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겨울 트래킹 3일 차
심상치 않은 하루의 복선이라도 알려 주는 듯 아침부터 날씨가 좋지 않다. 밤 사이 눈이 내렸고, 도로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얼음으로 덮여 있던 도로 위에 새 눈이 레이어를 한 겹 더 깔아주니 미끄러지기 안성맞춤이다. 그래도 새벽에 제설 작업을 해 놓아서 차량이 다니는 도로에서는 긴장하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어제 오후 온천에서 오랫동안 마사지를 한 덕분인가 왼쪽 무릎 뒤쪽 인대의 통증이 사라졌고, 걷는데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은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걸을 때 무릎을 쭉 펴지 않았기 때문에 통증이 발생한 것 같아, 오늘은 걷는 자세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무릎을 쭉쭉 피며 걸었다.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오르막이 나온다. 아참! 오늘은 산을 넘어야 되었다. 그 넘어야 될 산이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다.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면서 한숨을 돌리기 위해 뒤를 돌아보니 배경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추위 속 감상도 잠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에 예상했던 불길한 추측은 점점 확신으로 다가왔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더니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험해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오늘은 지나가는 차량들이 나를 보고 서면서 픽업을 해주겠다고, 날씨가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말들을 남기고 지나갔다. 반면 반대편에서 지나가는 차량들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클락션을 울리며 응원을 해 주었다. 날씨가 안 좋긴 했나 보다.
날씨가 많이 안 좋아질 거라고 예상한 탓인지 생각보다 엄청 험한 날씨는 아니고, 충분히 견딜만한 날씨에서 산을 넘고 나니 12km 정도 남았다. 어제저녁에 오늘 코스를 조사하면서 체크해 놓은 레스토랑은 5km 정도 된다. 그곳에서 점심 겸 휴식을 가지기로 계획했다. 레스토랑을 향해 힘차게 걷고 있을 무렵 불길한 느낌의 구름이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게 보인다. 여름이면 뮌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국지성 소나기를 부르는 꺼먼 구름이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싸라기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레스토랑까지 1km 남았다. 딱 거기까지만 걷고 눈이 그칠 때까지 휴식을 취하자’. 폭풍 전야를 알리는 한 번의 고요가 찾아오고 그 뒤를 이어 작은 눈 발들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눈보라가 시작되었다. 때 마침 내가 미리 알아 둔 레스토랑 근처의 마을에 도착했다.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보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오른쪽 발목이 아프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큰 쓰레기 통 옆으로 몸을 피했다. 바람과 눈을 막아 주니 걷는 것보다 낫긴 한데 가만히 오래 머무르면 온도가 계속 떨어질 것 같아 오래 머무르지 못할 것 같았다. 일단 눈보라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 한참을 기다리니 눈보라가 잦아들었다. 난 다시 몸을 끄집어내어 다시 수북이 눈이 쌓인 도로 위에 올라섰다. 그 잠깐 사이에 아이슬란드 아니랄까 봐 눈은 제법 쌓였다. 이대로 눈이 그친다면 7km 한 시간 반 정도만 걸으면 대장정이 끝난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오른쪽 발목의 통증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차량 한 대가 내 옆에 스더니 픽업해주겠다고 했다. 산을 넘을 땐 정중히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사양하지 않고 차량에 올라타 남을 7km로의 여정을 끝냈다.
- 아이슬란드 겨울, 골든 서클 코스 트래킹 여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