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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Apr 15. 2022

10 몰타 여행 종착지, 발레타

어쩌다 몰타 여행

몰타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발레타가 됐다. 고조섬에서 발레타로 바로 가는 페리가 있어서 이걸 타고 발레타로 가서 2박을 하는 걸로 몰타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예정했던 2주를 꽉 채운 일정이었다. 어쩌다 보니 남들과는 정반대-보통은 몰타 여행을 발레타에서 시작하니까-로 이곳이 마지막 행선지가 됐다.


발레타에서 바라본 지중해



배에서 내려 마주친 발레타의 첫인상은 참 '수도답다'는 거였다. 굉장히 정돈되고 깔끔하다. 페리 선착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발레타 구도심으로 들어가면 옛날 서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아진다. 르네상스 시대가 박제된 것 같은 건물과 성당, 광장, 노천이 있다. 앞에선 프랑스어, 옆에선 이탈리아어, 뒤에선 스페인어가 들린다. 유럽의 인기 여행지임을 입증한다.


발레타는 도시가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게 백번 수긍이 되고도 남을 만큼 전체가 참 조화롭고 아름답다. 수백 년은 됐음직한 건물들 속에 힙한 카페가 있고, 고급진 파인 다이닝과 함께 오래되고 매우 저렴한 노천카페도 있다. 굉장히 많은 유적지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들이 꽉 차 있다(너무 많기 때문에 어디부터 가야 하느냐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만약 날씨가 좋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 어퍼 바라카 가든(지중해가 바라다보이는 정원, 로우 바라카 가든도 있다. 난 어퍼 바라카 가든이 더 좋았다)에 가서 바다를 보면서 테이크 아웃한 파이나 샌드위치를 커피랑 점심으로 먹을 수 있다. 날씨가 좋았던 발레타 마지막 날 이걸 해 봤다. ㅎㅎ


어퍼 바라카 가든


미식가들을 만족시킬 만한 파인 다이닝도 매우 많다. 여긴 온갖 유럽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식당 음식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


가격이 저렴한 건 아니지만(20~30유로대) 이 정도 식당이 기본 미슐랭 원스타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정도급 이상이다. 같은 가격으로 영국이나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외식 퀄리티랑 비교하면 몰타 외식의 가격 대비 효용이 단연 높다.


물론, 여긴 길거리 음식이 워낙-내 기준엔- 훌륭해서 이런 파인 다이닝 만족도가 나에겐 떨어졌지만 말이다. 5유로 미만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발레타를 포함한 몰타 전역에 정말 많기 때문에. 발레타에서는 사흘 내내 방문한 카페가 있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내리막에 있는 이 카페는 커피가 맛있고 저렴한 데다 같이 먹을 수 있는 2~3유로대 식사용 파이 종류가 정말 많아서 이거 골라서 먹는 게 재미였다. 단점은 사람이 늘 많다는 것.


발레타에서 1일1방문했던 이 카페



볼 것 많은 발레타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세인트 존 대성당이었다. 여기 전시된 카라바조 그림이 보고 싶어서였다. 세인트 존 성당에 입장하려면 18유로를 따로 내야 하는데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나는 30유로를 주고 몰타 헤리티지 몰타 패스라는 걸 끊어서 이걸로 다른 유적지는 다 입장을 했는데, 세인트 존 성당을 비롯한 일부 유적지는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패스가 없으면 유적지 들어갈 때마다 꽤 많은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여행 전에 패스 끊는 걸 추천한다. 해리티지 몰타 사이트에 들어가면 바로 살 수 있다).


나는 카라바조에게 그런 사연(로마에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몰타로 도망 온)이 있는 것도 몰타 여행을 위한 벼락치기 검색을 통해 알았다. 제단화인 세례 요한의 참수가 성당에 걸려 있고, Saint Jerome Writing이 별도 방에 전시돼 있다(그림 소개가 굉장히 꼼꼼하게 돼 있다. 그림 자체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1980년대 그림이 도난당했던 히스토리 이런 것까지). 성당 내부도 압도당할 정도로 화려하다. 난 유럽 여행을 많이 안 다녀봐서 다른 유명한 성당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것보다 더 화려하기도 어렵겠다 싶을 만큼 화려하다.

세인트존 대성당의 내부


그림 옆에 그림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코너가 있는데 매우 세심하게 돼 있었다.


발레타에서 기대에 비해 훨씬 좋았던 곳은 바로 세인트 엘모 요새에 있는 국립 전쟁 박물관. 전쟁 박물관이라고 해서 무기나 전쟁사 이런 게 전시돼 있는 곳일 줄 알고-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몰타史 전체를 다루고 있었다.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아랍, 시칠리아 왕국, 성 요한 기사단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 나폴레옹의 지배, 영국의 지배, 1차, 2차 세계대전까지(몰타는 2차 대전 때 바로 옆에 있는 추축국 이탈리아의 침공을 심각하게 받았다. 발레타 거리에 2차 대전 희생자들 추모비가 있다)..몰타 역사 자체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침략받은 역사인만큼, 이 박물관은 단지 전쟁사라기보다는 몰타사 그 자체이자, 압축된 서양사를 정리해주는 장소다.


세인트엘모 요새



설계도 매우 잘 돼 있다. 규모가 크진 않으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몰타의 침략받은 역사를 연대순으로 6개의 방으로 나눠 전시했는데, 방대한 역사를 방문자 입장에서 보기 수월하게끔 효과적으로 전시한 매우 잘 만든 박물관이란 생각이 들었다(1번 방부터 6번 방까지 쭈욱 보면 아주 잘 쓴 서양사 책 한 권 읽은 느낌이 든다). 몰타를 돌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싹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이 박물관에서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점은 각 침략자들에 대한 몰타인들의 시각이 담긴 설명이다. 예컨대 18세기 말 프랑스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도착은 몰타에 첫 공화 정부 수립과 함께 현대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프랑스는 자신들의 전쟁 자금을 대기 위해 교회의 부와 재산을 압수했고 전통적인 경제를 파괴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서 국이 지배했던 1800년대는 "몰타의 1800년대는 안전하고 충돌이 없는 시기였다. 많은 여성들이 몰타로 여행을 왔고.. 국가 지도자들과 정기적인 방문자들이 몰타를 찾았다. 영국 귀족들은 정기적으로 몰타에 방문했다"라고 돼 있다. 프랑스와 영국 지배기를 어떻게 대조적으로 보느냐가 담겨 있는 설명이다.


몰타의 독립기와 영국 해군의 몰타 철수에 대해서는 "영국 해군이 마침내 1979년 몰타에서 떠나게 됐을 때의 감정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 모든 군사적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행복했지만 몰타인은 산업과 소득, 경제적 안정성의 중요한 원천을 잃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몰타는 진정한 시험대에 직면했다". 무수한 침략을 겪은 몰타 입장에서 각 침략 주체들에 대한 시각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이 '국립' 박물관에 그 시각을 알 수 있는 설명들이 꽤 직설적으로 담겨 있었다.


그리고 몰타는 생각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곳일 수도 있다.  루즈벨트와 처칠이 스탈린과의 1945년 얄타회담 직전에 사전회담을 한 곳이 바로 이 몰타다. 1989년에 아버지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베를린 장벽 붕괴 한 달 뒤 냉전 종식을 결정짓는 회담을 한 곳도 바로 몰타였다.


발레타를 3일 동안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하면서 남녀노소, 어느 문화권에서 오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레타를 종착지로(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지만) 잡은 것도 몰타 여행을 정리하는 격이 돼서 결과적으로 좋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또다른 포인트는, 오전 8시쯤 내 숙소가 있는 임시다(발레타에서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서 발레타로 가는 길이 마치 런던이나 서울의 같은 (출근) 시간대와 너무 흡사했다는 점이다. ㅎㅎ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아주 많은 사람들. 도시는 한국이나 영국이나 몰타나 참 비슷하다.


+혹시 몰타 여행을 계획 중이면서 여행 경비를 최대한 절약하기 바란다면 발레타 여행 시 발레타에 숙소를 잡기 보다 임시다나 살짝 떨어져 있는 지역에 잡는 걸 추천한다. 발레타 안이나 슬리에마, 세인트쥴리안스 같은 발레타 서쪽 지역은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인데, 몰타 어느 지역에서도 발레타로 가는 버스는 잘 돼 있기 때문에 살짝 떨어진 지역에 숙소를 잡고 버스나 도보로 가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2주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볼수록 매력적인 이 나라에 푹 빠졌고,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리워지는 걸 보니 머지 않은 시기에 다시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특히 음식이 몹시 그립다 ㅎㅎ).


내 경우엔 날씨, 마주친 사람들 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져서 여행을 더 누릴 수 있었던 것도 틀림 없다.


무계획 여행이 절대 권장할 건 아니지만, 일상이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서 여행 계획 세우는 것조차 버겁거나 그냥 쉬고 싶은 사람이 오기에 몰타는 참 괜찮은 장소인 것 같다.


 동시에 여행 취향이 어떻든 간에-역사, 고고학, 건축, 자연과 하이킹, 미식, 예쁜데서 사진 남기기, 해어떤 스타일의 여행자도 맞춰줄 수 있는 자원이 있는 곳인만큼 들를 가치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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