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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웅 Dec 29. 2022

어쩔 수 없는 꼴통의 꿈

1장 꿈 이야기

     그를 만난 것은 마흔 살 가을, 출장 때문에 찾은 낯선 도시에서였다. 일주일간 머물 숙소를 정한 뒤 저녁을 해결할 식당을 찾으려고 갔던 곳이 하필 그 길목이었다. 정말 하필이었다. L은 식당이 아닌 한 건물 앞에 서서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LP 시대>라는 큼지막하고 촌스러운 궁서체의 상호와 그 밑에 적힌 <DJ가 있는 음악감상카페>. ‘이건 뭐지? 아직도 이런 데가 있다고?’ DJ가 있는 주점이나 카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7, 8년은 되었는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구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DJ가 있는 음악감상 공간’이 바로 앞 건물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정말이지 그 기분을 명확히 묘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미묘한 감정과는 별개로 L은 카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 궁금했다. 정말 DJ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방송을 하는지 궁금한 것들이 서로 앞다퉈 달려왔다. 그래도 카페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밥 먹는 일이 급해서가 아니었다. L은 갈등하고 있었다. 이미 헤어져서 남의 사람이 된 옛사랑이지만 다시 만나보고 싶은 마음과 헤어짐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미안함 때문에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처럼 L은 갈등했다. 갈등 끝에 L이 선택한 것은 카페가 아닌 식당이었다. L은 식당을 찾아 단호하게 발걸음을 뗐다.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숙소에 돌아왔을 때도, 다음날 일을 하는 중에도 자꾸만 그 카페가 생각났다. 그 생각은 며칠 동안 계속됐고 결국 유혹에는 약하고 호기심은 강한 사람답게 L은 그 카페에 갔다. 출장을 마치고 도시를 빠져나오기 전날 밤,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이 그곳에 가고 말았다. L은 ‘단호한 줄 알았는데 단호박이네’라며 자아비판을 했다. 

     카페를 가는 데는 특별한 목적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가보고 싶을 뿐이었다. 가지 않고 그냥 떠나오면 후회를 할 것 같았다. 그 언젠가의 기억처럼. 그 애가 L을 떠나 딴 남자와 결혼을 하고 몇 년이 흐른 뒤, 지하철을 기다리다 우연히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조금도 과장 없이 격한 반가움에 L은 하마터면 그대로 그녀에게 달려갈 뻔했다. 하지만 발걸음은 떼어지지 않았다.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 앞에 나타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에 대한 차가운 이성이 L의 앞뒤 없는 격정을 붙잡았다. 그가 망설이는 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녀와의 헤어짐이 L 자신의 잘못이라는 자책 때문이었다. 결국, L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그녀를 보내고 말았다. 후회했다. 그저 한 번만이라도 마주하고, 안부라도 묻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더라면 하고 L은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기억이 L을 카페로 가게 했을 것이다. 

     카페는 지하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벽면에 걸린 액자 속 뮤지션, 점점 크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 가슴이 뛰었다.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자 LP 레코드가 있는 음악실과 그 안에 앉아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L은 비현실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감정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감정이 솟구쳤다. 감정의 세기는 염려했던 것보다 강했다. 얼마나 강렬했던지 창가 자리를 향해 가던 L이 발을 헛디뎌 자빠졌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빛의 속도로 일어났지만 늦었다. 직원이라기엔 나이가 많은 남자가 “아이쿠!”하며 달려오는 바람에 창피함은 그대로 L의 몫이 되고 말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카페에 다른 손님이 없었다는 거였다. 

     DJ는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였다. 손님이라고는 L 한 명뿐인데도 남자는 DJ 업무에 충실했다. LP를 꺼내 천으로 닦고 턴테이블에 올린 뒤 카트리지를 옮기는 손길이 능숙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진지했다. 음악과 음악 사이에 하는 멘트는 DJ로서의 경력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L의 감정은 축축해졌다. 처음 이 카페를 봤을 때 정의하기 어려웠던 묘한 감정에서 맨 먼저 정체를 드러낸 것은 반가움이었다. 그리웠던 옛사랑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격한 반가움이었다. 한번 치솟은 감정은 또 다른 감정까지 끌어내서 L의 마음을 결박했다. 뒤이어 느낀 감정은 아픔이었다.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L 혼자만이 느끼는 자책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처음 카페에 들어가려던 것을 주저하고 갈등했던 이유였다. 

     카페는 음악 소리를 빼면 고요했다. 음악실에서 조용히 본연의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DJ, L에게 맥주와 안주를 가져다준 후에 카운터에 앉아있는 60대 중반의 남자, 그리고 창가 자리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는 L. 문득 생각해보니 삼각 구도에 있는 남자 셋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쓸쓸하게도 느껴졌다. 술의 힘 때문이었을까. L은 쓸쓸한 구도를 깨뜨리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애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DJ를 만나보고 싶었던 거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대로 떠나면 후회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대화를 요청했다. DJ는 얼마 지나지 않아 L 앞에 앉았다.

     스무 살에 DJ를 시작한 이후 쉰넷이 될 때까지 그 세계를 떠나지 않은 채 34년 동안 오로지 DJ로 살아온 남자. 음악다방과 DJ의 화려했던 날이 기울어 가고 모두가 떠나버린 쓸쓸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그는 여전히 남아 있었던 거다. 

     ‘이 양반도 보통 꼴통이 아니구나.’ 

     방송할 곳조차 찾아보기 힘든 그 바닥에 남아 여전히 정통 DJ로서의 기개와 위엄을 지닌 채 고고한 자태로 음악방송을 하는 사람. 유년의 L이 마을 공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외로움을 자처한 또 한 명의 꼴통이 분명했다. 

     꼴통 새끼. 열한 살 누나는 여섯 살 L을 그렇게 불렀다. 그 시절, L은 동네 공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자주 놀았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쯤이면 이 집 저 집에서 자식들 부르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 부름에 함께 놀던 동무들은 하나둘씩 제집으로 돌아갔다. 행상 나간 어머니가 늦게 오는 날이면 L은 혼자 남겨졌다. 아이들과 놀던 왁자지껄도, 게임에서 이겨야 하는 억척스러운 열망도, 미션을 성공한 기쁨의 함성도 사라진 휑뎅그렁한 공터에서 L은 혼자 놀며 어머니의 부름을 기다렸다. 다섯 살 위 누나가 데리러 와도 L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서운 아버지가 데려오라고 하셨다는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L을 귀가시킬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집에 도착한 어머니는 서낭당 고개 나무 옆에서 L을 불렀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부를 때만큼의 낭랑한 목소리는 스물여섯 가구의 마을에 퍼졌고 그제야 L은 놀던 손길을 멈췄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나무 숲 옆길을 지나야 했다. 시집오자마자 급사한 새색시가 각시귀신이 돼서 밤마다 소복을 입고 바느질한다는 길이었다. 누나가 데리러 왔을 때 같이 가면 그 공포를 체험하지 않아도 될 일이건만 L은 꼴통처럼 고집을 부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람들은 고집 센 L에게 ‘꼴통 새끼’ 또는 ‘꼴통 자식’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외롭긴요. 음악이 있잖아요.”

     외롭지 않았냐는 L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몸담은 카페가 폐업하면 최후의 DJ 족은 또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렇게 전국을 떠돌았다. 이 카페도 손님이 없어 곧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다른 곳 알아봐야죠. 방송할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그쯤 했으면 됐다고, 이제는 현실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테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가 DJ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맬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렸다. L도 DJ였지만 그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자신의 세월과 대조되어 아팠다. 

     숙소로 돌아온 L은 지나온 세월의 기억과 좀 전에 만나고 온 DJ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떠올랐다. 눈보라 속에서 L을 향해 “넌 DJ를 하면 잘할 거야”라고 소리치던 열일곱의 단발머리 소녀였다. 그해 겨울, 그 애로부터 시작된 음악 전달자로서의 청춘 시절이 필름 속 영화 장면들처럼 스쳐 지나갔다. 카페에서 넘어질 때 부딪힌 무릎이 그제야 아팠다.

      그때부터였다. 음악감상카페를 차리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음악 전달자로서의 숙명을 거부하지 못한 채 방송할 곳을 찾아 헤매는 최후의 종족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는 공간을 차리는 꿈이었다. 쇠망해가는 마지막 모히칸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각오하는 다니엘 데이루이스처럼은 아닐지라도 마지막 DJ들에게 상징적으로나마 위로가 되는, DJ가 있는 음악카페를 차리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L이 아내에게 카페 차리는 꿈에 관해 말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그 꿈을 빨리 깨기 바라”였다. 

     처음 그 꿈을 꾼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L의 인생에서 당연히 거쳐 가야 할 길목처럼 됐다. L은 그것을 일종의 사명처럼 여겼다. 꼴통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사람이 어찌 모두 희열에 찬 꿈만 꾸겠나. 때로는, 그 누구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생생한 상상이나 달콤한 욕망은 없지만, 꼭 이뤄야 하는 사명과도 같은 꿈을 꾸기도 하는 것이지. 물론 그 꿈을 이루려면 버겁고 고단하겠지. 그래도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도 찾고 가치도 느낄 수 있지 않겠어?” 

     “아니, 난 못 느껴.”

     입 밖으로 꺼내봤자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안 L은 꿈을 은밀하게 키워가기로 마음먹었다. 마흔 살의 가을, 어느 낯선 도시에서 L은 그렇게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생이 다하기 전에 이뤄야 할 의무와도 같은, 결코 피해 갈 수 없을 숙명과도 같은, 어쩔 수 없는 꼴통의 꿈이었다. 그 꿈을 생각하면서 ‘Yanni(야니)’의 <One Man's Dream>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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