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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Dec 19. 2020

이상한 시절의 하루

오늘은 모처럼 나갈일이 생겼다. 


온라인러닝 중인 아이들 학교에서 한달에 한번씩 학습교재를 나누어주는 날이다. 학교 정문앞에 줄 지어 있는 행렬 끝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 이름과 학년/ 반을 포스트잇에 써서 창문에 붙여둔다. 직원이 가까이 와서 이름을 확인하고는 아이들 물건을 찾아와서 열어둔 차 트렁크에 물건을 넣어준다. 


동네 도서관에 책도 반납해야한다. 도서관마다 차량용 드라이브쓰루 반납대가 있어서, 차를 반납대 가까이 붙여서 대고 창문을 열어 책을 반납한다. 


은행일도 한꺼번에 보기로 한다. 은행도 드라이브쓰루를 이용한다. 드라이브쓰루 레인이 3-4개정도 되는데, 그중의 하나는 ATM을 사용하는 레인이고, 나머지는 텔러와 직접 업무를 볼수 있다. 모니터로 텔러 얼굴을 보며 진행하고 싶은 업무를 말하고, 카드나 수표, 현금을 건네고 받을수 있다. 요즘에야 핸드폰 앱으로 해결할수 있는 일이 많고 현금을 쓸 일도 없지만, 현금을 찾을때에는 그래도 은행을 찾게된다. 


다음은 동네 마트. 온라인으로 물건을 고르고 결제를 이미 마쳤고, 배송을 받을 것인지 매장안에 들어가 픽업할것인지 차에서 기다릴것인지 결정했다. 오늘 나갈일이 있기도 하고 빨리 필요한 물건들이 있기도 해서 차에서 픽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Drive Up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마트앱으로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알려줄때 내 차종과 색깔을 함께 보낸다. 그러면 직원이 물건을 들고 나와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구매내역이 있는 앱을 스캔하고나서 역시 열어둔 트렁크에 물건을 넣어준다. 


부쳐야할 카드와 소포도 있었다. 우표를 미리 집에서 붙여오거나 소포의 경우 무게를 계산해서 우편료를 미리 온라인으로 지불하고 나면 우체국에 있는 무인 수거함에 넣으면 된다. 


이렇게 다섯군데의 볼일을 보고, 아니 중간에 드라이브쓰루 커피숍에 들러 커피도 한잔 사서 마셨으니 모두 여섯군데에서 일을 보고 돌아왔지만, 차에서 한발자국도 내리지 않았다. 오늘부터 날씨가 쌀쌀하다고 했는데 밖이 추운지 그렇지 않은지도 잘 모르겠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물건을 전해주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서로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눈 만으로는 서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알수가 없었다. 


겨울이 긴 이 동네에서는 차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은행업무를 보는일이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들어가지 않고 장을 보는 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했었다. 물론 배달을 시키면 되지만 한국의 빠른 배송이나 무료배송에 길들여져 있다면 아무리 배달시스템이 개선되고 있다고 해도 답답하기 때문이다. 애 하나를 아기 바구니 카시트에 넣어 들고 다른 하나를 걸려서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물건을 들고 나와서 차에 싣고 집에 돌아오면 기운이 다 빠지곤 했었다. 그렇게 바랬던 일들이 예상치못한 바이러스시대에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바이러스 확산세가 전날대비 150%씩 증가하고 어제 하루동안 내가 사는 주에 확진자가 7천여명 사망자가 70명이 나왔다. 3월이후 다시 주지사가 “Stay Home” 행정명령을 내렸다. 주 전체 병원의 병상은 80%이상 찼고, 집중치료실도 자리가 없다고 한다. 아직은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지만 마트에서 주문할때 필수생활용품들이 매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익숙해질때도 되었고 집에서 생활하는게 안정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계산도 안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뉴스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고도 은행, 도서관, 학교, 마트 등 볼일을 해결할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이런 세상에서도 여전히 먹고 읽고 공부하고 편지를 부치고 살수 있다는데 안도감을 갖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많은 것이 그립다. 


어디가서 사람들들과 많이 얘기하는 편이 아닌데도, 마트에서 물건을 계산하면서 이 동네 사람들이 그저 건네는 날씨에 대한 인사라도 “너무 추워”라며 어깨를 움츠리는 모습을 하면서 엄살을 부리고 싶었다. 모호하게 눈만 내놓고 누군지 확인만 하는게 아니라 입도 함께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 또 읽었던 책을 돌려주는 일을 하고 싶고, 가끔은 집 말고 커피숍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기도 하다. 


해마나 서너개의 크리스마스 트리 오나먼트를 사는데, 애들과 함께 가게에 가서 이걸 살까 저걸살까 머리를 맞대로 고민하고 또 마음을 바꾸는 일이 즐거웠지만 올해는 그냥 이런 과정은 생략하고 온라인주문으로 대신했다. 상점의 벽 하나 가득히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면서 이것저것 다 사고 싶다고 조르던 아이들에게 매번 마음이 약해졌었다. 장보기 싫다고 투덜댔지만, 마트에 가서 진열대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메뉴 말고 갑자기 다른 메뉴를 위한 식재료를 사는일 같은건 당분간은 없을것 같다. 


모두들 답답하겠지만, 다들 견뎌내고 있겠지만, 불평하거나 투덜거릴게 아니라 잘 지나가야 할 시간들이지만, 오늘하루는 안심이 되기도 하고 웬지 모르게 섭섭하기도 했다. 




커버이미지: Tim Boyle/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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