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린이날, 오랜만에 어린이날 행사를 가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린이날이면 백화점 가서 장난감 하나씩 사고 외식을 하던가 놀이동산 가서 진을 빼고 오던 시기 이후 실로 오랜 만의 어린이날 행사였다. 손녀가 이제 아기 티를 완전히 벗어나 뛰어다니는 어린이가 되었으니 온 가족이 함께 어린이날 행사를 치렀는데 손녀 하나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이모 이모부까지 동원되였다. 아침에 딸부부는 우리와 만나 행사장으로 가기 전에 손녀와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티셔츠와 바지를 입히려고 하는데 핑크색 공주 드레스를 꼭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는 것이다. 할 수없이 어린이날이기도 하니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했지만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손녀가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나왔다. 그러나 손녀는 파티에 가는 주인공 공주님답게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펼치며 나 어때? 멋지지? 한다. 딸의 회사 잔디밭에 준비된 물총놀이 등 다양한 행사를 즐기면서 손녀의 옷차림은 어느새 티셔츠로 바뀌었다. 손녀는 알아서 다양한 의상 컨셉을 즐긴 셈이다. 가족들과 요란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낸 손녀는 잠자리에 누워 "오늘 모두 다 함께 해서 진짜 너무 행복했어."라며 만족해하더란다. 이제 겨우 두 돌 지난 어린 것의 멘트 치고는 좀 오글거렸지만 정말 그래 보였다. 손녀의 행복한 추억에 보탬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그래, 어린 날의 추억은 이렇게 행복한 그림이어야 하고 말고.
손녀의 핑크드레스를 보면서 어린 날의 내 연분홍 치마가 생각났다.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쯤 되어 작아서 더 이상 못 입게 될 때까지 그 연분홍 치마에 애착을 가졌으니 지금 내 손녀보다 한참 낮은 정신연령을 가졌었나 보다. 게다가 손녀의 핑크 드레스처럼 행복한 추억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는 어른들이 참 짓궂게도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아이들을 잘 놀려먹었는데 나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에는 더 재미있는 놀림감이 되었다. 어느 날 동네 아줌마들이 할 일 없이 모여 앉아 수다 떨다가 방에서 내가 나오자 예의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놀림이 시작되었다. 결정적으로 엄마까지 정말 너는 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애인데 그래서인지 말도 잘 듣지 않는다고 구체적으로 진술을 해서 나는 욱하며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 우리 진짜 엄마에게 가겠다고 말이다. 보따리를 싸는 나를 보고 동네 아줌마들은 더 흥이 났고, 내 돌발 행동에 어이없어 하는 엄마에게 나는 한 술 더 떠서 내 분홍치마 어딨냐고 물었다. 물론 대여섯 살 때의 그 장면은 아주 오래되어 생각도 잘 안 나는데 한참 커서까지 엄마가 두고두고 놀려먹어서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치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는데 보따리 싸면서 내 분홍치마 내놓으라고 했다는 말만 전설처럼 우리 남매들에게도 전해져온 셈이다. 엄마가 치매 걸리기 전, 우리랑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나왔던 분홍색 치마 레퍼토리는 더 이상 구전되지 않는다. 작년 여름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나의 연분홍 치마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