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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Bori Jan 22. 2023

회피대신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

라디오 녹음은 처음이라서

나를 만나는 시간, 밑미라디오


지난달 글쓰기의 매력에 풍덩한 강원님과 리추얼을 함께 했다. 강원님은 밑미가 시작하던 시절부터 함께한 인연으로 리추얼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말 그대로 ‘밑미’를 직접 경험한 분이다. 내가 글쓰기 리추얼 메이커로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밑미하는 시간이 왜 중요한지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듯이, 강원님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밑미라디오’라는 오디오 콘텐츠를 통해서.



라디오 게스트로 초대합니다!


<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리추얼 1 , 온라인 미팅에서 글쓰기 그리고 독립출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강원님은 밑미라디오의 새해 콘텐츠로 '글쓰기 특집'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번째 에피소드 ‘ 글이 책으로 나와도 괜찮을까요?’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와 독립출판에 대해 함께 수다 떨어보자고 제안했다. 에세이 독립출판기를 쓰며 글로 정리한 내용이기도 하고 매달 리추얼 메이트분들과 자주 나누는 이야기니 별로 부담될 것도 없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면   같아 감사하다며 덥석 초대에 응했다.


정신없이 연말연초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녹음 전날이 되었고 리마인드 메일을 받고서는 메모장에 키워드만 몇 가지 적어두었다.

- 글쓰기의 쓸모, 쓸모라는 동기부여 : 즐기는 자 vs 해야 해서 쓰는 자, 나에게 글의 첫 쓸모는 이력서, 감정을 쏟아내는 글
- 일에 대한 글쓰기 : 칭찬과 인정이 동력, 성취감, 일의 의미를 찾게 됨
- 글쓰기와 책 만들기의 발목을 잡는 자기 검열 : 내가 쓰고 싶고 엮고 싶다는 마음으로 충분(누군가에게 재미나 의미를 주려고 검열하면 첫 시작불가)
-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 독자에게 유용할 글은 내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
- 책을 만드는 경험과 마음 : 창작욕구가 강한 사람, 결국은 하게 된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



오디오 녹음은 처음이라서...


녹음날 스튜디오에 들어서니, 온에어 되어 누군가가 듣게 된다는 게 그제야 실감되었다.

'어떻게 들리려나, 잘해야 할 텐데......'

(되짚어 보며 추측해 보건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이 순간부터 페이스가 말렸다.)

말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마이크 앞에 자리하고 테스트를 하며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내 목소리를 들으니 허리에 꼿꼿하게 힘이 들어갔다. 마이크를 가까이 두고 말하려니 미리 적어온 메모를 보기도 힘들었고, 자연스럽게 안되더라. 메모장은 포기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을 애써 무시하며 녹음은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늘 하던 말인데 이상하게 말하던 문장이 마무리되면, 뒤이어하려던 말이 떠오르지 않고 순간순간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점점 적절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아 버벅거렸고 그럴 때마다 '와 이게 어떻게 완성될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계속 의식했고 그렇게 흡족하지 않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서너 개의 질문을 주고받았을까 잠시 타임을 요청했고 숨을 고르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 싹 비우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다 신경 쓰지 말고 질문 하나하나만 생각하자.’ 

마음은 좀 편해졌는데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앞에서 내가 했던 말을 또 설명하고 있다던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앞에서 말을 너무 길게 한 것 같아 그냥 말을 먹어버리는 그런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망했네 하하.

"강원님 미안해요. 편집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내용이 그리 알차지 않을 것 같아요. 흑흑"


집에 돌아와 잘하고 왔냐는 친구에게 “완전 망했어. 이거 라이브 되면 쪽팔려서 어떡해.” 말하며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패배감이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무기력한 기운을 덮어쓴 채 유튜브를 열었다. 요즘 즐겨보던 알쓸인잡 클립이 보였다.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는 심채경 님의 말


어제 잘못한 것도 나고
오늘 실수한 것도 나고
매일 발전하려는 모습도 나고
그러다 또 실패하는 것도 나

마음에 드는 내 모습만 보려 하지 않고
나의 못난 점을 잘 알고 그런 모습까지 사랑하는 게
진짜 나를 사랑하는 것 아닐까


지난주에 보고 캡처도 해두었던 말인데, 못난 나를 느끼고 있는 순간 접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명확히 알아야겠다. 나의 단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게 나를 잘 사랑하는 방법이니까 너무 부족하고 아쉬워 보였던 내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정리 보기로 했다.




아쉬움 가득한 실수보고서



원인 하나. 실제의 나를 과대포장하고 싶었다.

독립출판 워크숍 첫 수업에서 하고 싶은 모든 걸 책에 다 넣고 싶은데 어렵다며 고민을 토로하던 내게 누군가가 그랬다. "이거 첫 책 이잖아요. 이 책을 내 인생의 마스터피스로 만드실 계획이신가요? 다음 책에 반영할 수 있는 게 있으니 일단은 시작하는데 의의를 두고 해 봐요!" 욕심을 내려놓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말이었다.

인터뷰형식의 녹음을 처음 경험하는 나는 이때와 비슷한 욕심이 들었던 듯하다. 다시는 마이크가 주어지는 기회가 없는 사람처럼 글쓰기와 독립출판과 관련하여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언급하고 싶었다. 뒤늦은 도전,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 그동안 일에 대해 쓴 글들, 글쓰기가 왜 좋은지, 그리고 독립출판의 과정까지 내가 가진 키워드들을 다 꺼내 놓았고 미리 공유받은 사전질문에 이렇게 저렇게 껴맞춰야지 했다. 아직 숙성되지 않은 생각에 어디서 보고 들은 좋은 말까지 모아놓으니 뒤죽박죽이 되어 제대로 말이 나올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멋지게 드러내기 전에 내 생각을 탄탄하게 정리했었어야 했다. 혹은 내가 잘 아는 것만 이야기하거나.  


원인 둘. 준비가 부족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건 좋지만 준비가 부족했다. 정말 있는 그대로 즐길 거였으면 즉흥적으로 대화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다. 하고 싶은 이야기 꾸러미를 잔뜩 만들어 놓을 것이 아니라.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짧은 온라인 미팅을 할 때도 미리 할 말을 정리해서 자료도 만들고 시작 전에 첫 페이지 정도는 실제 말해보는 연습도 하는데, 하물며 둘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태이고 처음 경험해 보는 스튜디오 녹음인데 안일했다.

즉흥형 인간이 아니니까 예상 질문에 키워드만 잔뜩 나열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의 첫 문장 정도는 미리 적어보고 실제 말도 해봤더라면 좀 더 나았을 거다. 준비된 나라면 잠시 흔들려도 스스로에게 믿음이 있어서 금방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데 준비 안된 무방비 상태를 내가 제일 먼저 인지하고 지레 겁을 먹어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 부족한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의식하며 걱정했고.

노력형 인간이 어설프게 즉흥형 인간이 되어보려다가 역시 이건 나랑 맞는 게 아니구나 깨닫게 되었다.


원인 셋.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신경 쓰고 의식했다.

이어폰 너머 들려오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이게 어떻게 들릴지 신경이 곤두섰다. 이 질문에 어떤 키워드를 꺼내야 사람들이 '이 사람은 자기중심과 철학이 있는 사람이구나. 똑똑하구나. 말을 잘하는구나' 할지 팽팽 머리를 굴렸다. 말을 마무리할 때쯤이면 '아 이 말도 해야 하는데 아 앞에서 말을 너무 길게 했네, 그 말은 뺄 걸 그랬네. 이건 다음 질문에 껴넣어서 해야겠다. 다음 질문은 뭘 던지시려나?' 하며 계속 아쉬운 지나간 이야기를 곱씹고, 아직 오지도 않은 다음 질문을 상상하느라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내 이야기의 중요한 포인트들을 잡아준 강원님의 이야기가 더 재밌게 이어질 수 있는데 툭툭 끊기는 것 같아 아쉬웠다.)

'지금'에 의의를 두고 최선을 다했다면 버벅거려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제일 아쉬운 건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잔뜩 힘들어간 채 안간힘을 썼다는 거다.




실수 보고서를 써보고 얻은 것

사실 처음엔 실패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이게 무슨 실패까지라고 할 일인가 싶고 '실수'라고 부를 정도로 가벼워졌다.


하나. 부족한 내 모습을 제대로 알게 된 것

생각보다 빨리 편집본이 라이브 되었다. 마음도 다잡았겠다 모니터링해야지 하며 출근길 차 안에서 혼자 듣는데도 껍데기만 남은 거북이처럼 얼굴, 손, 발 다 감추고 숨고 싶었다. '와 이거 못 듣겠는데?! 아니야 나의 단점도 예뻐해 주기로 했잖아'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듣다 보니 내가 상상한 것과 진짜 내 문제의 차이도 보이고, 내 상태가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지금 하는 말을 어떻게든 버벅거리지 않게 마무리하려고 하니 말이 길어지고 자꾸 반복하게 되는구나. 다음에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정리하고 입을 떼는 게 좋겠다. 글을 쓸 때도 구조를 잡지 않고 무조건 돌입하는 것과 비슷하네?!'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 중에 직접 내 입으로 뱉은 이야기 외의 것들은 모두 생각정리가 잘 안 되었다는 뜻이겠구나. 앞으로 생각하는 시간, 글로 정리하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이런 것들.


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 경험

'지나간 거 후회하면 어쩌겠어. 이렇게 나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니 실수하고 부족한 내가 끙끙거리고 있는 게 갑자기 귀엽게 느껴졌다. '그게 뭐라고 또 이렇게까지 ㅎㅎㅎ' 그만큼 잘하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던, 그렇지만 사실은 많이 부족한 내 모습도 사랑스럽네! 나의 부족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니 나에게도 남에게도 실수에 더 너그러워지는 마음도 덤으로 얻었다.


셋.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

예전의 나였다면 '인터뷰는 혹은 오디오 녹음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하며 다시는 이런 기회가 와도 도전하지 않으려 했을 거다. '난 철저하게 준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진행하는 스타일이 맞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제한해 버렸을 터다.

근데 나의 부족함을 직시하고 나니 다음엔 뭘 개선해야 할지 알게 되었고 다음엔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실수도 그 자체로 좋은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니 다음에 비슷한 기회가 생긴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다. 부족하면 어떤가? 그게 내 모습이니까 인정하고 채워가면 되지 뭐.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이런 귀한 기회를 준 강원님께 감사하며, 멋지게 편집해서 마무리된 오디오 콘텐츠도 공유해 본다.

밑미라디오 "내 글이 책으로 나와도 괜찮을까요?" 들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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