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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음 Dec 19. 2020

상실

때로는 편지 같은 걸 써볼까 생각도 하곤 했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그 위로 드리운 담벼락의 그림자 사이로 숨어 있는 고양이를 볼 때면, 혹은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솟아오른 민들레 새싹을 볼 때면 그저 밝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선물하고 싶어서. 가끔은 상실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중압감이나 힘 같은 것들이 그 본래의 것보다도 더 크고 무겁게만 느껴졌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가도, 막상 그것이 다가오는 그림자만 보아도 그저 두려울 때가 있어. 얼마나 거대할지 혹은 무거울지, 나를 잡아당겨 늘어뜨릴지 혹은 짓누르고 이겨버릴지. 그런 두려움들은 이미 다가오지도 않은 그림자 저편에서 응어리져 울부짖고 있어. 하지만 여전히 고양이의 하품을 볼 때면 우리의 삶 전부를 상실이 가득 채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뛰놀다 넘어져 울음을 터뜨리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 뛰어가는 아파트 놀이터의 아이들을 볼 때나 우연히 펼친 시집에서 발견한 짧은 몇 문장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오를 때는 상실이라는 것이 그저 머나먼 이야기로만,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내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이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너무나 가까이서 발견되기도 해. 어느 순간 나는 고양이 위로 윙윙거리는 날벌레의 날갯짓에 눈살을 찌푸리고 또 원인모를 심술로 민들레를 밟아버리기도 해. 몇 분 째 그치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귀를 막으며 시집을 덮어버리고는 또다시 내 힘으로는 차마 감싸 안을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게 돼. 그러나 그것은 결코 고양이의 귀여움에 무감각해서, 문장의 따뜻함에 무지해서가 아니야. 그저 그 아름다움과 나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벽과도 같은 상실에 가로막혀 온전한 빛을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제 그 벽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전에는 내가 무엇에 둘러싸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저 웅크려 소리치기만 했었으니까. 여전히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벽을 마주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조금은 힘이 나는 것만 같아. 네가 말했던 것처럼 상실보다 내가 더 커질 테니까. 언젠간 나도 다시 소파 위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웃을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이젠 그 날이 그리 머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까지 잘 이겨내 볼게-


내게 준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이 편지를, 몇 시간 뒤면 너는 다시 네 손에 쥐고 입관하게 된다. 조용히 감은 눈과 살포시 포갠 두 손. 목 위에는 밧줄 자국이 선명하지만 이미 잘려진 밧줄은 어딘가에 버려지고 없다. 더 이상 상실은 밧줄 위에 걸려있지 않다. 상실은, 너무도 가까이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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