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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 Apr 09. 2022

일상에 균열이 생길 때 대처하는 법

틀어져도 괜찮아, 어긋나도 그럴 수 있어

 정답을 얻었을 때 박사가 느끼는 것은 환희나 해방이 아니라 조용함이었던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하게 자리하여, 덜고 더할 여지없이 오랜 옛날부터 거기에 한결같이 그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있으리란 확신에 찬 상태. 박사는 그런 상태를 사랑했다.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


  세상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지내보고 싶었지만 도통 나와 맞지 않아 속앓이 하게 만들었던 직장상사도, 오늘 통화는 상냥하게 하고 끊어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날카로운 말들로 부모님의 마음을 후벼 팠을 때도, 추억에 파묻혀 그리워했지만 다시 만났더니 추억 속의  모습이 아니었던 나와 친구의 관계도, 영원할  알았지만 결국 끝나버렸던  사랑도…


 그래서인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만큼은 루틴과 원칙을 지키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내 일상을 있어야 할 장소에 붙잡아둬야 박사가 느낀 조용함처럼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예를 들어 퇴근하고 운동하기, 생활비 한 달에 40만 원 내로 쓰기, 한 달에 책 두 권 읽기처럼 내가 노력하면 지켜낼 수 있는 것들 말이다.    

 

 해양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후 내 일상의 규칙을 깨는 무언가를 만나면 난 극도로 예민해진다. 퇴근을 앞두고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사건 출동지령, 입항 후 할 일들에 대한 계획을 잔뜩 세워뒀지만 대형사고 발생으로 연기되어버린 입항 그리고 무산되어버린 내 계획들, 사고처리 후 무사히 돌아올 줄 알았지만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동료들처럼 말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들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와 내 일상을 지진처럼 흔들어 놓았다. 그 균열은 일상의 루틴과 규칙을 지키기 위한 내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마음속 평화는 깨지고, 태풍이 날 휩쓸고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평화로운 일상의 깨뜨리는 손님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금요일 아침, 이미 마음속은 주말을 한껏 즐기고 있었고, 시시때때로 시계를 보며 퇴근시간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이번 주말엔 친구들을 새 보금자리에 초대해 집들이를 하고,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겠다는 계획을 세워 두었는데,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 부모님이 오늘 밤 내가 사는 곳으로 오겠다는 게 아닌가? -주말을 내 집에서 보내고 가겠다는 연락이었다.- 2주 전 난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그 이사를 부모님께서 도와주기로 했지만, 코로나 확진으로 딸의 새 보금자리를 보지 못하셔서 그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내 계획을 망가뜨린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연락에 잠시 마음에 파장이 일었지만 잠시 후 자식 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침착하게 긍정의 답을 했다.     



 금요일 밤에 있었던 약속은 마음에 조금 걸리긴 했지만 토요일 집들이 약속을 정리하고, 부모님을 초대했다. 분명 저녁 11시쯤 도착한다던 부모님은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금요일 밤 차가웠던 공기는 물러나고 봄내음이 한껏 뒤섞인 바람이 그와 나를 감쌌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를 그가 내 옆에 나란히 서 발을 맞추고 있었다. 썸씽을 만들 그 말이다.

 그때였다.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이 갑자기 ‘집 비밀번호를 모르겠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방법을 모르겠다’라며 연달아 전화해 날 계속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누른 채, 나는 그날의 판타지를 끝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갔을 땐 아침에 출근 준비로 정신없이 어지럽혀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깔끔하게 엄마의 방식대로 정돈된 모습이 펼쳐졌다. 항상 고향 집에서도 엄마와의 다툼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넌 왜 이렇게 정리 정돈을 못 하니, 너만 왔다 가면 집이 어지러워!’라며 엄마 식대로 내 물건을 정리했고, 난 ‘지저분해 보이지만 이 물건은 여기 있어야 한다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고! 건들지 마!’라며 항상 부딪혔다.

 이미 여러 통의 전화에다 또 엄마 식대로 정리된 내 집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일을 마치고 4시간 거리를 운전해와 또 무릎을 꿇고 방을 닦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측은해져 화를 누그러뜨리고 부모님을 반겼다.      

 그렇게 2박 3일간 부모님을 모시고 강화도와 파주를 구경시켜드렸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며 자식 된 도리를 다했다. 다음번엔 고향에 내려오라며 다음을 기약하고 좋은 모습으로 부모님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혼자 적막한 집에 다시 돌아왔다. 주말에 쌓인 피로를 풀어야 했는데, 더욱 쌓여버린 피로에 얼른 차에 주유만 하고 돌아와 쉴 생각이었다. 그렇게 차 키를 찾았다. 그런데 차 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내 출근 가방 안에도 없고, 매일 두는 화장대 위에도 없다. 혹시 몰라 화장대 서랍, TV장 서랍 그리고 다른 가방을 모두 뒤져보았지만 아무 데도 없다. -주말 내내 아빠 차를 타고 다녀서 금요일 저녁 이후 내 차 키를 꺼낸 적이 없었다.-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고 내 마음속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폭발해버렸다.   

  

 지금 막 고속도로에 올라탄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돌아와서 차 키 찾아내!!!!!! 어디다 치운 거야 또!!!”하며 악을 질렀다. 부모님은 갑작스러운 나의 절규에 놀라 고속도로 가에 차를 세웠고,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차를 돌려서 다시 가야 하나 안절부절못하셨다. “메리야, 난 청소하다 너의 차 키를 본 적이 없어. 다시 한번 잘 찾아봐.”      


 씩씩대며 다시 집안을 샅샅이 뒤졌고, 지쳐서 침대에 털썩 앉았다. 침대에 앉았더니 내 엉덩이 아래 느껴지는 불룩한 무언가, 손을 넣어 만져보니 내가 찾던 차 키였다. 손에 차키를 쥐고 나니 갑자기 집에 내려가는 부모님께 전화로 악을 질렀던 것이 미안했고, 그렇게까지 예민해져 화낼 일이었나 싶어 민망해졌다.     



 시간에 쫓겨 살던 내가, 커피와 음악에 취하는 일상조차 편안하게 즐기지 못했던 내가, 이제야 제대로 삶을 누리려고 하는데, 차키 하나 가지고도 이렇게 흔들리다니...     


 뜻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극도로 예민해지는 내 마음의 파장을 잠재우기 위해 다시 주문을 외운다. ‘틀어져도 괜찮아, 어긋나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내가 수없이 외우는 주문이 운동으로 규칙으로 독서로 글쓰기로 단련이 될 때까지 아마 다시 균열이 생기고 틈이 생기고 허물어질 수도 있다. 그래, 그때는 다시 주문을 외우고 다시 나를 독려해야겠지.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초연해질 때면 진짜 어른이 되어있겠지.

그렇겠지 메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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