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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음 Jun 13. 2022

초록


 난 너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기억해. 그러니까 늦지 않게 한아름 초록을 선물할 거야. 네 몸에 새긴 잉크의 색이 바래기 전에. 다시금 네가 초록을 거머쥐도록.

 음악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 그러니까 나는 너의 초록을 떠올릴 거야. 저 먼 곳으로부터의 선율은 색깔마저 가져올 거야.

 사실 나는 상자 속에 있어. 내가 원하던 양도 없고 고양이도 없어. 그러니까 나는 상자 안에 머물고 싶지 않아. 상자는 어두워. 작은 것들도 어둠 속에서는 덩치를 키우고 나를 잡아채려 해. 난 무서워. 난 너무 두려워.

 여전히 그런 것들을 두려워해. 작은 빛을 비춰보면 정체가 다 드러나 버리는,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너무도 거대해 보이는 것들을. 빛을 비춰야 하는데, 그런데 나는 무채색이야. 그러니까 나는 초록을 찾을래. 그런데 찾으면 너에게 줄래. 너는 아름다워야 하니까. 빛이 바래면 안 되니까.

 걱정 마. 여기에도 아늑한 구석은 있거든. 남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나는 무채색도 괜찮아. 어두운 건 역시 무섭지만 그래도 괜찮아.

 많은 걸 바라지 않아. 그저 그때처럼만 손을 뻗어 주면 돼. 너는 영원히 아름다울 테니까. 영원히 늙지 않을 거니까. 저물어버린 내 젊음 위로 손을 뻗어 주면 돼. 그러면 나는 선율을 거슬러 너에게로 갈게. 그리고 나를 찾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넌 아름다워야 해. 그 빛을 잃어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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