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두 달만에 수습종료 통보받은 이야기 part.1
prologue
공백기+조바심+초조함 때문에 그냥 '뽑아줘서 일단 들어간 회사'에서 제가 겪은 경험담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떤 회사든 그냥 1년만 버티고 이직하자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저의 불찰도 있겠지만, 그 누구도 절실함이 약점이 되어 이런 개같은 경험은 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퇴사하고 나서 일년이 그냥 후루룩 지나갔다. 강남-부천 왕복 3시간의 (콩나물)지하철통근+매주 본가왔다갔다 에 심신이 지쳐버린 나는 본가로 아예 내려가 조금 쉬다가, 토익 공부 좀 하다가, 잠깐 현타+슬럼프도 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일년이었다. 2021년이 되고 내 공백기도 1년이 넘어가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면접보는 족족 탈락을 경험한 취준생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기 짝이 없는데 그렇게 마음이 불안해지면 신중해지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는 우물쭈물하며 물러설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에게 합격을 주는 회사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지금 이럴(자소서+면접+광탈 무한굴레) 시간에 하루라도 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넣고 봤다.
일단 넣고 본다는 뜻은,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or회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데 거기서부터 문제였지 않았나 싶다.
그냥 어디든 넣었던 스타트업 중 한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고싶다고. 코로나가 한창 심했을 때여서 비대면 면접으로 진행해도 된다고 했다. 서울이 아닌 본가에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화상면접을 희망한다고 회신했다. 그렇게 1차 면접을 봤고, 통과해서 면접 후에는 무슨 pre-work였나 과제제출로 2차 면접을 대신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취뽀에 성공했(을 줄로만 알았)다.
면접은 아주아주,아주 순조로웠다. 대표의 첫인상도, 그녀가 했던 말들도 나에겐 너무 반짝거려서 그 화려함밖에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근데 결과적으로는 이상했다. 아마 초조함과 절실함이라는 성에가 끼여 앞을 제대로 못봤었을 수도 있다. 그땐 몰랐던, 몰랐었을 수밖에 없었던 이상했던 점을 상기해봤다.
1) 1차 면접을 실무진이 보지 않고, 대표가 직접 본다.
보통 면접을 가면 1차는 실무진이, 2차는 대표 또는 그에 준하는 경영진이 면접을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근데 1차부터 대표가 면접을 본다고? 이말인즉슨, 면접을 볼 실무진이 없다 = 팀에 실무진이 단 한명도 없다 로 밝혀졌다. 그랬다. 입사하고보니 우리팀에 마케터는 나 + 인턴1이 전부였다.
2) 면접의 내용이 단순했다.
이전에 몇 번 봤었던 1차 면접에서는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중점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 면접의 주된 내용이었다. 내가 했던 일이나 그 과정에서 느낀것, 깨달은 것 등 업무를 중심으로 한 질문들 + 인성질문 약간 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면접은 포커스가 인성에 맞춰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뭐, 인생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느꼈던 순간, 가장 실패했다고 느꼈던 순간, 피드백을 받을때의 태도 등.) 뭔가 이 조직과 내가 fit이 맞는지 위주로 보는 것 같았고, 이런 내용은 보통 2차에서 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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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답변한 내용 중에서 피드백을 상대적으로 좀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고 했던 답변에 꽤나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왜 다른 모든 답변들 중에 그 부분을 인상깊게 느꼈을까. 입사하고나서 인턴에게 전임자분들 이야기를 전해들으니, 대표 본인과 전임자 분들의 의견차이가 빈번하게 있었고, 대표는 본인의 의견을 굽히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됐다. 심지어 왜 그렇게 예민하냐는 식의 가스라이팅도 서슴지 않았다고. 그리고 업무를 하면서 이런 것들은 점점 피부로 와닿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거였다. 경험이 너무 많진 않더라도(경험 많으면 자기주장 강할수도 있으니까) 본인 말 잘 들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
3. 채용 순서가 좀 뒤죽박죽이다.
과제제출(있을수도 없을수도 있음) → 1차면접(실무진) → 2차면접(경영진) → 처우협의
일반적으로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도 비슷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1차를 대표가 직접, 2차는 과제제출로 대체했다. 응? 2차를 왜.... 과제제출로 보는거지? 과제제출도 그렇게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자기가 인상깊게 본 브랜드와 이유 뭐 이 정도였다. 과제라기 보다는 그냥 직무에 대한 본인의 주관이 있는지 정도를 보는 것 같은. 그걸 왜... 면접 보고나서 보는거지? 그냥 형식적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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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대표와 몇번 점심식사를 하면서 채용절차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이런 채용 순서와 방법을 처음 시도해보는 듯 했다.
"근데 그 과제전형은 어땠어요? 할만 했어요?"
그 물음을 들으며, 그리고 업무를 하면서 맞춰본 퍼즐을 통해 이건 그냥 형식적인 과정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무수히 탈락하며 넘지 못했던 취준의 벽이 이 회사에서는 너무 쉬웠다. 회사에 단 한번 가보지도 않은 채로(물론 화상면접은 내가 선택한 거였긴 하지만), 내 역량과 능력이 충분히 전달되었는지 의문인 채로,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