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글쓰기
가끔은 할아버지가 나온다. 어린이집 가방을 매고 있는 나를 데리러 온다. 한 손엔 메로나를 들고긴 다리를 휘적휘적 저으면서 내 가방을 둘러메고 집으로 향한다. 언니와 나 할머니 할아버지 한 방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다. 아파트 단지 안 조그만한 놀이터에서 할아버지가 밀어주는 그네를 탄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젊던 그 시절에는 저녁을 함께 만들고 함께 먹고 함께 치운다. 밤이 늦으면 내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이 되면 다시 할머니 집으로, 그리고 매일 똑같이 몸 만한 가방을 메고 유치원으로 간다. 그냥 그게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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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위로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더위의 어느 날 우리는 반가운 얼굴들과 동네 좁은 골목에서 시덥지 않은 농담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죽인다. 앳된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운명들인 것처럼 유치한 단어들로 미래를 계획해보기도 한다. 나이와 걸맞게 어떤 게임 이야기와 학교 이야기로 가득했던 이야기의 끝엔 이유 모를 정적이 남는다. 우린 그냥 그 골목에서 그러한 시간을 보내며 자란다. 늙어 가는 얼굴들과 함께 날은 급격히 어두워지고 해는 저물고 소나기가 내릴 때 우리는 비를 피해 같이 뛰어간다. 더 멀고 빠르게 뛰어갈수록 신발은 사라지고 맨발이 되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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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들어본 적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가방엔 생활 짐보다 더 많은 책을 품고 한 발이라도 더 멀어지려고 간다. 가방은 무겁지만 어깨는 아프지 않고 소통은 안되지만 답답함이 없다. 날씨는 좋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길은 깨끗하고, 지도 없이도 자꾸만 앞으로 가지만 원하는 곳에 다다른다. 그런 곳은 없겠지. 문득 드는 생각에 억지로 다른 관심사를 찾는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자꾸 속인다. 다 알면서 절대 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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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가는 앵두의 뒷모습도 있다. 자꾸 멀리 가서 더 부를 수 없게 간다.
꿈은 우리 무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는 수단이라고 한다. 최근 여러 범죄들 사이에서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용의자를 대상으로 최면을 하는 경우가 몇차례 뉴스를 타고 보도되곤 했다. 수면. 최면. 모든 잠자는 것이다. 자면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잠을 잘 못 잔다. 피곤해서 몸도 마음도 아무 생각이 안나는 날이 오지 않는 이상 아무리 피곤해도, 몸은 잠들어도 정신은 깨어있는 그런 가위눌림이 부쩍 심하다. 달콤한 잠을 잔다는게 이젠 옛말 같이 느껴지는 그런 날에는 예전에 꾸었던 꿈들을 자꾸 되짚어 본다. 내 무의식에는 어떤 생각이 남아 있을까. 어떤게 내가 생각하던 행복이었을까.
내 꿈에는 가끔 할아버지가 나왔다. 친구도, 나도, 가족도, 앵두도 가끔씩 나왔다.
더위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꿈은 항상 덥다.
더운 것인지 따뜻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꿈이라서 더 덥고, 더 따뜻하다.
[2021-07-08 목요일의 글쓰기] '자주 꾸는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