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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Bori Apr 24. 2023

김신지 에세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살고픈 내일을 선택하고 충만하게 오늘을 만끽하며 책임지는 삶

출근하지 않는 첫 주. 분명 3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겠다고 했지만 온전히 내 것인 하루를 잠으로 보내는 게 아쉬워서 아침이면 일찍 눈을 뜬다. (어쩔 수 없는 나란 사람) 


자연이 선물한 4월을 온전히 만끽하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며 반짝거리는 연둣빛 잎들을 구경한다. 벚꽃을 만끽하지 못한 아쉬움을 산철쭉, 겹벚꽃, 복숭아꽃들을 구경하고 사진첩에 잔뜩 채우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다. (책에 산책을 나가면 강아지보다 더 자주 멈춰 선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친구가 밑줄을 긋고는 나에게 손짓을 했다.)


  

월요일엔 엄마와 동네 산에 올랐고, 화요일엔 종일 책을 읽고 글자를 끄적였고, 수요일에는 전시를 보고 자유인과 평일 낮을 만끽 하며 낮맥을, 그리고 남산공원 둘레길을 걸었다. 목요일에는 친구의 판교 출근길 동행했다. 역에서 내려 오피스를 향해 일제히 걷는 직장인들의 물결을 거스르며 걸으며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태생이 걱정인형이라, 일을 그만두면 불안할까 봐 그만두기 한 달 전부터 불안해했는데, 신기하게도 쉼과 동시에 충만감을 만끽하며 ‘좋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봄날의 연둣빛을 끼고 살 수 있어서가 첫 번째, 다음으로는 매일 아침을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로 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1월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쳐있던 때 이 책을 만났고 1부를 읽다가 그대로 멈춰 두었다. 보아하니 2부는 퇴사의 배경들이 쏟아지는데 더 읽었다가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잠시 멈춤 해둔 책을 두 달 만에 다시 펼쳤다. 2부부터 읽을 차례였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찬찬히 읽고 싶었다. 



그래 단순히 쉬고 싶은 게 아니었어.


우리에겐 아직 쓰지 않은 용기가 있다고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있다고
어쩌면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들에 쫓기느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살 수 있는 사람인지 너무 오래 잊고 지낸 건 아닐까. 
이 세상에서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건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한 번뿐인 이 삶을 조금 더 기쁘게 사는 일 일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퇴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명 회사에서 하는 일이 모두 하고 싶은 일이었고 그 자체로 신이 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일 외에 하고 싶은 게 쌓여가고 있었다. 내 속도대로 내 마음대로 부담 없이 하고 싶어서 '시간이 나면 해봐야지' 했지만 해야 하는 일들에 묻혀 그런 것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화석이 되어 잊혔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무계획으로 쉼표의 시간이 시작되었을 때 매일매일 꽃과 나무를 구경하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으니 걷고 그저 쉬고만 싶을 줄 알았는데, 일주일도 안되어 하고 싶은 것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왔다.

'이봐요 그대. 에너지가 바닥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그 사람 맞나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하며 미룬 엄마와의 화해도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I의 편지’로 시작해서 “인숙씨가 키운 것 중 가장 튼튼한 것은 나 여아만 한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1부를 다 읽고 엄마에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은 매한가지일 텐데, 나의 엄마에게는 이런 딸이 없다는 게 얼마나 억울할까.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는 탓을 엄마에게 돌리고 있는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엄마를 안쓰러워하고 고마워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글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책 너무 좋은데 엄마에게는 선물 못하겠네.’


그런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게 했는지 엄마와 제주에서 2주를 보내게 되었다. 

월급쟁이가 최고라는 엄마의 말을 거스르고 울타리를 뛰쳐나와서는 엄마의 걱정이 듣기 싫어서 안전거리를 두며 산지 2~3년쯤이 되었던 시점이었다. 내가 선택한 길을 헤처 나가면서 힘이 들 때면 ‘엄마가 지름길만 가라고 안내하는 바람에, 뒤늦게 세상 쓴맛을 온몸으로 경험하느라 고생 중이다.’며 화풀이를 했다. 그런 때에도 이해해 보겠다고 법륜 스님의 말씀을 되뇌며 마음에 사리를 만드는 건 늘 부모 쪽이다. 나의 백수 라이프를 가장 걱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 예상했던 엄마는 지금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에도 전환점이 생겼다.  




지금을 만끽하고 내가 가진 것을 충분하다 느끼는 일상 


가진 것보다 부족한 걸 크게 보며 늘 채우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나는 만족할 줄을 몰랐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책 속에서 집 앞의 풍경을 매일 기록하는 모습을 보며 '집에서 저런 뷰가 가능하다니', '역시 힙한 동네', '서울에 살고 싶다'며 부러워했다. 우리 동네랑 다르게 사진 찍을 거리가 참 많다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우연히도 작가님은 내가 살던 동네로 이사를 했고 산보일기 계정에는 십 년 가까이 살면서 익숙하게 봐 오던 동네의 풍경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개천을 따라 걸으면서 왜가리를 만날 수 있는 길을 걸으면서, 인스타 속 누군가의 산책코스를 부러워하던 내가 보였다.(사실 남을 부러워하던 것은 산책코스 뿐만은 아니었다) 그 동네에 살면서도 늘 이 동네는 후지다고 생각했던 나는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내가 가진 것을 만족스럽게 보지 못하고, 늘 아쉬워하며 내 손에 없는 것에만 집착하는 나를 알게 되었다. 


북토크에서 작가님이 말했었다. 이 책은 퇴사책이 아니라고(물론 이 책을 읽고 퇴사를 결심한 분들이 많지만). 진짜 필요한 건 내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라고. 

그때는 내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어떻게 알아내야 하며, 어떻게 보내는 것인지 알듯 말듯했었다. 드디어 다 읽고 보니, 두 번 읽고 보니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시간이 있다면 난 뭘 하고 싶은가?’

퇴사를 해도, 시간이 많아져도 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때 춤추고 싶을 만큼 신이 나는지, 나만의 기준을 알지 못한다면 여전히 시간은 부족하겠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시간을 쓸 용기가 없다면 언제나 시간은 부족하겠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소소하지만 귀한 것들을 정확히 알고, 언제든 지금은 즐길 화알짝 열린 마음으로, 나에게 찾아오는 소중한 것들을 받아주는 작가님의 시간과 일상을 엿보면서, '너는 어때?'라고 자주 물었던 것 같다. 덕분에 더 이상 종종거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걸 해주며, 누리며 진짜 주인처럼 사는 힌트를 조금씩 얻었다. 



미래는 닥쳐오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하는 일 같다. 선택의 기로마다 너는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싶으냐고,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 사람이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일. 묻다 보면, 아직 오지 않을 시간을 마중 나가는 마음이 된다. 미래가 올 방향으로 걷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나가 있는 그 자리에 미래는 당도할 것이다. 삶이란 결국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일의 연속일 것이므로. 

- [내일을 향한 화살표] 중에서


'다 읽어버렸네'하는 아쉬움이 몰려올 때쯤

계속 함께 할거라고, 서운해하지 말라는 듯 책이 물었다. 



너는 어떤 미래를 살고 싶니?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렴. 얍! 

하며 응원을 보내는 것만 같다. 



- 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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