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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카피연습 : 수집하고 응용하는 카피 플로우

요약 말고 유혹하는 제목을 쓰기 위하여 vol.2

by 보리 Bori

책으로 이론을 쌓았다면, 이제는 실전

좋은 카피의 특징을 폭식하듯 습득했지만, 정작 기사 제목을 쓰려고 하면 여전히 막막했다. 카피책을 소개했던 지난 1편의 핵심은 남들이 써놓은 카피를 보면서 감탄하는 것만으로는 카피 쓰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에 직접 써보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요약이 특기인 나는 과연 노력하여 ‘유혹하는' 제목을 쓸 수 있게 되었을까? 카피 수집부터 실제 제목을 뽑기까지, 경험으로 터득한 6단계 프로세스를 공개한다.


일단 수집부터

2022년에 시작한 나의 문장집 맨 앞페이지에 새로운 섹션을 만들었다. 제목은 단순하게 "카피집". 좋은 카피를 쓰기 위해서는 좋은 카피를 많이 봐야 한다는 진리에서 출발. 편의상 단계로 구분했지만, 1단계~2단계까지는 순차적이라기보다 병렬식으로 함께 진행한다.


1단계. 카피집 만들기

어디에서?

구독 중인 콘텐츠 플랫폼(북저널리즘, 롱블랙, 폴인 등)

SNS 출판사나 미디어 계정


어떤 카피를?

말 그대로 눈알이 굴러가다가 '어랏?' 하고 시선이 멈추는 제목들

내용에 호기심이 생기는 제목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콘텐츠에서 중제목이나 소제목까지


어떻게?

1. 카피집에 좋아 보이는 제목을 그대로 타이핑한다.

2. 그 아래 'ㄴ' 표시하고 왜 좋았는지 나만의 생각을 적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재택근무는 뉴노멀일까
ㄴ 재택근무는 뉴노멀일 거라는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니 궁금해진다.
스트리밍 세대를 위한 소설
ㄴ 전통적인 방식과 현대적 방식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장르, 새로운 콘텐츠나 접근 방식을 암시한다. 단순히 반대되는 개념을 같은 레벨로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쪽을 ‘세대’로 엮어 정확한 타겟을 언급한 것도 좋은 방법
퇴직과 번아웃 사이
ㄴ 둘의 차이가 뭘지 대안이 있을까 호기심과 기대감. 내적 갈등과 딜레마에 활용하기 좋을 듯
글쓰기의 감각 : 똑똑한 사람이 나쁜 글을 쓰는 이유
ㄴ 똑똑한 사람이라 믿고 싶고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자극
우리는 야생이라는 치료제가 필요하다.
ㄴ"야생"(자연적, 통제되지 않음)과 "치료제"(의학적, 과학적)라는 대비되는 개념이 은유적으로 표현되니 호기심이 생긴다.
디지털 디톡스 리포트 : 스마트폰 안 쓰려 돈을 내는 사람들
ㄴ '사용하지 않기 위해' 돈을 내는 역설적인 상황을 강조해서 호기심이 든다. 요즘의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자극한 것도 포인트.

초반에는 매일 업무 시작 전 한 달간 카피 수집을 계속했다. 그렇게 A4용지 두 장에 약 50~60개의 카피가 쌓일 정도가 되면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긴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일상 속 카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뉴스레터 제목부터 책 제목, 포털 뉴스 기사, 지하철 광고까지. 좋은 카피가 보이면 사진 찍고 캡처해서 카피집에 모은다.


초반이야 제목들이 모인 곳에서 눈에 띄는 카피를 많이 발견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집할 카피가 없어 난감할 날이 오기도 한다. 그때는 별로인 제목을 쓰고 왜 별로인지 이유를 적어보았다. 생각보다 이 방법도 카피를 쓰는데 도움이 된다. 자기 검열이 되기 때문. 카피 쓰기 실전연습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좋은 카피와 별로라고 생각하는 카피의 이유를 써보는 것만으로도 카피 쓰기 실력은 어느 정도 향상된다.



1.5단계. 카피 그룹핑하기

쩜오를 붙인 이유는 뒤에 이어질 '2단계. 따라 써보기'를 하다가 다시 카피집으로 돌아와 이 과정을 진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범주화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누군가는 이 단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카피가 점점 쌓여가면 비슷한 유형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수집한 카피가 많지 않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비슷한 유형이 난삽하게 쌓이게 되면 수집한 카피를 차례로 따라 써보다가 '좀 전에 쓴 거랑 비슷한 카피를 또 썼네?' 하며 당황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가 바로 그룹핑을 해야 할 때.

그럼 어떤 기준으로 묶어야 할까? 따라 쓸 때 비슷한 카피가 써지는 케이스가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카피가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를 기준으로 범주화했다. 예시가 가장 많은 건 이 두 가지였다.

반전 & 의외성
기존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전제를 뒤집는 형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극해 궁금증을 유발. 인식 전환을 유도.
역설과 모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개념을 연결해 호기심을 자극.


그 외에도 아래와 같은 유형이 있다.

사회적 이슈와 문제 지적형 카피 :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나 시대적 특성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독자의 공감

페인포인트 타겟팅 카피 : 특정 타겟의 고민이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언급해 공감대를 형성

해결책을 직접 드러내는 형태, 단 뻔하지 않게!

새로운 관념어 : 공감하는 것을 관념어로 표현하거나 신조어를 활용

메타포 활용, 은유적인 표현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 : ‘사이’ 활용

명사로 끝나는 구조


명확한 위계를 만드려 하기보다는 내가 활용할 때 의미 있을 기준으로 편하게 그룹핑했다. 수집 후 실제 카피를 쓸 때 참고하면서 유용하다고 느낀 것들을 중심으로.



스크린샷 2025-08-08 오전 9.21.42.png 눈길을 사로잡는 카피를 모으로, 좋다고 생각한 이유를 기준으로 그룹핑한 카피집



쓰고 고치는 카피 쓰기 플로우


2단계. 좋은 카피 무작정 따라 써보기

제목을 뽑아야 할 순간, 우선 활용하고 싶은 키워드나 하고 싶은 메시지를 먼저 생각한다. 몇 가지 키워드나 메시지를 발견했다면 이제 든든한 마음으로 카피집을 연다. 그리고 적용하기 적절해 보이는 카피가 보이면 따라 써보는 것. 구조와 표현 방식을 빌려 내가 생각한 키워드를 넣어보거나, 메시지에 맞게 변형해 본다.

딱 알맞은 표현이나 그대로 활용할 수는 없더라도 변형하여 마음에 드는 카피를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집한 카피는 내 생각의 단초가 되어줄 뿐, 이 단계에서 마음에 드는 카피를 찾겠다는 마음보다는 브레인스토밍이라 여기며 다양한 키워드와 표현법으로 펼쳐보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여러 종류를 써놓고 독자에 빙의하여 카피를 바라보면서 카피에서 강조해야 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3단계. What to say 뽑아내기

2단계는 활용하고 싶은 키워드나 메시지에서 출발했다. ‘이 기사에서는 이 키워드, 혹은 이 메시지가 중요한 것 같아.’라는 1차 가설이었던 셈이다. 이제 다양한 카피 꾸러미를 보면서 독자 입장에서 눈길이 가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다 보면 무엇이 흥미로운지 발견하게 된다. 카피 책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what to say’를 독자 입장에서 점검하는 것이다. 절제의 기술이 필요한 카피에서 독자의 눈으로 보면 강조해야 할 메시지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카피 쓰는 연습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난 후, 이제는 무작정 따라 쓰기보다 강조할 키워드를 먼저 여러 가지 뽑아낸다.

이 기사를 기획한 의도가 무엇이었지? (목적, 타겟)

이 기사에서 전하려고 했던 건? (메시지)

이 기사만의 특장점은? (베네핏, 차별점)

이 답에 해당하는 키워드들을 여기저기 펼쳐 놓는다. 그리고 각 키워드에서 연상되는 단어들을 펼쳐 나간다. 그중 마음에 드는 몇 가지 키워드를 체크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58C158B0-E946-4092-9E4E-4C001E5FD423_1_201_a.jpeg 신입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는 컨퍼런스의 타이틀에 고려한 키워드
78E7FFA8-4125-4B1F-9559-57B26C0C562D_1_201_a.jpeg 의뢰인과의 갈등으로 인한 심리 문제를 기사 제목을 고민할 때의 과정


4단계. How to say

활용할 키워드를 얻었다면 이제 메모장에서 타이핑하며 자유롭게 펼쳐본다. 각 키워드별로 카피집에서 그룹핑한 표현법대로 써보는 것. 반전이나 역설적 표현도 써보고, 타겟 독자의 페인포인트를 자극하기도 하고, 해결책을 직접 내세워도 보고, 은유도 해보고…. 1편에서 소개한 책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저자가 언급한 좋은 10-10-10 훈련법을 기억하시는지.

1. 하나의 헤드라인을 10가지 종류로 뽑아보라.

2. 하나의 헤드라인을 10자 이내로 뽑아보라.

3. 하나의 헤드라인을 뽑아보고, 쉽게 뽑았다고 생각될 때까지 10번을 고쳐보라.

그렇게 키워드별로 여러 가지 표현법을 써보면 10개의 카피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다. 10번만 고치게 될까? 마음에 드는 카피 한 줄을 위해 100번은 고치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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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카피를 얻기 위해 다양한 키워드와 표현으로 조합하고 확장하는 과정



5단계. what to say 다시 점검

다양한 표현법으로 또 잔뜩 카피를 쌓았다면, 또다시 독자의 시각으로 돌아갈 차례. 처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키워드에 은유, 반전, 역설 등 다양한 옷을 입은 카피를 보면서 어떤 메시지가 가장 경쟁력 있을지 살펴보는 거다.

6BADA47A-CECF-4865-A165-33F673EE01FD_1_201_a.jpeg 카피를 보면서 이 기사가 '정답'보다는 '다양한 사례'에 포커싱 해야겠다는 걸 깨닫고 방향을 선회했던 과정


그렇게 별로인 카피들을 버리고 top 5 제목을 선정한 후 하루를 묵힌다. 이제 잠시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6단계. 새 눈으로 다시 보기

카피는 반드시 새 눈으로 다시 보는 반복이 중요하다. 마감일까지 매일 4~5단계를 반복하면서 top 5 제목을 수정하고 보완한다. 리프레쉬된 눈으로 다시 보면 분명 아쉽고 별로인 포인트가 도드라져 보인다. 덕분에 시간 여유를 두고 여러 번 이 과정을 반복하면 카피는 무조건 좋아진다. 마감일이 되면 나만의 1~3안을 만든다. 처음엔 이렇게 만든 안에서 바로 채택이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카피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보다 더 짜릿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 카피가 딱이다!'라는 확신을 스스로 느낄 때다. 나의 경우에는 그 느낌이 처음부터 오지는 않았다. 카피 쓰기를 반복하고 여러 번의 마감을 거치면서 조금 익숙해진다 싶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덕분에 이제는 안다. 마감일보다 중요한 건 내 안의 확신의 소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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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최선의 안을 뽑아가며 며칠씩 고민하고 업데이트 하는 과정



예전에는 새로운 기사가 발행될 때면 제목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거다!' 하는 그 감각을 느끼고 싶어 카피 쓰기를 고대할 때도 있다. 물론 일이 몰려 바쁠 때면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최선의 카피를 만나지 못한 채로 마감을 맞아 발행되는 때도 있지만, 그런 아쉬움도 다음을 기약하는 계기가 된다.


"왜 카피가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카피 쓰기에 재능이 없다며 도망가려던 내게 카피야 말로 노력의 영역이라는 선배의 말은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며 도전하게끔 만들었다. 덕분에 골칫거리였던 카피 쓰기는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여전히 부족함투성이인 초보 에디터의 메모장은 분명 부끄러운 글로 박제되겠지만, 그럼에도 낱낱이 오픈하는 이유가 있다. 안 해봐서 그렇지 해보면 다들 잘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엄청 재미있을 거라는 것. 그러니 좋은 카피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부터 카피 쓰기 연습을 해보시기를. 브런치 글도 좋고, 일기장에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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