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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Dec 08. 2019

[책소개]: 「버블(バブル)」③

  태동 - 일본시스템의 종언의 서막

「버블(バブル)」이라는 책은 2017년에 샀다. 일본이 정상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한 원점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인 듯 하다. 책을 사놓은 채 그냥 책꽂이에 꽂아만 두다가 얼마 전 본격적으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버블(バブル), 永野健二

일본은 전후 기적의 부흥을 했고 1960년대는 고도경제성장을 실현했다. 그러나 `70년대 초, 일본을 둘러싼 상황은 급변한다. 그 동안 누렸던 엔저와 값싼 석유가 변동환율제와 제1차 오일쇼크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규제를 통해 고도성장을 이끌어 왔던 정치-관료-산업계의 ‘철의 트라이앵글’ 시스템에 대립하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 대립은 ‘국내형기업 vs. 글로벌형기업’, ‘간접금융(은행) vs. 직접금융(증권)’, ‘기존세력 vs. 신흥세력’이었으며 마치 일본 안에 “두개의 일본”이 존재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 둘 사이의 균열은 점점 커져 갔고 전후 일본시스템의 종언의 서막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저자 永野健二(Nagano Kenji)는 ‘삼광기선(三光汽船)의 재팬라인(JAPAN LINE) 인수사건’을 든다. 


우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흥업은행(日本興業銀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흥업은행은 1902년 제국주의 시대 일본 중화학산업 진흥목적으로 일본흥업은행법에 의해 탄생한 국책은행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은행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물론 전범은행으로 분류되었다가 패전 후 일본장기신용은행법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 이후 흥업은행은 일본개발은행 설립(`51년), 해운집약(`64년), 야마이치증권의 일본은행 특별융자(`65년) 등으로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러한 흥업은행의 신통력은 `70년대 이후 새로운 난관을 맞이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71년 표면화된 해운회사 삼광기선에 의한 재팬라인 주식 매집 사건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 일본 해운업계에 있어서의 흥업은행의 위상을 한번 보자. 당시 해운업계는 `64년 일본 운수성이 6개의 해운회사를 선정하여 해운집약(海運集約)을 체결한다. 이들 회사는 일본우선(日本郵船), 오사카상선미츠이선박, 재팬라인, 가와사키기선, 야마시타신일본기선, 쇼와해운이며 이들이 선박량의 90%를 차지하게 된다. 아울러 집약체제에 참가한 기업에 한해서만 선박의 할당이나 일본개발은행 융자의 이자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궁극적인 카르텔 형태의 산업정책을 폈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를 기획한 것이 바로 ‘흥업은행’이었다.


일본흥업은행


그런데 10년이 채 되지도 않아 이러한 해운집약체제에 도전장을 낸 것이 바로 듣보잡 삼광기선이다. 당시 일본선적의 배는 일본인 선원을 태워야 하는 것이 전일본해운조합과의 교섭에서 의무였다. 따라서 비용이 낮은 외국인 선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운항하는 선박이 외국선적일 필요가 있었다. 이 때 일본선적이 아닌 외국선적의 선박을 만들어 외국인선원 중심의 운항체제를 발 빠르게 추진했던 것이 삼광기선이었다. 당연히 이를 통해 삼광기선은 대량의 선박발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약체제에 들어있지 않던 삼광기선은 선박의 대량발주에 따른 거래관계를 무기로 조선회사에게 삼광기선의 주식을 인수하도록 시켜서 은행에 의존하지 않고도 거액의 자금조달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야 말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삼광기선은 상당한 자금력으로 `70년 9월 이후 조용히 시장에서 재팬라인의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급기야 `72년 9월말 삼광기선은 재팬라인 주식 1억4,600만주, 발행주식수의 41%를 매집하면서 명실공히 재팬라인을 인수한 것이다. 


삼광기선의 성공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해운집약체제라고 하는 일본국내의 질서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카르텔이, 빠르게 대두되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시대착오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 사례다.” 



그러나 집약체제를 만든 해운관료나 흥업은행이 이를 묵고할 리가 없었다. 집약체제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은 한 마리의 늑대 같은 해운회사가 운수성과 흥업은행이 함께 만든 카르텔체제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니 말이다. 그것도 당시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었던 간접금융(은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아니라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집약체제 해운회사인 재팬라인의 경영권 취득을 선언했으니 말이다. 이는 일본 전후 최대의 파장을 일으킨 적대적 M&A였던 셈이다.


급기야 흥업은행은 물밑 작업에 들어간다. 일본 사회 막후에서 힘을 쓰고 있던 児玉誉士夫(Kodamayo Sio)란 자를 대리인으로 선택한다. 그는 전쟁 전 첩보기관에서 활약했고, 전후에는 보수세력의 재편에 힘썼으며 일본 야쿠자 야마구치파와도 직접적인 라인을 가진 일본 우익의 거두였다. 이런 걸 보면 현재 일본의 보수, 우익이 어떤 계보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있다.


`73년 4월 24일, 대리인 児玉誉士夫(Kodamayo Sio) 등은 삼광기선 사장, 재팬라인 사장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화해조정서’에 서명을 받아낸다. 해운업계의 장래에 있어 많은 테마를 함유한 삼광기선의 재팬라인 M&A가 지하사회를 개입시킨 일본스러운 인수합병 건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화해조정서의 내용은 ①삼광기선이 보유한 재팬라인의 주식 1억4,500만주 중 1,000만주만을 남기고 모두 재팬라인에 재매각할 것, ②매각가격은 1주당 380엔, ③향후 양사는 업무제휴를 추진할 것 등이었다. 물론, 여기서 어느 누구도 향후 업무제휴를 추진할 것이란 조항이 실제로 이행되리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로써 삼광기선의 야심 찬 재팬라인 M&A는 흥업은행의 의지대로 일단락이 났다. 성사 후 대리인 児玉誉士夫(Kodamayo Sio)은 비공식적으로 현금 1억100만엔, 유명작가 그림, 순금 등의 사례를 받아 챙긴다. 


삼광기선은 비록 야심 차게 진행한 M&A는 실패했지만 대략 150억엔의 매각이익을 얻게 된다. 당시 흥업은행의 관계자에 따르면 1주당 380엔이라는 가격은 “재팬라인의 실질적 가격을 넘어선 정치적인 가격”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재팬라인이 떠맡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원래 시장에서 형성되어 성숙해진 가격으로 결정해야 하는 인수가격을 문제해결을 위해 성급하게 결정한 것이 그 이후 재팬라인의 경영을 옥죄고 한층 더 나아가 흥업은행의 경영판단까지 옥죄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재팬라인이 아부다비 원유개발에 뛰어들 계획이라거나, ‘일본의 메이저’를 지향하고 있다는 등 사기와도 같은 정보가 내부관계자로부터 의도적으로 흘러나온 것 역시 정략적으로 높게 책정되었던 주가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내부자정보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없던 시대였다.


재팬라인은 사건 해결 이후 ‘일본흥업은행 해운부’라고 불려질 정도로 명실공히 흥업은행의 지배체제로 넘어간다. 흥업은행 상무급이 사장으로 파견되는 등 은행쪽 인력이 대거 투입된다.


아울러 흥업은행은 재팬라인에 대해 2,000억엔을 훨씬 넘어서는 자금을 투입한다. 하지만 결국 손실만을 남기고, 재팬라인은 `89년 버블이 한창일 때 야마시타신일본기선이라는 해운집약체제에 속한 회사에 흡수 합병된다. 


저자는 말한다.

“재팬라인 문제는 흥업은행의 ‘종언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책임을 진 경영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흥업은행과 지하사회의 연결고리는 결국 `80년대의 버블 당시 유명했던 ‘尾上縫(Onouenui)사건’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 흥업은행의 명줄을 끊어버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왜 우리와 이렇게 여러모로 비슷한가?


내가 읽은 이 책 버블의 「태동」 챕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흥업은행이 삼광기선의 M&A를 문제시했던 것부터가 문제였지만, 흥업은행이 이를 해결하는 방식, 그리고 이에 따른 재팬라인의 몰락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양상 등 일련의 과정을 읽으며 왜 일본이 버블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으로까지 만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자본주의체제 하에서는 버블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어떠한 위기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일본의 일이다. 어쩌면 우리와 상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더 찜찜하게 만든 것은 왜 이렇게 여러모로 우리와 비슷한가 였다. ⓒ김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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