 정했는지 참 적절한 나이지 싶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이런 라때 말투도 전에는 쓰지 않던 거였는데) 뭐라거나 말거나 내 경우로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지하철 공짜로 탄다는 지공도사가 되면서 지하철을 타는 마음의 자세도 달라졌다.

불과 지난해 까지만 해도 좌석에 앉아있다가 진짜 노인이 내 앞에 서면 발딱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했었는데, 이제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나도 노인이니까.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을 때면 일부러 노약자석으로 찾아간다.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도 일부러 사람들이 적은 노약자석 번호를 향해  돌진한다. 무릎이 아파 잘 못 걸어서 꾸물 거리다 보면 건강한 다른 노인들이 먼저 자리를 점령한다. 외모는 저렇게 늙고 힘없어 보이는데 그 순간만큼은 날래기 그지없다. 어떨 때는 서있는 노인이 앉아있는 나를 째려보기도 한다. 젊은것이 노약자석에 앉아있다고 그런 것 같은데 이제는 당당하다. 나는 무릎이 아프고 심지어 노인이다. 노약자석은 그래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릎이 아프고 앉아있고 싶어도 반드시 양보를 해야 할 사람이 있으니 바로 임산부다. 그건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다른 누구보다도 임산부에게는 앉을자리가 필요하다. 임산부가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을 딱 정해준 것도 정말 잘한 것 같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처럼 아무리 노인이라도 염치를 차리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늙었다고 괄시받는 일은 없을 텐데 대접만 받으려는 노인들을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수명이 짧았던 옛날에야 곧 이세상을 떠날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공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명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요즘,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눈총 받게 생겼으니 눈치껏 알아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다.

다만 기죽지 말고.





작년에 65세가 되면서 생긴 일이니 해가 바뀐 지금은 66세다. 세월이 참 빨리도 간다.

이왕 나이를 커밍아웃했으니 좀 더 진지하게 시리즈로 써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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