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술 한잔 하자' 그 당시의 몸 상태가 술을 마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미안, 오늘은 좀 그래, 다음에 한잔 하자'라며 자연스럽게 응대한다. 그런데, 그 친구의 의도가 과연 술이었을까? '보고싶다 친구야. 내가 지금 많이 외로와!'라는 뜻이었음에도 그저 '술'이라는 말만 들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앞서 표면만 보고 대응한다. 그것도 상대의 요구를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 보고, 즉각 이기적으로 대응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진화해 왔다. 생존기계인 인간은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타심도 결국은 '현명한 이기심'이다. 이타심의 발로는 바로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명한 이기심'인 '이타심'을 좀 더 세밀하게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관계의 동물인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유지가 자신의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기심으로 시작되는 이타심일지라도 자신 또한 그 대상이 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의 이기심을 위해 이타심을 발휘하듯, 나를 위해 상대의 입장에 이입하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술 한잔 하자'는 친구의 요청을 자신의 입장으로 재해석 해보자. 자신 또한 '보고싶다. 지금 나는 관계를 통한 위로가 필요해'라는 의도를 가지고, 타인에게 '술 한잔 하자'는 요청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다면, 함께 마시는 술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마음을 원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술 한잔 하자'고 외치는 친구는 분명 외롭다고 모두에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친구 술 너무 좋아해'라며 술 선물을 보내는 것은 그 친구의 의도인 함께 마음을 나누고픈 외로운 요구를 무시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술 선물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의 곁에 함께 해 주기를... 가능하다면 술을 들고 찾아가기를... 그것도 힘든 상황이면 마음의 위안을 주는 전화 통화라도 선물하기를...
오늘은 정말 누군가와 '술 한잔 하고 싶다'.
원석연
산업경영공학박사.25년간의 정보통신 관련기업 경영과 10년간의 대학강단에서 만난 경험을 토대로, '디지털 기술 트렌드와 아날로그 인문학의 융합'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강연으로 그동안 쌓은 경험과 통찰을 공유하면서 세컨드 라이프를 시작합니다. 저서 <이미 일어난 스마트 시대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