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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음 Jun 12. 2022

송곳

 너는 울었다. 내가 영영 떠나갈까 봐서. 나는 않았다.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송곳니 하나가 유독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그래서 웃을 때 입을 가렸다.


 내가 떠나갈 때, 어떻게 해야 자신을 잊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송곳니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애는 주머니에서 롱노즈를 꺼내 자신의 생니를 뽑기 시작했다. 그 애는 자기의 이를 뽑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뿌리째 뽑힌 송곳니의 끝에는 붉은 살점이 붙었다.

피가 울컥울컥 솟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피가 나자 그것을 미처 다 삼키지 못해 입 밖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그래서 그 애의 웃음같이 하얀 티셔츠가 빨갛게 물들어버렸다. 그 아이는 빨갛게 웃으며 송곳니를 내게 건넸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입을 가리지 않은 채로.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초록색 손수건을 꺼내더니 자신의 송곳니를 소중히 감싸 나에게 주었다. 기억이란 그 아이에게는 그런 것이었다. 송곳니를 뽑아 손수건에 감싸 줄 만한 것.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그때 송곳니가 아닌 뒤꿈치를 달라고 했었더라도 그 아이는 그것을 내게 주었을까. 어느새 어디선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와서 자신의 뒤꿈치를 잘라 버렸을까. 설령 평생을 절뚝이며 살아가야 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지갑에 그 송곳니를 넣어 두었다. 그래서 지금껏 변하지 않은 것은 지갑과 그 안에 들어있는 송곳니뿐이다. 손수건은 어디선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는 죽어 있지만, 결국 그 아이의 바람대로 나는 그 아이를 잊지 못했다. 여전히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닌데도 언젠가 지갑을 열어 이를 마주할 때면 그것은 이름처럼 사정없이 나를 찔러댔다. 붉은 웃음과 물든 티셔츠와 초록 손수건이. 송곳처럼 나를 찔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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