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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Jan 06. 2022

산책X재난지원금

코로나가 물러나지 않는 한 재난지원금은 언제라도 정치인 손 안에 든 카드가 될 것이다.

하물며 대선을 100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지금은 말해 무엇하랴.


지난 여름 산책길에 만난 어느 아주머니와의 대화



2021.9.


가을이를 산책시키며 소나무 길을 걸어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혹시 재난지원금 신청하면 신청됐다고 문자가 안 오나요?”

“아, 글쎄요. 그건 제가 안 해봐서 잘 모르는데… ”

“저번에는 문자로 온 거 같은데, 이번에는 안 와서. 신청이 잘 안 된건가 싶어서. 노인이 다 돼서 내가 이런걸 잘 몰라요.”

“제가 해보질 않아서 정확하게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구청에 전화해보면 알려줄거 같아요.”

“아가씨(?!)는 신청 안 했어요?”

“아 네. 저는 대상이 아니라…”

의아한 표정의 아주머니.

“아, 근데 이 근처에 ‘밀레’ 매장 있어요?” 

“밀레요? 아, 그건 저 위에 도봉산 올라가는 길에 등산용품 가게 많은데 그 중에 있을 꺼에요.”

“그렇구나. 감사해요. 내가 밀레 신발이 아니면 다른 건 발이 아파서. 이 신발이 다 낡아서 사야하는데 인터넷도 못 하고 해서…”


짧은 대화 이후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런 걸 물어볼 자식이 없거나 있어도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노인이,

혹여 신청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어 산책길에 만난 생판 처음 본 사람한테 물었다. 그 맘… 이 짠했다.

내가 지원금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자 동지의식이 일순 없어지는 듯 묘한 표정을 읽었다. 서울에서 제일 가난한, 혹은 끝에서 두 번째쯤으로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재난지원금 대상이 안 되는 게 의아했던 모양이다.

그 아주머니 한 명이라면 25만 원, 남편이 있다면 50만 원. 적지 않은 돈이다. 그 맘, 나도 안다. 장학금 한 푼에, 실업급여 몇 십만 원에 내가 그런 맘에 시달렸었다.




돈과 투표의 교환 (출처: 게티이미지)

다시 등장한 재난지원금. 모두에게 100만 원씩. 

위의 아주머니와 같은 맘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될 돈이다. 나같은 사람에게도 적지 않은 돈인데, 난 그때나 지금이나 이 돈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월급생활자다. 

나같은 월급생활자는 웬만해선 투표장에 갈테지만 삶이 벼랑 끝 위에 걸린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는 것도 사치일 수 있다. 투표가 사치인 사람들의 삶에 몇백만 원을 더 얹어주는 게 오늘날 복지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대통령 후보들도 잘 알고 있을 터. 그렇지만 돈으로 표를 살 수 있다는 믿음은 4-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판에선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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